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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9. 2021

민유는 단지 '곰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 반성문

며칠 전부터 셋째 민유가 곰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해야 할 다른 먹거리들이 생기는 통에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오늘 아침도 전쟁 시작이다.

남편의 아침 먹을거리를 챙기면서

"민혁아 민유야 일어나."를 연거푸 외쳐대며 손을 재빠르게 놀렸다.

아이들 아침 먹거리 챙기고

가방도 챙기고

마스크도 챙겼다.


지금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

재료들이 있어 서둘러 집에서

가장 큰 솥을 꺼내 카레도 했다.

아침부터 이 카레까지 하느라 다른 날보다 더 분주했다.


아무리 불러대도 꿈적도 하지 않던 두 아들 녀석 중 먹는 것이 관심이 많은 민혁이는

"지금 일어나야 카레밥 먹고 갈 수 있어."라는 내 말에 눈도 못 뜨고

거실로 나온다.

마지막까지 이불속에서 달콤한 잠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버티던 셋째가

드디어 일어나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곰국 해 준다고 했잖아." 한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눈과 입에서 동시에 불화살을 날리며

이제 막 잠에서 깬 그 아이들 향해 비난과 분노를 퍼붓고 말았다.


"이 바쁜 아침에 무슨 곰국이야? 그리고 엄마가 카레 했다고 하면

그냥 좀 카레 먹으면 안 돼? 엄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쁜 거 안 보여?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셋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물만 뚝뚝 흘린다.

그 모습에 '아차' 싶어 서둘러 민유를 안으면서


"엄마가 미안해 응? 엄마가 너무 정신없어서 깜박했어.

아침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카레 먹고 가고

저녁때 꼭 곰국 해줄게."


그제야 셋째도 동동거리는 엄마 모습이 마음에 들어왔는지

눈물을 거두고 밥상에 앉아 카레밥을 먹는다.



민유는 단지 '곰국'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어째서 그리 불같이 화를 내고 말았을까.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에 민유의 일그러진 얼굴이 머문다.

민유야, 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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