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뎀셀브즈

그때 거기 프로젝트

by 강이람


카페 뎀셀브즈 20210627


#1


또 햄버거였다. 밥이라도 먹게 된 걸 감사해야 하나 싶다가도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언젠가 저 버거킹을 불태워 버리고 말겠어.) 국장님이 주신 법카를 두 손 공손히 받아 거리로 나왔다. 해가 길어져 저녁이 다 되었는데도 주위가 밝았다. 하긴 어둑어둑해졌더라도 나만 뺀 모든 사람들이 밝게 느껴졌을, 그런 기분이긴 했다. 횡단보도를 하나만 건너면 극장이 있었다.


극장 앞에는 데이트에 들뜬 연인들이 가득했다. 영화 관람은 고사하고, 자정 전에 퇴근한 지가 꽤 오래전이었다. 입사하고 제일 많이 들은 말을 꼽아보면, 1위 : 꼬박꼬박 밥 챙겨가면서 어떻게 광고를 하냐? 2위 : 오늘은 밥 먹으면서 회의하자 3위 : 이따가 보자 (자정 넘어 퇴근하면서 하는 말)였다. 광고쟁이라는 타이틀에 삼시 세끼를 중요시 하는 나의 라이프 사이클은 잘 구겨 넣어지지 않았다.


극장을 지나 건물 서너 개만 지나면 버거킹이었다. 평소 같으면 터덜터덜 걸어가 빅맥세트5개요, 하고는 준비가 될 때까지 종각 사거리의 풍경을 구경하다 돌아왔을 텐데, 그날은 좀 달랐다. 극장 옆 카페뎀셀로 스윽 들어갔다. 은은한 음악 소리와 커피향, 아름다운 케이크의 색깔들. 나는 잠시 행복감에 젖어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결연한 마음으로 모짜렐라치즈샌드위치와 자몽에이드를 주문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메뉴였다. 지금 국장님에게 문자가 갔겠지? 카페뎀셀브즈 10600원. 어쩐지 속이 후련했다.


그날 저녁 미팅은 마치 내가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제 될 건 없지만,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 국장님이 애정 하는 빅맥 세트가 아닌 ‘자기만의’ 메뉴를 선택한 일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새벽 3시 즈음인가, 나는 야근을 하면서 국장님에게 “밥은 먹고 일했으면 좋겠다”라고 털어놨다. 국장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다음날 팀원들에게 식사 시간에는 회의를 잡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막내가 소원수리를 해냈다며 팀 내 선배들이 커피를 사주었다. 그때가 스물여섯 여름이었다.


#2


“바람을 피울 수는 있지, 그걸 들키지는 말아야지.”


난 바람 피울 생각이 없다고 했고, 그도 역시 그럴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살다 보면 바람을 필수도 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랑의 감정은 움직일 수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걸 상대방에게 말하거나 들키는 것은 괴로움을 상대에게 짐 지우는 것이니 그러지는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아니, 바람을 왜 펴? (피라는 게 아니야) 들키지 않아도 바람을 피웠다면 이미 배신이잖아. (안 들키는 데 어떻게 알아?) 그래도 바람을 피운 건 피운 거 잖아. (그럼 넌 말해주는 게 좋아?) 뭐 이런 식의 출구가 없는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카페 뎀셀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카페라떼 얼음을 휘저으며 내 몸을 그에게 쭉 빼고 앉은 채였다. 그는 다리를 꼬고 옆으로 비뚤게 앉아서 커피를 조금씩 들이켰다. 아주 작은 장난감 같은 잔에 들어있는 커피였다. 바람을 피웠다는 것도 아니고 피우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그는 결백하다. 그리고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잠깐 담배를 피고 오겠다고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껌뻑껌뻑이며 앉아있다가 남아있던 그의 커피를 입에 홀짝 삼켰다. 지독하게 쓴맛이라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때는 그의 등이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류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때가 스물일곱 초가을이었다.


#3


이직을 하고, 애인이 없는 상태였다. 건강도 안 좋았고, 안팎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 혼자 술을 마시거나 울기도 하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인가 조조할인 영화를 한 편 보고는 카페뎀셀에 가서 뎀차이라떼를 주문했다.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는 네모 휴지 한 장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안녕, 종로야’


사각 티슈를 돌돌 말아 2층 화장실 변기에 넣었다. 나의 인사는 빙글빙글 돌다 사라졌다.


기분이 시원섭섭했다. 회사도 더 이상 종로가 아니었고, 데이트를 종로에서 할 일도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스물 여덟 겨울의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과천현대미술관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