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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02. 2021

어떻게든 뭐라도 쓴 덕에 지금 내가 있다.

쓰고 싶은 마음이 크면 수면욕도 이기고 화장실에 숨어 들어서라도 썼죠.

나는 아이를 낳은 첫해에 얼룩진 목욕가운 차림으로 젖을 먹이면서 또는 겨우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다음 아기 띠를 안고 산책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심지어 빨래조차도 할 수 없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지하실에 있었으므로 빨래를 하면서 긴 실외 계단을 내려가야 했는데 지하실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이 잠들어도 혼자 남겨두고 빨래를 하러 갈 수 없었다. 아기가 작을 때에는 세탁 바구니의 빨랫감 위의 아이를 올리고 지하실로 내려갈 수 있었지만 한 살이 지나자 너무 커서 바구니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보모를 쓰면 지하실에서 글을 쓸 수 있음을 심지어는 빨래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휴대용 타자기를 지하실에 가져다 놓았다. (중략) 나는 빨래도 했지만 주로 글을 썼다. 그전까지는 한가한 시간이 10초만 생겨도 그 시간에 글을 쓰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제 진짜로 글 쓸 시간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죄책감에서 몇 년 만에 해방되었다. 나는 공공도서관에서 시를 실어주는 잡지 목록을 찾아내 내가 쓴 시를 투고했고 그중 한 편이 실렸다. 지하실에서 보낸 시간이 나를 바꾸었다.

-연과 실(앨리스 메티슨)



나의 지하실은 화장실이었다. 복작거리는 네 아이 틈을 사는 동안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이 감정을 글에 넣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블루투스 키보드와 휴대전화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뭔가 쓰고 있으면 이 아이 저 아이 엄마 찾는 소리가 온 집안을 울려 퍼지고

난 화장실 문을 열고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엄마 여기까지만 쓰고."를 외쳐대며 그 생각을 어떻게든 글에 담아보려 분투했다.


내가 쓴 글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세상에 나오고 이제 막 글맛을 좀 알았는데 넷째가 생겼다. 이것은 축복이기도 했고 형벌이기도 했다. 넷째는 재앙과도 같은 입덧을 데리고 왔다. 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한 개 두 개 올라오는 내 책 서평을 보면서 가끔 미소 짓고 때론 눈물지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입덧이 끝나고 배가 더 불러 오면서는 직접 독자들을 만나 북 토크도 하고 강연도 해 보았다. 넷째를 뱃속에 품고 1%의 행동력으로 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는 시간들이었다.


아가가 세상에 나오자 이 무력한 신생아 아가를 젖을 먹여 키워내야 했다. 동시에 그 위의 나머지 세 아이를 동시에 돌보면서  말이다. 글 쓸 여유도 틈도 없었다. 겨우 틈을 찾자면 아가 잘 때뿐이었다. 하지만 젖을 먹이는 어미는 아가 잘 때 따라 자지 않으면 그다음 수유 타임까지 버텨낼 힘이 없다. 이 와중에도 가끔 쓰고 싶어 안달 나는 마음이 생기면 잠을 포기하고 쓰기를 택했다. 가끔 그때 그렇게 수면욕을 이기고 써낸 글을 끄집어내 읽어본다. 그 상황과  마음이 함께 떠오르면서 눈물부터 난다. 안 쓰는 것보다는 쓰길 잘한 것 같다.


조그마한 여유만 있어도 정말 글이 술술 써질 줄 알았다. 그때 그 신생아 아가도 꽤 자라 엄마 곁에 머무는 것보다  형아 하고 놀기를 즐기니 이제 화장실이 아닌 어엿한 책상에 앉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 쓰는 글은 육아의 최전선에서 늘 잠이 부족한 어미가 잠을 포기하고 쓴 글에는 늘 못 미친다. 그래도 뭐라도  써 보려고 노력 중이다.  머릿속에 쓰고 싶은 말도 엄청 많은데 정작 하얀 지면 앞에서는 늘 망설이고 주춤한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써야 좋을지 막막할 때가 많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 공부가 이런 내게 생각을 더해주고 글감을 던져준다.



화장실에 숨어 쓴 글(2020.9.10.)


민찬이 피해

화장실에 숨어서

겨우 글을 쓰고 있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꼭 글에 담아놓고 싶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이 마음과 감정을

글에 담지 못할 것 같아

조금 무리를 해 본다.


남편과 나는 긴 하루를 마무리하려

각자의 욕실로 들어가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은 방에서 민찬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밤이 되면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 녹초가 되어버린 나는 웬만한 울음소리에는 동요치 않는다. 근데 이번 울음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또한 민혁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부터 엄청 힘들게 정성을 담아 만들었다며 손아귀에 보물단지처럼 감싸 쥐고 왔던 점토로 만든 용인가 이무기인가 암튼 그것이 뇌리를 스쳤다.


 옷을 벗다 말고 빛의 속도로 작은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역시 내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민혁이는 화난 맹수로 변신해서 민찬이를 공격하고 있었고 민유는 그런 형아의 공격으로부터 민찬이를 보호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이 파악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결과만 보고 민혁이에게 확 쏴 붙였을 텐데 민혁이의 화나고 속상한 마음이 이해가 되어 민찬이를 향한 몇 번의 밀침과 폭력에 강하게 맞서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렇게 해서라도 아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지길 바랄 뿐이었다.


민혁이는  민찬이를 집어던졌고 그럴 때마다 민유는 민찬이를 다시 데려와 어르고 달래주었다. 그러다 한 번은 형아의 강한 공격에 민유가 형아를 공격하는 듯한 손짓을 했고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민혁이가 민유를 끌어당겨 누르고 때리고 했다. 너무 심한 것 같아 말리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않았다. 겨우 형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민유는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벌게진 얼굴을 하고는 다시 민찬이에게 다가가 자기 품에 민찬이 얼굴을 파묻고는 토닥인다.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너무 화가 난 민혁이 마음도 이 상황에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고 참고 또 참는 민유 마음도 형아 물건 실수로 망가뜨렸다가 된통 당하고 있는 민찬이 마음도 다 알 것만 같았다. 어느 누구 편도 어느 누구 손도 잡아줄 수 없는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은 민혁이 편을 들어주면서 얼른 민찬이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난 둘을 분리를 시켰는데 작은 방에서 민혁이의 울분에 쌓인 외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아파트 위아래층에서 쫓아올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한참 후 민혁이는 다시 민찬이가 있는 방으로 쫓아와 민찬이를 밀치며 분노 표출을 했다.


난 얼른 "민찬아 얼른 형아한테 잘못했다고 해. 그니까 왜 네가 형아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망가뜨렸어? 형아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해."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민찬이가 두 손을 비비며 형아에게 용서를 빌었고 형아를 안았다. 그러자 민혁이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민찬이를 안았고 그 후 방 문을 닫고 다시 나가 버렸다.


이제 민혁이가 소리 지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너무 마음이 아파 나도 눈물이 났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자꾸 부딪힘이 잦은 엄마 대신 아빠가 민혁이와의 대화를 시도했고 다행히 그 후 민혁이 마음이 많이 안정이 되었다.


이렇게 길었던 오늘 하루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정말 자식이 많으니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어서 자면서 에너지 충전해서 내일도 아이들과의 전쟁 속 시간들을 버텨내야지, 마음먹어본다.        

    

사건의 발단이 된 그 이무기인지 용인지 하는 것



수면욕을 이기고 쓰던 날(2019.1.23.)


자고 싶은 만큼 자지 못하는 괴로움

요즘 가장 힘든 건,

한참 깊은 잠을 자고 있는데

옆에 누운 아가가 깨서 울 때

억지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정신은 몽롱

눈도 안 떠지고


아가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왜 왜 벌써 깼어?

좀 더 자지 응?


모유를 먹는 아가는

길게 자면 3시간...

가끔은 4시간 잘 때도 있다.


어젯밤 11시에 먹고 잤는데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깨서 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와 배꼽시계가 정확하다.'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젖을 물렸다.

수유할 때만 해도

눈도 못 뜨고

졸면서 젖을 물렸는데


아가 젖 다 주고 나서

아가 재우고 나오니

잠이 깼다.


고민했다.

지금 안 자면

너무 피곤할 텐데....

그래도

너무 쓰고 싶은데

이럴 때 써야지...


결국 쓰고 싶은 마음이

수면욕을 이겼다.


오랜만에,

모두 잠든 이 새벽에

깨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제 곧 아가의

배꼽시계가 또 울릴 것 같다.


대기하고 있어야겠다.


내 젖꼭지도 찌릿찌릿 아프다.


이 자연의 섭리가 매번 신기하다.


아가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고

난 가슴 통증을 달래기 위해 먹인다.


이 순환은 세 시간 네 시간에

한 번씩

아가와 나의 몸에 어김없이 찾아온다.


또 한 번 겪고 있는 진귀한 엄마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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