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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7. 2021

슬픈 건 네가 아니라 엄마였다

슬프고 우스운 엄마

지난 주말, 민찬이 코에서 말간 콧물이 흐른다. 콧물은 멈출 줄 모르고 자꾸 흘러내렸고 잠시 한 눈만 팔아도 민찬이는 손으로 코를 닦았다. 아니 닦는 게 아니라 그 코를 얼굴 전체에 발라 놓았다. 월요일 아침, 어린이집 대신 병원에 갔다. 민찬이는 어린이집에 안 간 것이 마냥 좋아서 기분이 들떠있었다. 약을 지어와 먹이니 줄줄 흐르던 콧물이 콧속에 머무는 듯했다. '흥'하고 풀면 누런 코가 나왔다. 화요일도 잠시 고민했으나 보내지 않았다. 콧물이 아직 흐르고 있었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민찬이가 안쓰러워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틀 동안, 민찬이와 신나게 놀았다. 둘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걸으며 온갖 풀벌레를 구경했다.

"엄마 이건 뭐야? 와 날아간다 날아간다.

호랑이 나비다!!!"

(들을수록 귀여웠던 말... 호랑이 나비ㅋㅋㅋ)

우리 둘은 들판을 뛰어다니고 논두렁을 가로지르며 정말 신나게 놀았다.

메뚜기라도 한 마리 발견하면 그 메뚜기 따라 뛰어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신나게 놀다 밥때가 되면 집에 와 갓 지은 밥에 청국장을 끓여서 밥 한 그릇을 뚝딱하며 또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내 시간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잠시 숨 돌리려고 하면 이렇게 네 명 중 누군가가 아파서 내 삶을 헝클어놓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네 아이를 돌보며 조금씩 자라는 나를 본다.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내 시간이 주어지면 온전히 누린다. 지금처럼.

언제 이 평화가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 제한된 시간만 주어지는 자유는 매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법을 터득하게 했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또 그냥 어린아이가 되어 신나게 놀아버린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냥 논다. 자연 속에서 걷고 뛰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이 곁에 있는 시간에는 버너와 냄비 챙겨 나가 들에서 걷고 뛰다 라면도 끓여 먹고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다 달님이 뜨면 달구경도하다 집에 돌아오곤 한다.

읽고 쓰는 시간이 없어도 헛헛함이 줄었다. 그건 또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열심히 하면 되고. 아이들과 놀 때는 그냥 정말 열심히 신나게 놀면 되고. 매 순간 상황과 처지가 허락하는 대로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법을 나는 이렇게 조금씩 배워나간다. 그 안에서 아이들 자라는 것과 동시에 나도 이렇게 서서히 자란다.

지난 이틀 동안 민찬이가 외동아들인 것처럼 우린 오롯이 우리 둘 뿐이었다. 위에 세 명 아이들 없이 넷째와 단둘이 보낸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창 예쁜 민찬이 덕분에 내가 더 신나고 즐겁게 놀았다. 혼자 걷던 논두렁을 민찬이 손을 잡고 걷고 혼자 타던 자전거를 아이와 함께 타면서 그 작은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석 같은 말들 때문에 많이도 웃었다.

콧물도 안 나고 밤에 잠도 잘 자니 내일은 어린이집 보내야지, 마음먹었다. 마음먹음과 동시에 난 슬퍼져 버렸다. 평소에도 어린이집 안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이틀 동안 정말 엄마와 단둘이 신나게 노는 맛을 알아버린 민찬이가 얼마나 서글피 울까?... 하고 생각하니 난 그만 보내지 말까?라는 마음이 더 커질 뻔도 했다.

아침에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면서도 마음은 오락가락했다. 민찬이 눈물을 보면 금세 내 마음은 보내지 말자로 기울어 버릴 듯도 했다. 그래도 가방은 챙겼다. 민찬이를 깨우고 옷을 입혔다. 큰 아이들 챙기며 난리 통 속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막내가 거부하지 않았다. 갸우뚱하는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이 뒤섞였다. 큰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이제 단둘이 남은 시간,

어떻게 말을 꺼내지....

아니면 그냥 말 안 하고 안고 내려가서 차를 태워버릴까....

아니면 자전거 타러 간다고 거짓말을 할까.

어떤 방법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머리를 굴리며 아이들이 흐트러 놓고 간 옷가지를 집어 드는데 민찬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 민찬이 어린이집 보내려고?"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거짓말이든 참말이든 대답을 해야 했다.

"민찬아, 네 친구 나무랑 세연이랑 응... 또 누구 있지?"

"희람이."

그래 희람이 가 있었지. 희람이는 민찬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 바로 이거다.

"그래 민찬아, 희람이가 글쎄 민찬이가 어린이집에 안 오니까 그렇게 슬퍼하고 있대.

희람이는 민찬이가 제일 좋은데 민찬이 없어서 심심하고 어린이집도 재미가 없다고 하네."

그러자 민찬이가 아주 대단한 결심을 한 듯 내 곁으로 걸어오더니

"엄마, 민찬이가 어린이집에 가야겠다." 하는 것이다.

계략은 통했다. 민찬이는 친구 희람이를 슬프게 하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어린이집 차에 씩씩하게 올랐다. 그렇게 차가 떠나고 난 바로 산속으로 뛰어들었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나는 거다. 막둥이와 얼마나 신나고 재밌게 놀아버렸는지 막둥이 빠져나간 오늘 하루 시간이 갑자기 허한 거다. 나 원 참 이 감정 뭐지. 민찬이 없으면 며칠 만에 차분하게 읽고 쓸 수 있는 내 시간이 주어지는데 웬 눈물 바람. 이 감정이 우습고 당황스러워서 서둘러 산에서 빠져나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오늘도 난 이렇게 쓰면서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 마음을 살핀다. 쓰면서도 웃는다. 우습다. 넷째 어린이집 갔다고 눈물 나는 내가 우습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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