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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Feb 03. 2023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의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Orchestra Inside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현악기와 강렬한 금관악기 사이에서도 우리의 귀를 자극하는 악기가 있다. 포근함을 갖추었으면서도 아련한 슬픔을 담아내기도 하며, 때론 경쾌하고 격정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목관악기 말이다. 곡의 내용면에서는 악역을 맡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참 매력적인 음색을 갖고 있다. 요즘 나는 그런 목관악기에 꽂혀 있다.




Orchestra Inside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2023년 2월 2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던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이 신영체임버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프로그램은 굉장히 다채로웠다. 라틴 재즈 연주자로 잘 알려진 쿠바 출신의 남미 음악 작곡가 ‘파퀴토 드리베라’의 소품부터 ‘드뷔시’, ‘루이스 카후자크’, ‘풀랑크’ 등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들려주며 클라리넷의 섬세하고도 폭넓은 다이내믹 세계를 감각적으로 인도했다.


특히 Gualdi의 편곡으로 이뤄진 거슈인의 ‘파리의 미국인’은 유머러스하고 재지(jazzy) 한 선율을 극대화한 듯했고,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을 듣고 있을 땐 비통한 '카바라도시'의 감정이 잘 살아나 그가 왜 ‘메트’ 수석으로 발탁됐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신영체임버홀에서의 공연은 단순히 독주회의 성격만 갖고 있지는 않고 간단한 인터뷰가 함께한다. 이번에도 사회를 맡은 이는 플루티스트 안일구.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토크 콘서트와 같았는데, 이를 정리해 보았다.



- 클라리넷 협연을 비롯해서 큰 공연장에서 연주 많이 하시잖아요. 이런 소규모 공연장에서 느끼시는 거나 연주하실 때 다른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큰 무대는 무대와 객석이 이 정도로 가깝지는 않아서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되는데, 소규모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가깝다 보니 긴장을 많이 하게 되네요. '긴장이 안 풀리네, 안 풀리네’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주를 하게 됐어요."




- 호흡하는 소리부터 클라리넷의 세세한 노이즈까지 전부 다 들리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셨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객석에서는 클라리넷의 매력이 너무 잘 느껴졌어요. 앞서 연주를 통해 충분히 보여 주셨지만, 조인혁 클라리네티스트께서 생각하는 클라리넷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른 목관악기에 비해 셈여림이 섬세하게 가장 잘 표현되는 악기인 것 같아요. 다이내믹의 폭이 굉장히 넓어서 크고 작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죠. 클라리넷은 다른 악기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에요. 이런 짧은 역사 때문에 좀 더 현대적인 색채가 도드라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195:1의 경쟁률을 뚫고 블라인드 오디션에 선발되어 클라리넷 종신 수석주자로 활동하셨잖아요? 오디션 보실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나요?


"말하기 굉장히 쑥스럽네요.(웃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오디션에 선발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디션이 자주 있는 자리가 아닌 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였거든요. 뉴욕에 놀러 가자는 마음을 반정도 가지고 갔었는데, 그때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운이 작용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 이렇게 또 겸손하게 이야기를 주시네요. ‘메트’에 입단하기 전에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셨잖아요?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유럽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적인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음악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메트로폴리탄의 경우 음향적인 부분과 구조적인 부분에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도 좀 덜하는 편이고, 좀 더 단단한 앙상블이 많이 이뤄지는 편입니다."


사회를 맡은 안일구의 이야기를 듣는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 플루티스트나 오보이스트와 인터뷰를 해보면 저마다의 악기가 오케스트라의 중심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요. 조인혁 클라리네티스트가 보시기에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안에서 클라리넷의 역할은 어떤 것 같으세요?


"플루트나 오보에가 중심이라는 이야기는 동의하고요.(웃음) 물론 클라리넷이 오케스트라 안에서 솔로 악기로 종종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목관악기 사이에서 블렌딩을 담당하는 편이에요. 음색을 부드럽게 낼 때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 굉장히 부드럽게 표현되기 때문에 좀 더 소리가 감싸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게 저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오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작품부터 클라리넷이 좀 더 부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솔로들도 많죠. 예를들어 오페라의 이중창 같은 경우에는 무대 위에서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르면 오케스트라 피트에선 클라리넷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식입니다. 아무래도 오페라 작곡가들의 관점에서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용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오페라에서 단순한 반주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때 ‘오블리가토 악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씀 주신 것처럼 오페라에서 클라리넷이 오블리가토 악기가 되는 경우 성악가와 거의 같은 정도의 비중으로 연주를 해야 하고, 아리아에서는 그 음악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기도 하죠.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사실 공연 시작 20분 전에 좀 무례한 부탁을 드려보았습니다. 오페라 솔로를 한 곡 정도 들려주실 수도 있냐고 말이죠. 근데 이걸 또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한번 청해 보려고 합니다.


"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남자 주인공(카바라도시)이 감옥에 갇혀 사행 집행이 있기 전에 자기의 연인(토스카)을 그리면서 아리아를 부르는 애절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좋은 연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드려보겠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다른 오케스트라로 가거나 더 이상 오케스트라 솔로를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오케스트라마다 1-2년 정도는 유예기간을 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근데 이 연주 직전에 조인혁 선생님께서 다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수석으로 가신다고 이야기를 주셨어요. 그렇게 결정하게 되신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서의 삶도 굉장히 만족하고 너무 감사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연주에 초청을 해 주셔서 실내악 연주도 하고 협연 무대에도 섰죠. 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부분에 있어서 제가 생각해왔던 열정 등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느껴졌어요. 이뿐만이 아니더라도 가정 내 구성원으로써 제가 내려야 할 결정 등도 있었고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 한동안 운영되지 않았다. 이에따라 그는 2020년 3월 말에 한국으로 이사를 하게 됐으며, 이후 국내에서 연주활동과 교육 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 제가 너무 무거운 주제로만 여쭤보았네요. 분위기 전환을 해보겠습니다. 클라리넷을 하루 종일 연주하진 않으시죠?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실 때는 어떤 시간을 보내시나요?


"예전에는 연습을 많이 했죠. 지금은 육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아이 유치원 데려다주고, 유치원 끝날 때쯤 다시 픽업해서 학원 보내고, 학원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다시 집에 데려옵니다. 집에 와서는 씻기고, 책 읽어주다가 재우고 그럽니다.(웃음)"


- 육아라는 게 참 쉽지 않죠. 그런 와중에도 오늘 정말 좋은 연주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연주를 끝낸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그가 다시 메트로 돌아가고 나면, 우리는 그의 연주가 참 그리워질 테다. 하지만 아직 섭섭해하진 말자. 서서히 강렬해지는 태양 사이로 다시 한번 감각적인 연주를 들어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27일 목요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에서 오늘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김재원과 함께 리사이틀이 계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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