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화장실 20211114

그때 거기 프로젝트

by 강이람

휴게소 화장실 20211114


“엄마, 왜 아줌마들은 오줌을 못 참아?”


이런 질문을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에 했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엄마는 그게 무슨 맥락의 질문인지 바로 알아채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 들어가기 전에 지퍼 안 내릴게. 아이고, 우리 딸 만약에 영부인 되면 흉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지, 깔깔깔~”


아마 엄마도 그때 줄이 긴 휴게소 화장실에서, 터질 것 같은 방광의 압박을 못 참고 입구에서부터 지퍼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영부인 운운할 만큼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타입이 아닌데도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어릴 때 휴게소 화장실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진동하는 똥 냄새도 싫고, 문을 열면 5개 중에 3개는 똥 무더기가 변기나 바닥에 덕지덕지 있어서 다음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봐야 하는 조마조마함도 싫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웬만해서는 휴게소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그때는 KTX도 SRT도 없을 때이고 무엇보다 명절에는 시댁에 꼼짝없이 가야 하는 시대였으니 가장 막히는 시간에 지방을 가려면 별수 없이 휴게소는 필수 코스였다.


그런 휴게소 화장실에서 두 눈 질끈 감게 싫었던 것은 “머리가 빠글빠글한 중년(이라기 보다는 할머니)의 여성들이 꼭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지퍼를 열고, 변기 문 앞에서는 바지를 아예 한 뼘 정도 주섬주섬 내리고서 어기적어기적 다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남자 화장실의 풍경은 알지 못하므로, 단편적으로 여자 화장실만을 놓고 보면) 한두 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화장실에서 옷을 내리는 건 1-2초면 되는데 왜들 미리부터 저러시는 것인가를 초딩이었던 나는 꽤 진지하게 회의해보았던 것 같다. 나이 마흔이 넘어보니, 방광 근육이 예전처럼 튼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남의 시선에 조금 덜 민감해지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본인의 속옷을 화장실 복도에서부터 까는 것은 좀 아니다,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에 강릉 여행 중에 들린 휴게소에서 ‘미리 바지 내리기를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주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요즘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진 것이다. 그때 용인되던 상식이 어떻게 지금은 몰상식이 되었을까.


95년부터 전국 휴게소 화장실이 민영화되면서 휴게소 화장실이 깨끗하고 인간적으로 사용할 만해졌다. 무엇보다 화장실 칸수도 많아졌다. 더 이상 줄을 길게 서고, 더러운 변기에 놀라 다시 다음 칸에 줄을 서야 하는 일은 사라진 것이다. 휴게소가 북새통이던 명절 연휴 기간이 그때보다 더 길어졌고, 직장에서 연휴 앞뒤에 휴가를 붙이는 것도 좀 더 쉬워졌다. 시댁을 꼭 안 가도 되는 가정도 생겨났으며, 다른 대중교통도 늘었다. 상식은 개인의 방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었나 보다.


+

아 참, 엄마 저는 영부인이 될 생각도 대통령도 될 생각은 없지만, 이왕 비유를 든다면 “네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고 해주시기 바라요. 그게 요즘 딸부모의 상식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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