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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Dec 26. 2022

2022년 한 해를 빛낸 클래식 공연


퇴근을 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가슴 두근거리는 공연장 나들이를 할 때면 말이다. 때때로 삶의 고단함에 지쳐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었지만, 영혼에 음악을 채워 넣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스트레스를 풀어낼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공연장은 내게 놀이터였고, 삶의 안식처였다. 공연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아쉬움이 클 때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만족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은 오길 잘했네 싶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2022년에 음악회를 찾은 횟수 164회.

개인적으로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됐다. 예당 고객자문단, 오페라 페스티벌 관객평가단, SSF 명예 기자와 같은 대외활동을 조용히 해 보이면서 남몰래 부캐를 키워나갔다. 그렇지만 거의 매일같이 공연을 다니는 콘서트 고어라고 불리는 분들에 비하면 여전히 보잘것없는 숫자이리라… 그래도 예년에 비하면 파이가 커졌으니, 한 해를 돌아보기에 올해도 부족함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개 관객의 가장 주관적인 시선에서 뽑아본 올해의 클래식 공연, 한번 살펴볼까?




*여운: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



오케스트라 부문

틸레만 &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낮고 그윽하게 깔리는 브람스의 바람은 크리미한 부드러움과 진한 낭만의 숨결을 품은 채 우리의 공간을 에워쌌다. ‘교향곡 3번’을 들을 때는 오롯이 행복에 겨워 눈가가 촉촉해졌는데, 곡이 끝난 뒤에도 잔잔하게 남아있는 감정을 쉽게 추스르지 못했다. 한편 콘트라베이스가 8대나 배치돼 그 색채감과 표현력에 있어서 OLED 패널을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실상은 LCD 패널에 그쳐버리는 바람에 아주 소소한 아쉬움이 있었더랬다. 사실 표현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현악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다소 투박했던 목관악기의 음색과 표현력 때문에 콘서트 레퍼토리를 풀어나가는 악단으로선 일종의 한계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휘자만 잘 만났더라면 빈 필이 이 자리에 올라왔겠다 싶기도 하고,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라와 경합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틸레만이 펼쳐낸 교향곡 3번의 여운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었다.




챔버 오케스트라 부문

김선욱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김선욱과의 호흡도 좋았지만, 키릴 카라비츠 지휘 아래 유럽챔버 오케스트라(COE)가 풀어낸 교향곡(멘델스존 4번, 베토벤 7번)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듣는 내내 귀가 상당히 즐거웠던 연주를 들어보았고, 챔버 오케스트라만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는 날렵함을 잘 살려내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음색의 선명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객원으로 참여한 플루티스트 김유빈의 훌륭한 연주도 한몫했지만, 소위 절충주의를 표방하는 악단답게 고전 악기를 사용한 두 명의 트럼펫 주자, 한 명의 팀파니스트가 그 분위기를 몇 배로 잘 살려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수: 어떤 분야에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



피아노 부문

안드라스 쉬프 피아노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즉흥성을 강조하는 모양새였다. 흔하디흔한 예습을 할 수 없으니, 머릿속에는 비교 대상군들이 흐릿해져 있는 상태로 공연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관객들을 대상으로 렉처 콘서트를 진행한다. 우리는 그 무엇이든 편견 없이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상태였고, 그의 강의를 있는 그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으로 시작하여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를 지나 다시 바흐로 돌아오는 모양새를 갖췄는데, 큰 틀에서는 피아노 음악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고, 그 유전자는 어디까지나 바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보통은 연주자가 마이크를 잡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 날 만큼은 예외였다. 참고로 이 부문에 함께 노미네이트 한 연주자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었지만… 나는 안드라스 쉬프의 명강의가 더 마음에 들었다.



관악기 부문   

프랑수아 를뢰 오보에 리사이틀

관악기 협연이나 리사이틀을 많이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2022년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를뢰의 오보에 연주를 빼고 논할 순 없을 것이다. 곡을 듣는 내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가장 이상적인 오보에 소리를 구현해 주었다. 특히 이날 공연의 포문을 열었던 ‘생상스의 오보에 소나타’와 전체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외젠 보차의 목가적 환상곡’은 특유의 명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십분 살려낸 연주였다. 또한 잉글리시 호른으로 ‘드뷔시의 알토 색소폰과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를 연주하면서 오보에족의 매력을 한껏 뽐내보기도 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그가 들려주는 오보에 연주를 매일 같이 듣고 싶단 생각을 했었더랬다. 결론은 그가 갖고 있는 요술 피리는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으로… 2023년에는 레 벙 프랑세(삼일절/롯데콘서트홀)와 함께 다시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다들 놓치지 말자고.



성악 부문   

베이스 연광철 리사이틀

통영과 부산에서는 피아니스트 표트르 옵차로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가곡을 노래했다. 눈앞에서 잘 정리된 교본을 보고 있다고 느꼈으며, 곡에 스며들거나 단단함에 매료되기도 했다. 특히 ‘볼프의 미켈란젤로 시에 의한 세 개의 가곡’과 R.슈트라우스의 ‘밤’, ‘밤 산책’, ‘해방’을 들을 때는 통영의 바닷바람과 함께 했기 때문인지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이 스며들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어보았던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순간순간 깊은 베이스의 음역대가 노출될 때마다 흑맥주를 마시듯 그 호소력과 풍미가 더욱 짙어진 듯했다. 베이스로 들어보는 방랑자의 모습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뼈아픈 외침과도 같았는데, 그래서였을까? ‘부산예술가곡축제’를 통해 그의 노래를 다시 한번 접했을 때는, 시를 담은 노래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방황하고 있었더랬다. 12월, 고양에서 그의 음성을 다시 접해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도전: 기록 경신 따위에 맞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만하임 프로덕션,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바그너의 링 사이클은 하나의 거대한 산맥을 넘는 것과 같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 산맥이 형성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해 2005년 마린스키 프로덕션을 놓쳐버렸다면, 전 막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기도 하다. 2022년, 올해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라인업으로 만하임 극장의 가수와 악단이 모두 한국을 방문하여 링 사이클을 선보이게 됐다. 거대한 산맥이 형성됐는데,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 평일에 진행됐던 ‘발퀴레’와 ‘지그프리트’의 경우 심야버스를 타고 귀가함에 따라 생업과 취미생활,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쪽잠을 자는 순간도 함께 했지만, 이 거대한 산맥을 넘어보았다는 성취감은 분명 존재하더라.(물론 생업의 관점에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만하임 프로덕션은 바그너의 음악만큼이나 연출 면에서도 라이트모티프를 표방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무대 소품, 조명, 의상까지 ‘유도동기’를 적용하였는데, 모든 퍼즐을 풀어내기에는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연출을 통해 신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선을 특별히 강조하였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이는 우리네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스크린 의존도는 높은 편이었고, 이에 따라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느꼈다. 오페라 가수를 떠올려보면, 감정선에 따라 흡인력이 상당했던 브륀힐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고잉홈프로젝트

평창국제음악제의 음악감독 손열음이 사임했다. 그녀가 남겨놓은 유산은 평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음악 안에서 친구로, 가족으로 그 유산을 남겨두었고 이러한 정신은 ‘고잉홈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평창페스티벌 오케스트라(PFO)를 통해 연대감을 느낀 여러 연주자들이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구성한 것이고, 이 구성원에는 PFO에 참여한 멤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멤버도 있다. 중요한 것은 훌륭한 실력을 갖춘 젊은 한국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것이다.


‘고잉홈프로젝트’가 우리의 이목을 끈것은 지휘자 없이 ‘봄의 제전’을 연주하겠다는 것이었다.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케스트라가 거대한 메트로놈이 되어 단순하고, 쉽게 쉽게 곡을 풀어내면서도 솔로 악기 군들의 자율성 또한 눈에 띄는 연주였다. 이로 인해 통제와 자유의 경계를 특별히 강조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군데군데 앙상블의 균열이 깨지기도 했고, 때때로 개별 악기 군들의 특징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등 몇 가지 한계점이 나타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석고상을 깨부순 곽남신 교수처럼,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도전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이기도 했다.




*안녕: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피에타리 잉키넨

피에타리 잉키넨이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또다시 핀란드의 바람이 국내에서 불어오는 형국이었는데, 이로 인해 시벨리우스의 여러 곡을 재조명하는 시간이 되었다. 취임 연주회로 들려준 ‘레민카이넨 모음곡’은 칼레발라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레민카이넨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었고, 이에 따라 중의적으로 곡을 풀어내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지난 10월에는 핀란드의 ‘YL 합창단’과 함께 칼레발라의 또 다른 영웅, 쿨레르보를 그려내어 보였다. 곡이 생각보다는 가볍다는 인상이 함께 했는데, 이때에는 작품의 중심점이 ‘민담’에 있다는 걸 강조하며 인물 중심의 레민카이넨과는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는 ‘핀란디아’에 찬가를 붙인 합창 버전을 연주하는 등 시벨리우스의 다양한 곡을 선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지휘자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악단의 연주 완성도는 요엘 레비의 ‘그날’을 보여준 779회 정기연주회이지 않았나.)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을 이끈 자네티가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로마 3부작을 완성했다는데, 하필 코로나19 확진이 떠서 가보진 못했다. 대신 그토록 염원했던 오페라 지휘에 대해서 대리만족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콘서트 오페라라고 지칭했지만 오페라의 형태에 가까운 ‘피가로의 결혼’이 먼저 떠오른다. 오케스트라는 피트 속에서 연주했고, 오페라 가수들은 연미복과 드레스가 아닌 무대의상을 입고 극이 진행됐다. 레치타티보와 중창이 돋보이는 작품 속에서 극의 조율사로 나선 자네티의 역량이 특히 돋보였다. 지난 7월에는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고별 무대를 가졌는데, 합창단을 통해 종교음악의 중심을 지켜보면서도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를 통해 오페라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겨내며 인상적인 레퀴엠을 들려주었다. 고별이라는 단어 속에 가장 아쉬움이 짙은 지휘자였는데, 그가 악단에게 보여준 애정을 미루어 짐작건대, 객원으로 초청만 한다면 언제든 돌아올 여지가 충분히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땐 구색이 모두 갖춰진 오페라 무대를 볼 수 있기를…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을 이끈 벤스케도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물론 시벨리우스 교향곡을 완주하기 위해 종종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긴 하지만…(부상이 꽤 심각한 것 같은데, 건강하시길 바란다.) 어쨌거나 한 해를 돌아보는 시점에서 특별히 좀 기억에 남는 것은 시벨리우스보다는 말러 교향곡 10번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시벨리우스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전설’의 경우 고요함 속에서 꿈틀꿈틀 거리며 살아나던 현들이 돋보였고, ‘교향곡 1번’의 경우 상당히 역동적이었다. ‘교향곡 3’번의 경우 곡이 주는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면서도 디테일을 챙겨갔기 때문에 곡이 살아 숨 쉬는 듯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벨리우스가 우리네 마음속에 지워졌던 것은 곡을 들으면서 우리네 삶과 연관 지어 사색의 순간까지 데려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말러 교향곡 10번’이 올려졌을 때는, 마치 알마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말러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레퀴엠만으로 구성됐던 1월의 정기연주회는 어떠했나? 코로나19와 국제 정세(우크라이나) 등의 문제를 엮어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이렇듯 연주의 완성도가 일정 이상 넘어간다면, 결국 음악을 삶과 연결 지어 감상했던 것이 우리네 기억 속에 더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 지휘자였다. 아무쪼록 얼른 완쾌하시어 3월쯤 다시 뵐 수 있길 바란다.(이것과는 별개로 악단을 볼 때는 바실리 페트렌코의 브루크너 교향곡 2번을 잘 들었고, 코롤리오프 협연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운치: 고상하고 우아한 멋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고택음악회

윤보선 고택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새가 지저귄다. 안동교회에서 넘어오는 종소리마저 운치가 있었다. 한옥을 등지며 흘러나오는 음악은 석조전 음악회와는 또 다른 풍광을 선사했다. 공연의 퀄리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분위기에 취하는 공연이기도 했다. 보통 때였으면 일과시간 중에 공연이 진행되어 결코 넘볼 수 없는 공연이었지만, 그래도 올해는 오후 5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어떻게 꾸역꾸역 가볼 수 있었더랬다. 혹독한 한파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이 시기에 따스한 봄의 기운이 유독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함께…

사실 기돈 크레머와 함께한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고수> 중 ‘현악기 부문’에 노미네이트 했었더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선함이 가득한, 살아있는 현대 음악으로 영혼을 채워 주었으며, 특히 ‘슈베르트, 또 하나의 겨울 나그네’를 통해 현대인들을 위한 방랑자를 표현하면서 관객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이끌어낸 연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클래식이 들려오는 야외극장(연세대 노천극장)의 청취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한국에서 기돈 크레머와 공연을 하기에 앞서 조성진과 먼저 호흡을 맞추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반주했는데, 이때 저 멀리 어딘가에서 귀뚜라미들이 백색 소음을 내며 함께 연주를 했었더랬다. 마치 꿈과 동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날의 청취… 슬며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적당한 온도와 습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들려오는 드뷔시의 달빛은 논리정연한 ‘좌뇌’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자… 몇 가지 꼽아본 글은 여기까지다. 사실 개인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공연은 조성진, 임윤찬이 독식을 했다만 그것과는 좀 별개의 느낌이었다. 2023년의 경우 나도 ‘짠테크’ 행렬에 동참을 해 볼 예정이기에, 예년처럼 많은 공연을 가진 못하겠지만 음악을 향한 애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적고보니, 여운이 좀 진하게 남는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중 18번째 변주곡이 생각나는 오늘이네.


https://www.youtube.com/watch?v=J5ooLrRKj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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