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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Feb 01. 2023

시샘달 2월, 클래식한 공연은 어때?

사진=픽사베이


이제는 겨울을 끝내고 싶다.

혹자는 말한다. ‘클래식 음악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아. 한 곡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서 현대인들의 체력과 집중력이 받쳐지지도 않을뿐더러 몇 곡 듣지도 못하니 가성비도 떨어지는 편이지.’ 부정하지 않겠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자투리 시간을 스트레스 없이 가볍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츠의 시대’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정서적 겨울’이 찾아와 우리네 마음속에 공허함에 젖어들게 된다.


2월, 겨울의 끝 달. ‘시샘달’

우리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정서적 겨울’ 역시 끊어낼 아주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 겨울을 끊어낼 방법은 다양하다.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던 운동도 좋고, 명상이나 요가도 좋다. 그리고 한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동안 사색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왕이면 음악과 함께 말이다.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사색에 빠져 보려 한다면, 장소도 참 중요하다. 집이나 회사에 있으면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장으로 향하는 편이 좋다. (단 공연장에서 사색이 아닌 숙면을 취하지 않으려면 곡이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번 듣고 가길 추천한다.)  자 그렇다면, 이 달에 가볼 만한 클래식 공연은 무엇이 있을까?


오케스트라, 그 거대한 파도에 대하여

(왼쪽부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베토벤 5번
-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바이바 스크리데), 베토벤 교향곡 5번

‘빠바바밤~ 빠바바밤!!!’ 베토벤 하면 누구나 떠올려보는 이 운명의 동기를 현장에서 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향해가는 베토벤 특유의 에너지는 차갑게 식어있던 우리네 심장을 두드린다. 아 물론 얼어붙어 있던 우리네 심장을 녹여낼 시간도 주어질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바이바 스크리데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수 있는데, 악장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며 우리에게 추억 속의 여행을 선사할 것이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 KBS 교향악단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말러 교향곡 2번(소프라노 이명주,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

우리네 삶은 행복과 기쁨과 설렘 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고통과 외로움에 노출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이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혹시 당신의 마음속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면, 말러의 음악을 들어보라. 특히 교향곡 2번의 경우 곡을 통해 장례식에서 부활의 순간까지 그려내는데, 곡을 모두 다 듣고 나면 우리네 삶 속에서 함께 해온 고통의 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일깨워 줄 것이다. 이 공연은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음악회인데,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2023.2.23 / 롯데콘서트홀)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휘를 맡은 이가 무려 이스라엘의 거장 ‘엘리아후 인발’



2023 서울시향 지안 왕의 엘가 첼로 협주곡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오후 8시(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렛 딘 ‘코마로프의 추락’, 엘가 첼로 협주곡(협연 지안 왕), 홀스트 행성

‘창백한 푸른 점’ 보이저 호가 찍은 지구를 본 적 있는가? 이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우주의 먼지 같은 우리네 존재를 한없이 작아 보이게 하며 또 한없이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게 될 ‘홀스트 행성’은 천문학적인 배열이 아닌 점성술에 의한 배열로 이뤄져 있지만, 인간을 투영한 신화 속 인물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결국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일맥상통하리라…



피아노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왼쪽부터) 다닐 트리포노프,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
-2023년 2월 18일 오후 5시 30분(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차이콥스키 어린이를 위한 앨범, 슈만 판타지, 모차르트 환상곡, 라벨 밤의 가스파르,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5번

젊은 연주자들이 주는 신선함이란 게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곡에서 색다른 발견을 하는가 하면, 곡을 해석함에 있어 본인의 색을 입힌 트렌디한 디자인을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다닐 트리포노프는 이런 특징점이 유독 도드라지는 연주자이다. 우리는 이번 공연을 통해 젊은 연주자가 선사하는 색다른 시각의 흡인력과 설득력을 느껴보고 관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네 삶 속에서 어떤 색깔을 표현해 내며 살아가야 할지, 또 이 색깔을 표현해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가만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 피아노 리사이틀
-2023년 2월 28일 오후 8시(롯데콘서트홀)
-바흐 파르티타 6번, 시마노프스키 마주르카 발췌, 베베른 변주곡,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

연주회를 다니다 보면, 곡에 대한 감상만 이뤄지지 않는다. 곡이 모두 끝나고 오늘의 프로그램에 대하여 곱씹어 보고 공연이 선사하는 의미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연을 추천한다면,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 피아노 리사이틀일 것이다. 곡마다 서로 각기 다른 색감을 갖고 있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이어주는 섬세한 연주로 인해 우리는 특별한 통일감을 마주할 수 있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객석에 앉아 있는 동안 있는 그대로 음악을 느끼고, 곡이 모두 끝난 후에 프로그램 전체를 음미한 다음, 이를 삶 속에 잘 녹여내기만 하면 된다. 저마다 갖고 있는 개성과 표현해 내고 싶은 색깔이 다양하더라도 통일감이 있는 톤 앤 매너를 갖추는 것.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표방하는 톤 앤 매너도 함께 갖춰가는 것 말이다.



2023 서울 피아노 아카데미 시리즈

릴리야 질베르스타인(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교수)
-2023년 2월 1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슈베르트 6개의 악흥의 순간, 슈베르트 4개의 가곡(리스트 편곡), 라벨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 쇼숑 몇 개의 춤곡


안티 시릴라(독일 뮌헨 국립음대 교수)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포레 녹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 브람스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품, 슈만 피아노 소나타 3번

오픈 레슨을 받지 않아도 좋다. 렉처 그 이상의 무언가. 유학을 떠나야 만날 수 있는 교수님들의 연주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전공자들만을 위한 연주일까? 어떤 한 분야에서 일정 경지에 오른 이들의 연주는 음악 속에 삶이 녹아있다. 우리는 이들이 그려낸 삶의 형태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깊은 공감을, 누군가는 상처의 치유를 또 누군가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아 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2월 3일에 예정되어 있던 당 타이 손의 경우 모친상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만남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콘서트
-2023년 2월 14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Lovely’ 최근 몇 년간 볼 수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이미지다. 연주 속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전성기 시절의 완성도 높은 연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때때로 우리네 엄마와 이모, 할머니에 대한 따스한 추억을 떠올려보고, 뜬금없이 어딘가 사랑스러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연상케하는 그런 연주에 우리는 삶 속에 중요한 우선순위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봄소리 & 라파우 블레하츠 듀오 콘서트
-2023년 2월 22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소나타

김봄소리의 바이올린을 파워풀한 면이 없어 아쉬워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이올린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특징점이 있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상자로 하여금 보다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거기다 함께 호흡을 맞출 피아니스트가 라파우 블레하츠라니. 2023년 2월. 우리의 감성을 깨워낼 시간이 도래하였다.




이 외에도 폴 루이스 피아노 리사이틀(2.9 / 금호아트홀)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2.12 / 예술의전당), 베르사유 궁전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2.19 / 롯데콘서트홀) 등 일정 수준 완성도가 보장되어 있는 매력적인 클래식 공연들이 많이 있다. 공연장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 우리네 영혼이 시들어갈 때쯤, 그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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