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마에스트로.
이탈리아의 열정과 향기를 품고 경기 필을 이끈 마시모 자네티의 임기가 벌써 막을 내렸다. 그동안 그의 오페라 무대를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2019년 돈 조반니는 빈 필 내한공연에 홀려서, 또 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한 탓에 2022년에 진행한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만 챙겨볼 수 있었다.(뭐 그래도… 콘서트 오페라라고는 하지만 오페라에 가깝게 진행이 되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더랬다.)
이런 와중에 그의 고별 무대인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을 찾았다. 이 곡은 베르디 고유의 오페라 선율이 종교음악과 결합된 곡이기 때문에 오페라 지휘자로 잘 알려진 마시모 자네티가 오페라의 색채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낼지, 아니면 종교음악에 포인트를 두고 적당히 중립을 펼쳐낼지가 주요 관람 포인트였다.
그가 풀어내는 해석을 통해 제일 먼저 느껴보았던 것은 현악기의 쓰임새였다. 내가 들어보았던 음반에선 오페라의 색채감을 강조할 때 그 표현력에 있어서 선을 굵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자네티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감정의 표현을 급격하게 올리기보다는 현악기로 순간순간의 풍경을 그려내며 성악가와 합창단의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로 활용하였다.
이는 종교음악에서 이뤄지는 오케스트라 성격보다 극의 흐름에 있어 극적인 표현들을 도와주는 오페라성 반주에 더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무반주 합창을 통해 덤덤하게 시작되었던 종교음악이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더해지자 오페라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시작한 곡은 Lacrymosa 섹션 이후 성악가들로 하여금 좀 더 극적이고 감정에 의존하게 되면서 점차 오페라의 성격이 짙어졌고, 이후 마지막 섹션이었던 Libera me에서는 합창단을 통해 종교음악의 중심을 지키면서도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를 통해 오페라의 향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발산시키는… 상당히 독특한 중립을 펼쳐내면서 곡을 마무리했다.
합창단원들은 대략 94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별도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Dies Irae 섹션에서 그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오디오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통쾌함이 있었고,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될 때는 특유의 풍부한 울림 덕분에 공연장이 하나의 거대한 악기가 되어 곡의 특성이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Tuba Mirum 섹션의 경우 경기아트센터에선 네 대의 트럼펫을 백스테이지에 위치시켰다. 망자들에게 심판을 받으라는 내용이 함께하기 때문에 백스테이지를 활용한 것에 있어서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반면 롯데콘서트홀에서는 합창석의 맨 윗자락에 자리잡고 연주를 하였다. 이는 결국 공간 활용의 일환으로 트럼펫의 위치를 변경시켜야 했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롯데콘서트홀에서의 연주는 왜인지 피델리오 속 운명의 나팔과 같은 성격이 내비쳐진다고 생각했다.
Mors stupebit 섹션에선 경기아트센터와 롯데콘서트홀 모두 베이스 연광철의 단단한 음성이 돋보였는데, 양일 통틀어 생각해 봤을 때 경기아트센터에서 울려 퍼졌던 Confutatis 섹션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섹션에서도 좋은 흐름을 볼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티스트임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소프라노 손현경과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멜리스는 분명 훌륭한 성악가임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었으나 경기아트센터에서 바라봤던 크리스티나 멜리스는 성량 면에서, 롯데콘서트홀에서 바라본 손현경은 목 컨디션(종종 건조해지는지 때때로 덜컹거렸다.)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감정을 표현한다는 관점에선 모두 훌륭했는데, 가령 소프라노 손현경의 경우 레퀴엠이 가진 무게감을 표현해 내는데 있어 특색을 보였고, 크리스티나 멜리스는 Agnus Dei 섹션(특히 경기아트센터 공연)에서 낮게 깔리는 음색을 통해 신에게 안식을 요구하는 경건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테너 김우경은 롯데콘서트홀에서 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주었으며, 성량과 감정의 표현 모든 면에서 아주 훌륭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앞서 언급했던 네 명의 솔리스트는 경기아트센터에선 오케스트라 앞쪽에 위치하였다면,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오케스트라 뒤쪽에 위치하여 공연을 진행했다. 이는 홀 음향에 따라 공간을 활용하는 전략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시사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는 마시모 자네티가 경기 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했다. 롯데콘서트홀에서의 공연은 경기필을 이끌던 자네티의 진정한 고별무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케스트라를 전면에 배치했다는 것은 성악가가 던져내는 메시지보다 악단을 향한 일종의 실험과 도전에 무게를 좀 더 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번 공연을 통해 경기필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점이 함께 노출됐다. 가능성은 분명했다. 오페라의 선율이 가득한 종교음악을 현악기를 통해 배경을 그려내려는 지휘자의 의도에 충분히 잘 따라와 주었고, Ingemisco 섹션을 통해 보았던 바순의 섬세한 연주는 이 오케스트라의 대표되는 특징점이 되기도 했다. 한편 (나름대로 선방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곡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는 호른 파트와 Recordare 섹션에서 베르디의 강한 체취를 나타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던 목관 파트가 한계점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이 눈에 두드러지자 마시모 자네티는 자식처럼 아끼고 이끌던 악단에게 메시지를 던져 보이는 것 같았다.
베르디 레퀴엠의 본질. 떠나간 이를 매개로 남겨진 이들을 위한 경고의 메시지.
이를 자신과 경기 필의 상황과 매칭하여 남겨진 이들을 위한 어둠 속의 선물과 같은 연주였다.
백스테이지가 아닌, 합창석보다 더 위에 위치한 운명의 팡파레를 울리면서 이들의 상황을 직시하게 했고, 비팅을 통해 사랑한다는 말없이 사랑한다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고별이라는 단어속에 참 많은 것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엔 약 20초 정도 되는 의도된 여운보다 더 긴 여운으로,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들어갔다.
마시모 자네티의 고별무대는 그렇게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