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프로젝트
과천현대미술관2층 20210619
과천현대미술관2층을 사랑한다. 꼭 과천이 아니어도 좋고, 꼭 현대 미술이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과천현대미술관이 가장 낭.비.롭.기.때문에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2호선에는 사람이 와글와글하고, 유명 카페라면 옆 사람 수다를 들어야 할 만큼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묻힌 추모 공원도 빡빡하게 구획되어 있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일상이란 효율을 따져가며 꽉꽉 채워져 있다.
그런데 미술관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그런 바쁜 세상사야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넉넉하게 낭비하듯 구획된 공간 안에는 작품 한 점 한 점이 소중하게 핀 조명을 받고 있다. 귀중한 작품일수록 공간의 잉여는 극대화된다. 그런 공간을 뒷짐을 지고 어슬렁 어슬렁 걷다 보면 마치 50평대에 혼자 사는 싱글녀가 된 듯한 만족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에, 은은한 조명이 더해진 이 공간의 격조가 마치 내 것인양 흠뻑 공간을 누려본다.
미술관에 간다고 하면 “너 도대체 미술관에서 몇 시간을 있다 온 거야?” “또 미술관을 간다고? 너 진짜 중독이다!” “미술관 좀 그만 가,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는 식의 비난이나 꾸중을 들을 일이 없다. 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장소 중에 도서관이라는 경쟁자가 떠오르지만, 나이 40이 넘어서 도서관에 간다면 어쩐지 애석하거나 비장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미술관이 승자이다. 미술관에 간다는 것은 별일이 없으며, 안정적인 정신 상태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자타에게 보여주는 건강한 행위라고나 할까.
물론 미술관의 가장 매력 포인트는 ‘갤러리체”에 있다. 국문학과와 미술사학을 동시에 전공한 나로서는 20대에만 해도 미술관의 언어가 혼란스러웠다. 비문에 낯선 단어들의 조합인, 그야말로 허세 가득한 문장들을 보노라면, ‘이거 쓴 사람은 뜻을 알고나 쓴 거야, 아니면 큐레이터는 아예 다른 종의 사람인가?’하며 갸우뚱했지만 지금은 작품 옆 설명들을 대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작게 읖조려 보곤 한다.
# 메마른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인간의 고독을 투영하여 본연의 내면의 욕망과 타노스를 분출하고자 자연의 일부를 드라마틱하게 차용하여 본질적인 우리 안의 왜곡된 실상을 직시하려는 작가의 투쟁이 반영된 작품
(물론 여기서의 타노스는 어벤져스의 타노스이지만, 뭐 나름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 과거 유년 시절을 복기하며 작가가 느끼는 어둡고 생경한 고통의 터널 속에서도 한줄기 어머니의 양수와도 같은 푸른 희망에 노 저어 가리라는 긍정의 메시지
보는 이의 이해를 구걸하는 비굴함 따위는 없는, 오직 작품에 흠뻑 빠진 지성과 감성만으로 써 내려간 갤러리체를 읽고 있노라면, 대출 이자, ROI, 관리비, 재산세, 경조사비, 주식 등등의 뻔하고 닳고 닳은 일상에 질린 나에게, 누군가 방금 썬 레몬 한 조각을 띄운 탄산수를 건네는 것만 같다. 진지한 듯하면서도 웃긴 사람의 매력이랄까? 나에게는 미술관의 갤러리체가 그런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과천현대미술관 2층이 굳이 좋은 이유는 넓게 양쪽으로 도열 된 넓은 복도, 그러니까 방을 얻지 못한 방 바깥에 걸려진 작품들이 있는 공간때문이다. (늘 그렇진 않지만) 2층 복도 공간의 작품들은 현재 전시 중인 주제와 다른, 혹은 미술관이 오래 소장하고 있으면서 보관만 하기는 그렇고, 돈 받고 기획 전시하기는 좀 그런 작품들이 걸려있다. 풍족한 A, B, C관을 다 둘러보고 감정적 허세를 다 누린 뒤에 2층 복도에 나오면 핀 조명 없이 통 유리창 사이로 밝은 햇볕을 받으며, 대수롭지 않게, 설명도 없이 걸린 작품들을 만난다. 나는 그 작품들이 꼭 '나' 같아서 좋다. 영화관의 불이 켜지면 기지개를 켜고 집으로 가듯,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