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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4. 2021

동화구연할 줄 아는 엄마

넷째를 품고 첫째 학교에서 동화책 읽은 날

세상의 모든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태교를 시작하고 아이가 나오면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늘 생각하고 준비한다.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온 아이라 하더라도 엄마, 아빠의 사랑의 결실로 맺어진 아이는 이미 보물이고 축복이다.  



첫째 아이가 결혼하자마자 생겼다. 신혼의 달콤한 시간을 즐길 틈은 없었다. 허니문 베이비였을까. 아이는 분명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찾아온 입덧은 재앙 수준이었다. 먹기만 하면 다 토하니 변기를 붙잡고 사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하는 수 없이 임신 초기에 다니던 직장을 쉬게 되었다. 별난 입덧 탓에 괴롭고 우울했다. 남들은 만삭이 되어 아이 낳기 하루 전날까지 일하기도 한다는데 나만 유별난 것 같았다. 늘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규칙적으로 살다가 갑자기 집에만 있게 되니 몸은 점점 더 쳐지고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마음을 다잡고 문밖을 나섰다. 예쁜 임부복을 입고 화장을 했다. 집 밖을 나서자 이런저런 기회들이 찾아왔다.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서자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동화구연 자격증반 모집 홍보문이었다. 여러 달 진행되는 과정이었지만 뱃속 아이와 내 삶에 활력소가 되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갖가지 목소리를 바꿔가며 실감 나게 동화책을 읽어 줄 생각을 하니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 아이를 품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아이 낳으러 가기 일주일 전에 만삭의 몸으로 각색한 원고를 외워 무대에 올랐다. 배불뚝이 임신부의 동화구연 시연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제 곧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뱃속 아가도 꼬물거리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아가와 엄마, 둘 다에게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그건 추억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첫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동화구연 자격증을 땄던 나는 어느새 넷째를 뱃속에 품고 있는 네 아이 엄마가 되었다. 첫째는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전 작성해야 하는 학부모 안내문에 부모 재능 수업을 해 줄 수 있는지 표시하라고 했다. ‘드디어 엄마가 가진 재능을 뽐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동화구연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우리 첫째  민아 친구들 앞에서 실감 나게 동화책 읽어주는 모습을 행복하게 상상하면서 말이다.


지난주, 학교에서 학부모 재능기부 참여 수업 안내장이 날아왔다. 막상 진짜 기회가 오니 요즘 몸도 무겁고 힘들어서 잠시 망설였다. 망설임은 내 인생 사전에서 늘 뒷전이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건 아니다. 내가 늘 상상해 오던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 1%의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담임 선생님과 수업 진행을 위한 사전 면담도 하고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을 선정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거라 긴장도 되고 부담스럽기도 했으나 여러 번 연습하자 긴장감이 풀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동화구연을 하러 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기개 물고기》 시리즈 중 두 권을 읽어주었다.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딸아이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민아는 내가 상상하던 대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에서 열심히 친구들을 향해 책을 읽어주는 엄마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물고기 어항 꾸미기 미술 활동도 함께 해 보았다. 포일 아트로 실제로 무지개 물고기를 꾸며 나만의 어항을 만드는 일이었다. 민아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함께 도와주고 이런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민아가 함께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나는 민아와 더 친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민아에게 말로만 들었던 친구들을 직접 보는 것도 엄마에게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만들기 후에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글에 담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사리 손으로 또박또박 글을 쓰며 생각을 담아보려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뻤는지 모른다.  

선생님과 나중에 대화를 나누는데 학부모 재능기부 수업 참여를 많은 부모님들이 꺼려하신다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아이들 앞에서 강연한다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신청해 놓고도 부담스러워 ‘괜히 신청했나’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끝내고 나니 성취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더 많이 행복했다. 수없이 널려있는 기회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잡을 수 없고 늘 가까이 있는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안 하고 편안한 것보다 뭐든 해보는 걸 택하는 편이다. 늘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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