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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Jul 21. 2022

Orchestra Inside 호르니스트 김홍박

호른도 다양한 매력이 있더라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에 취소된 공연이 참 많다. 호르니스트 김홍박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신영체임버홀에서 계획했던 리사이틀이 무려 두 번이나 연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2022년 7월 20일. 3전 4기의 누군가처럼 미뤄지고 또 미뤄지던 공연이 마침내 진행됐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회장을 놀이터 삼아 다니는 나조차도, 호른 리사이틀을 관람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 호른이라는 악기는 오케스트라와 (일부 경우에 한해) 실내악을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고, 어려운 악기이니 만큼 음이탈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에 공연 관람이 리사이틀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오슬로 필하모닉에서 호른 수석으로 활약 중인 호르니스트 김홍박의 무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슈만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폴커 다비드 키르히너 세 개의 시, 힌데미트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진행했다.


곡을 듣고 간단한 소감만 적어보자면,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에서는 호른 특유의 따스함을 함께 느껴볼 수 있었고, 키르히너의 세 개의 시에서는 손으로 벨을 막아서는 ‘게슈토프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과를 통해서 내뿜어져 나오는 호른의 수많은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홀의 잔향인가 싶을 정도로 피아노의 페달을 사용한 것처럼 음을 길게 뽑아내는 순간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아마 오늘의 무대가 아니었다면 호른의 이런 다양한 매력을 알아채기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좌) 피아니스트 김재원, (우) 호르니스트 김홍박




신영체임버홀에서의 공연은 언제나 간단한 인터뷰가 함께한다. 이번에는 플루티스트 안일구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대담형식으로 진행된 토크 콘서트와 같았는데, 이를 정리해보았다.



- 호른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간단히 말씀 드리면 호흡의 떨림과 양에 따라 음이 변화하는 배음악기이며, 키를 눌러 관의 길이를 변화시켜 음정을 변화시킵니다. 정확한 입술의 떨림과 호흡의 양, 그리고 키 포지션이 일치해야 정확한 음이 나오는 악기로, 배음의 간격이 촘촘하고 음역대가 넓어서 조금만 호흡이 흐트러지면 다른 음이 쉽게 나오는 악기입니다. 따라서 긴장을 하면 바로 티가 나는 악기이기도 하죠.”



- 오늘 연주한 곡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곡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프로그램을 선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오늘의 연주는 3년 전부터 계획됐던 연주였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두 번이나 연기 되었어요. 금관악기가 호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악기이니 만큼 작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걸 좋아합니다. 작은 공간에서 듣는 호른의 소리가 압도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호흡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죠.

오늘 연주한 곡들은 현대음악이 두 곡이나 포함되어 있어 감상하기에는 대체로 난해한 곡들입니다. 연주를 하는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효과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음악적인 어려움을 배재한 채로 호른의 다양한 음색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호른 독주회도 많지 않다보니, 이번 기회를 잘 살려서 호른의 매력을 보여주고, 흥미를 유발하고 싶었어요.

비록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이 곡을 듣는 관객들이 너무 시끄럽게 느끼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잠깐 해보았고요.(웃음) 첫 곡을 연주할 때는 관객들이 다소 가까이 있다 보니 입이 마르고 긴장도 되었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꼈고, 이로 인해서 무사히 연주를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지금 수석으로 계신 오슬로 필하모닉은 세계적인 악단이고,  현재 지휘자(클라우스 켈레) 계신분이 유럽 전체에서 가장 핫한 분이잖아요? 거기 수석 연주자로 있다는  어떤 기분일지 궁금합니다. 동양인도 적지 않나요?


“제가 입단할 때 까지만 해도 동양인은 저 혼자였는데, 지금은 세 명입니다. 사실 외국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아주 막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핫한 지휘자님 덕분에 투어도 많이 다니고 굉장히 바빠졌어요.(웃음)

오슬로 필하모닉은 1919년도에 창단된 오케스트라로 북유럽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이런 와중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오랜 기간 악단을 이끌면서 음반도 많이 내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호른 솔로가 참 유명한데요. 공부할 때 그걸 들으면서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죠. 그래서 (오슬로 필에) 처음 입단하고 나서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바라보는 북유럽 사람들의 특징은 절제됐지만 그 속에서 따뜻한 면이 있거든요. 이런 면모가 오케스트라의 분위기와 사운드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가령 현악기의 경우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따뜻한 소리를 느낄수 있죠.”



- 오케스트라의 호른 솔로가 나올 때면, 지휘자, 단원, 관객 할 것 없이 모두 집중하잖아요? 그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예전에 프롬스를 갔을 때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관객들이 7-8천 명 정도 와있었거든요. 과장을 좀 보태면 그런 상황에서 지휘자가 거의 40마디 전부터 눈치를 줘서...(웃음)

뭐… 호른 솔로가 처음 나오는 곡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브루크너 교향곡 4번 같은 거... 그럴 땐 전날 잠 못 자는 거죠.ㅋㅋ

아까도 이야기 드렸다시피 호른이라는 악기는 참 어려운 악기고, 마음이 편안해야 연주가 잘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분위기(주변 동료, 연주자, 지휘자, 관객 모두)가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존중받고 있고, 저의 소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심적으로 안정되더라고요. 오슬로 필이 그런 점에서 참 좋은 악단이라고 느끼고 있는데요. 미스에 있어서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연주가 끝나면 ‘잘 했어.’가 아니라 ‘오늘 너의 그런 연주, 고마워!’ 이런 이야기를 주변 동료들이 해줍니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 또 이런 분위기 덕분에 되게 편안하게 좋은 연주를 들려줄 수 있게 되더라고요.”



-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네 대의 호른은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어요. 금관악기와 힘찬 소리를 내는가 하면, 목관악기와 어울려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현악기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죠. 때때로 호른이 긴 음을 배경처럼 끌고 있는 경우도 되게 많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이라는 안정된 배경이 있어야지만, 그 안에서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전에 어떤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호른이 바다로 치면 물살이라고요. 물살이 잔잔해야 배가 뜰 수 있는데, 가끔 폭풍이 치고 그러면 배가 뜰 수 없어서 호른이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호르니스트의 퀄리티가 오케스트라의 퀄리티에 많은 부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호른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자면요.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같이 연주할 때마다 감동을 받고 그랬습니다.


“아, 그러셨나요? 감사합니다.”



- 다음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준비할 때와 오늘처럼 솔로 곡을 준비할 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때는 음정과 음색이 함께 잘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오른손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오른 손으로 음정뿐만 아니라 음색 컨트롤을 하게 되는데요. 오른손으로 닫으면 음색이 어두워지고, 열면 음색이 밝아집니다. 이렇게 음색을 먼저 신경 쓰게 되고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는 공연장이 크잖아요. 이때 호른은 벨이 뒤로 향해 있기 때문에 소리가 뒤로 돌아서 나가게 되죠. 그러면 객석에서는 소리가 늦게 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지휘자가 음을 빨리 내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세션 리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신경 써야 할 때가 있죠.

반면 솔로 곡을 준비할 때는 앞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출 때처럼 많은 부분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적인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신경 쓰는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한국과 노르웨이의 거리가 꽤 됩니다. 이런 와중에 상당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는데요. 여가 생활 및 취미 생활을 하시는지요?



“여가 생활이 있으면 안 되는 시기입니다. 다둥이이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육아를 해야 해요. 음악가의 삶과 아빠의 삶에 밸런스를 맞춰보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것이 참 쉽지만은 않습니다. 연주가 많은 이런 시기에는 아빠로서는 항상 미안한 감정이 들어요.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최선을 다해야죠. 어쨌든 여가생활은 나중에... 몇 년 후에 하는 걸로...”



- 가까운 시일 내에 활동 계획이나 기대되는 연주는 무엇인가요?


“저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잖아요? 현악, 목관, 금관 모두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구성한 고잉홈 프로젝트를 올해 시작합니다.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하는데요. 저는 거기서 오케스트라, 실내악 연주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는 감사하게도 협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잉홈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오슬로 필과 투어를 돌아요. 아까 언급하셨던  핫한 지휘자, 켈레와 함께 BBC 프롬스를 가게 가게 되었습니다. 프롬스의 연주 또한 기대를 하고 있어요.”



- 무척 힘드시겠지만, 앙코르 한곡 요청드려보고 싶은데요.


“네, 본 프로그램보다는 좀 익숙한 스크리아빈 로망스 들려드리겠습니다.”



(좌) 플루티스트 안일구, (우) 호르니스트 김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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