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20211031
자주 가서는 안된다. 대량 구매를 멈출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 사서 쟁여 두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야금야금 먹고 나면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약 35시간 정도 일상의 분노나 무기력이 사라진다. 빵집은 그런 곳이다. 그래, 일단 먹어두어,라고 토닥토닥해주는 그런 음식인 것이다.
1_라뜰리에 “콩고물 단호박 찰빵”
콩고물에 단호박인데, 찰빵이 들어간 이 조합은 반칙이다. 전부 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조합이 좋은 이유는 이 모든 재료들이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콩고물은 인절미 떡을, 단호박은 단호박죽을, 찰빵은 콩떡을 연상시킨다. 모두 할머니 댁에서 처음 먹어봤던 것들이다. 그래서 이 빵을 먹을 때는 당쇼크니, 글루텐이니, 칼로리를 따지지 않게 된다. 정말 밥하기 싫을 때 예쁜 그릇에 담아 아이에게 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그런 빵이다.
2_원더풀 베이커리 “까눌레”
까눌레는 프랑스 보르도의 한 수도원에서 처음 제작했다고 한다. 18세기 즈음 이 빵을 성체용 빵을 만드는 것처럼 제한된 사람에게만 조제를 허락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20세기 초에 이 빵을 지금처럼 누구나 먹게 되었다고 한다. 겉바속촉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바삭하게 캐러멜라이즈된 표면과 부드러운 계란 노른자 풍미 가득한 속의 조화가 일품이다. 까눌레는 크기가 작아서 살이 별로 안 찔 거라고 생각하면서 보이는 대로 사 먹는 편이다. 원더풀 베이커리는 동탄 2신도시에 나들이를 갔다가 우연히 들렀고, 역시나 까눌레를 보자마자 나는 하나를 사서 까먹고는, 다시 돌아가 매대에 있던 일곱 개를 전부 사서 차 안에서 다 먹었다. (그래도 한 개는 남편을 주었다)
3_브레젠트 “바나나피칸파운드”
번잡한 정자역 근처에 아주 좁은 입구를 가진 빵집이다. 들어가면 테이블은 복층 위에 4개뿐. 서울 친구들이 나를 만나러 분당까지 와준다고 하면 이곳에서 본다. 작은 빵집인 만큼 직원이 적어서 주문이고 포장이고 조금 기다려야 한다. 딱히 친절하지도 않다. 하지만 “바나나피칸파운드”를 먹으면 ‘음, 브레젠트의 파티쉐와 직원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일단 가식적인 가벼운 파운드빵과 달리 무겁고 견고하다(라는 멋진 말을 붙여주고 싶다.) 파운드케이크는 하루 이틀 지나면 손에 기름이 묻기 마련인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본연의 맛을 버터 기름기에 처발처발 포기해버리지 않았다. 절제를 아는 바나나피칸파운드이다.
4_롤링핀 “버터 프레첼”
프레첼을 처음 먹어본 것은 미국에서였다. 우웩, 짜고 뻑뻑한데 왜 먹어?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맛을 안다. 건빵의 맛에 눈을 뜨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프레첼 베이스에 고급 진 버터를 슬라이스로 아낌없이 넣은 버
터 프레첼을 처음 먹었을 때는, 아 이것은 으른의 맛이다. 라고 생각했다. 저절로 나이 들어서 되는 어른 말고, 멋지게 늙어가며 즐기며 사는 "으른" 말이다. 과일 등을 이마에 얹은 빵들과 달리 부산하지 않고, 크로와상류처럼 먹을 때 부잡하지도 않다. 간결하고 단정한데 자꾸 생각난다. 단, 먹고 나면 입천장이 좀 까질 수 있다. 역시 으른의 빵이다.
5_외계인방앗간 “크림 인절미빵”
은빈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절대 들어가 보지 않았을 곳이다. 딱 봐도 소보로빵과 고로케류만 팔 것 같은 촌스러운 느낌의 빵집이니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빵집이다. 모든 빵을 쌀로 만드는 이곳은, 빵집과 떡집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먹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놀러 오신다면 미리 사서 돌아가시는 길에 챙겨 드리고 싶은 빵들이 즐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