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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Jun 02. 2024

뷔페와 같았던 국립심포니의 교향악축제

봄의 기운이 가득했던 지난 4월. 올해로 35주년을 맞은 교향악축제에 전국 23개 악단이 모였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4월 12일 상임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와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함께 교향악축제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교향악축제 창작곡 공모를 통해 위촉한 임형섭의 '하윌라'를 비롯해 한국 관객에겐 다소 생소한 장 프랑세의 '클라리넷 협주곡', 작곡가의 명성에 비하면 공연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슈베르트 '교향곡 9번'까지, 알찬 구성이 돋보였다.


첫 곡은 임형섭이 작곡한 '하윌라'를 연주했다. ”첫째 강줄기의 이름은 비손이라 하는데, 은과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창세기 2장 11절 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곡은 '고대', '모험'을 주제로 하는 영화나 게임 음악이 연상될 만큼 웅장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특별히 타악기의 활용이 인상적이었다. 레인스틱을 활용해 사막의 모래바람과 빗소리 등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팀파니를 활용해 큰 북소리를 오스티나토(어떤 일정한 음형을 같은 성부에서 같은 음높이로 계속 되풀이하는 수법)로 끊임없이 노출시키며 세상의 태동을 알리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 태초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선율은 봄을 알리는 '교향악축제'와 잘 어우러졌다. 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 생명이 자라나는 땅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특별히 강조하여 그려내지 않아 곡의 인상만 강조하는 듯해 기승전결을 기대하였던 관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두 번째 곡은 파리 국립오페라 수석으로 활동 중인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의 협연으로 장 프랑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했다. 밝고 위트있는 곡의 흐름 속에서 김한은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클라리넷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테크닉적인 요소를 모두 기록해놓으려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운지와 텅잉(관악기를 연주할 때 혀를 사용하여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주법)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이런 기술적인 화려함 속에서도 곡의 흐름에 따라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연주도 함께 이어졌으며 빼어난 리듬감은 흡인력이 있었고, 필요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강약조절을 하는 등 협연자와 오케스트라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슈베르트 '교향곡 9번 D. 944'을 연주했다. 되풀이되는 형식이 특징인 이 곡을 조금 빠른 템포로 경쾌하게 풀어냈으며 간결한 현악기 연주 사이로 관악기가 밝게 채색하는 형태였다. 라일란트는 반복 되는 선율에 차이를 두기 위해 온 몸을 사용하며 특정 악기군에 악센트를 주어 명도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일순간에 파도가 일렁이며 생동감이 더해졌다. 또한 곡의 완성도를 위해 밸런스 조율에 힘을 쏟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가령 2악장의 경우 오보에 솔로 파트에서 다소 경직된 듯 투박한 연주를 했다. 이 부분만 발췌하여 본다면 유려하고 노래하는 선율이 들려오지 않아 조금 아쉬운 대목일 수 있겠지만, 라일란트는 뒤따라오는 관현악 선율에 경쾌한 리듬을 기반으로 더 두텁게 질감을 만들어 갔다. 연주자와 연주를 이어주는 조율사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곡 전반적으로 라일란트가 입혀놓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만의 색깔이 슈베르트에서도 나타난 형태였다. 하지만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음형을 밝은 색채감을 기반으로 순간의 명도를 높이는 방법을 채택한 것은 곡을 감상하는 데 있어 지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조금 여유 있는 템포로 연주를 시작했다면 곡 중간에 템포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모든 순간을 다채롭게 음미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교향악축제에 참여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갖는 곡을 연주하며 다양한 매력을 뽐냈다. 현대에 창작된 곡이라고 해서 어려운 멜로디를 전면에 내비치지 않고 영화음악처럼 듣기 편안했던 '하윌라', 누구보다 분주했던 협연자와는 별개로 유머러스하고 리드미컬한 선율 속에 관객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었던 장 프랑세의 '클라리넷 협주곡', 베토벤, 말러, 드보르자크에 밀려 생각보다 공연장에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슈베르트 '교향곡 9번'까지. 봄날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축제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마련한 연주는 뷔페 그 자체가 가진 매력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2024 교향악축제에 참여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사진=이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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