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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8. 2021

분노와 애정 사이

를 부지런히 오가며 오늘도 엄마를 산다

생애주기가 다른 네 명의 아이는 키운다는 것은 엄마에게 많은 인내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너무 예쁜 넷째 덕에 가끔 웃었고 초등학생 세 명의 아이들과 자주 다퉜다.


어젯밤 둘째 민혁이는 울면서 잠이 들었다. 아들의 훌쩍이는 소리를 난 끝까지 모른 체하고 잠을 청한 못된 어미를 자청했다. 4시에 아이들 네 명이 모두 다시 집에 돌아왔다. 잠을 자기 위해 안방에 모여든 시간이 9시다. 5시간 동안 집안 살림과 3살부터 10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돌봄이 동시에 요구된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넷째의 똥 기저귀를 갈고  똥꼬를 샤워기로 말끔히 씻겨내는 일은 기본으로 해야 하고  수시로 연년생 두 아들의 시시콜콜한 다툼을 중재해야 했다.


잠자리에 들 때면 몸은 녹초가 되고 기분은 뾰족하고 불쾌하다. 누가 건들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런 나의 폭발을 유발하는 건 주로 8살 둘째 아들놈이다.


엄마 넷째 둘째 셋째 첫째가 차례로 누었다. 둘째 녀석이 셋째를 발로 차며 장난을 치며 울렸다. 거기까진 참고 또 참았는데 이번엔 또 돌아누워서 잠이 들려고 하던 넷째를 꽉 껴안고 뽀뽀를 해대며 결국 울려 버린다. 부글부글 끓고 있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야 신민혁 일어나. 너 일어나서 서 있어."

아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머금고는 장롱 구석에 움츠린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래도 나는 분이 안 풀린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짜증 낼 거야. 왜 맨날 야근하고 이 네 명의 아이는 엄마 혼자 이렇게 돌 봐야 하는지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

막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리곤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잠시 후 민혁이가 훌쩍거린다. 누워있던 큰 딸 민아가 민혁이에게 다가가  민혁이 등을 토닥인다.


"누나, 나 엄마한테 야단맞아서 우는 거 아니야."

"그럼 왜 울어?...."

"나 때문에 엄마가 화나서 아빠한테 짜증내서 엄마하고 아빠하고 사이가 나빠지고 헤어질까 봐 그래서 우는 거야."


민혁이 말소리가 내 귀에 와닿았다. 아이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도 난 끝까지 민혁이에게 가지 않았다. 그 아이는 그 슬픈 마음을 품고 눈물을 흘리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후 띠띠띠띠 남편이 들어왔고 방 문을 열었다. 얼른 몸을 뒤집어 자는 척했다. 슬며시 방문은 다시 닫혔고 난 마치 마녀가 된 기분으로 네 아이 틈바구니에 끼어 어둠 속에서 고뇌했다.

다 꼴 보기 싫었다. 이 모든 육아의 짐을 내게 지운 남편도... 늘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아들놈도.... 늘 뾰족한 발톱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나 자신도 말이다. 자주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잦은 야근을 하는 남편을 향한 것이었으나 대개 표출은 아이들을 향한다. 후에는 이게 잘못되었음을 알기에 후회와 자책이 나 자신을 공격하기 일쑤다.



아이를 키운 다는 건

정말,

슬픈 건 더 슬프고

기쁜 건 더 기뻐지는 일이 맞다.


그다음 날,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는 평소와 다른 수줍은 모습으로 말한다.


"엄마 나.. 학교에서 엄마한테 편지 써 왔어요."

장미꽃이 붙어있는 머리핀과

과일 캐러멜

얼마나 정성을 들여 꾸몄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편지를 펼쳐 보지도 않았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민혁이가 그런 내 모습을 살피더니

"엄마 내용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괜찮지요?"

"응 당연하지... 엄마는 네가 편지를 써 왔다는 것 자체에 너무 마음이 좋고 감동스러워."


편지를 다 읽고 눈물이 나는 걸 참으며

"학교에서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언제 이런 걸 다 만들었어?" 하자

"쉬는 시간마다 하나씩 하나씩 꾸몄어요." 한다.


말없이 꼭 껴안아 주었다.


다시 또 괴물로 변할 수도 있을 테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마음에 자꾸 눈물이 났다.


사실 얼마 전, 둘째 때문에 속상해서 쓴 일기를 아이에게 읽어줬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나와 늘 부딪히는 녀석은 둘째 녀석이란' 부분에서 손을 들어 올리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게 전부였다. 나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뭔가 느끼는 게 있었나 보다.


늘 자유분방하고 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둘째는 나와 수시로 다툰다. 내 마음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놓는 데 선수다.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듣니?"하고 쏘아 부치다가 날 가장 많이 닮았다는 지점에서 화들짝 놀라곤 한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 더 많이 화 내고 짜증이 나는 걸까? 어떤 심리학자의 강연을 들으니 자기를 닮은 아이와 더 많이 다투는 이유는 아이는 조그마한 어떤 행동을 했을 뿐인데 엄마 눈에 그 행동 뒤에 감춰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더 큰 문제 행동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날 닮았기에 그게 더 잘 보이는 것이고.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다가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엄마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이들. 육아가 해 볼만한 것이 되었다가도 어김없이 뒤통수치며 주저앉히는 아이들.

하루에도 수십 번 속이 뒤틀리고 화가 나지만 오늘도 나는 분노와 애정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엄마를 산다.



나는 쓰라린 분노와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

더없는 행복에 대한

감사와 애정 사이를

죽을 듯이 오간다.

-에이드리언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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