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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1. 2021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

다둥이 엄마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

온 가족이 숲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길을 걷다 정자를 발견했다. 우리 부부는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정자에 앉아있었다. 세 아이는 흙길 위에서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어느 중년 부부가 성년이 된 딸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우리 아이들 노는 모습에 잠깐 추억에 잠기신 듯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신다.  

“우리 아이들도 저만할 때가 있었는데요, 언제 이렇게 커서 시집, 장가보낼 때가 다 되었네요. 저만할 때는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애들 예쁜 줄도 모르고 키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저 때가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정말 200점이시네요. 위에 딸에 아들 둘. 정말 좋네요. 세 명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네 명은 많고.”

거기까지 듣고 있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중년 부부가 의아한 표정으로 “어 뭐 또 있으신가 본데?”라고 묻는다.


 “네, 뱃속에서 넷째가 또 자라고 있어요.”
 “와 정말 장하시네. 요즘 젊은 사람들 애 안 낳으려고 하는데 잘하셨네요.”

우리 대화는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돌아오는 내내 ‘넷은 너무 많고’라는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너무 많은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시간들이 두렵다.

‘부모의 품격’이란 주제의 도서관 주관 교육을 들었다. 강단에 올라온 강사님이 말문을 열었다. 자녀들이 많이 커서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결혼해 아이 낳는 주변 후배들을 보면 ‘고생길이 훤하구나.’나 ‘나는 끝나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든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또 나는 씁쓸해졌다. 이제 좀 나를 돌보고 내 인생을 챙길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어쩌자고 내 인생을 다시 처음부터 임신한 여자로 리셋했을까.

자아실현 욕구 또한 누구보다 강한 나다. 이런 내게 넷째는 많이 버겁다. 세 명을 키우고 있는 동안에도 난 늘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꿈 많은 엄마였다.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애는 세 명이나 낳아가지고 자아실현 욕구는 강해서 사는 게 늘 피곤하다고.”

지금도 여전히 나도 모르는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는 왜 어쩌자고 넷째까지 낳는 엄마가 되었을까 생각하다 우울해지고 만다. 주말에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 아이 하나 둘 키우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멋진 역할을 해내고 있는 커리어우먼들을 만났다.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럽기도 했다. 그들의 열정과 패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솟구쳤다.  

이 네 번째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동안 내 삶은 다시 육아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나 자신은 없어지겠지. 그리고 나는 그사이 없어지는 나 자신을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또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또 우울해지고 만다. 한동안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맸다.

내 마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실체 없는 두려움이었다. ‘세 명 키우면서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과연 네 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엄마는 생각보다 무력한 존재다.  

아이 인생을 어떻게 결정하고 재단할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되어보기로 마음을 먹어보자고 다짐하자, 다시 마음이 밝아졌다. 다시 힘을 내보자! 이 글을 통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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