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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룸매거진 Aug 25. 2023

잠시 후면 막이 오를 겁니다.

극작가 김희진이 말하는 영국 런던에서의 희곡 작업

극작가 김희진은 지난번 투룸매거진에 <NEXT STAGE>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자신을 전복과 반항을 테마로 부조리극을 쓰는 작가로 표현했다. 그가 끝내 전복시켜내고 반항할 수밖에 없는 실체는 무엇일까? 


*해외 거주 이방인들의 일상 & 커리어스토리를 담는 유료 월간 투룸매거진 23호에 수록된 콘텐츠입니다. 


INTERVIEW

잠시 후면 막이 오를 겁니다.

극작가 김희진

에디터 정혜원  사진 제공 김희진


혜화동에서는 몇 살까지 살았어요?

명륜교회 근처 한옥에서 태어나 12년 동안 살다가 그 이후로는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대학로에서 나고 자란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런 뿌리가 있긴 있는 것 같아요. 연극연출을 전공한 숙모 덕에 어렸을 때 동숭아트센터에서 한 번 아역배우로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극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어른들이 시켜서 한 거였죠. 그런데 나중에 떠올려 보니까 ‘맞다. 내가 그런 걸 했었지!’ 하면서 지금 제가 있는 지점과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럼 언제부터 희곡을 쓰게 됐어요?

극작을 하기 전에 예고에 다니면서부터 현대시를 전공했어요.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시뿐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체험을 해 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어 처음 썼던 희곡이 청소년극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 작품이 데뷔작 <봇>이에요.


졸업 공연 무대


시를 쓰는 것과 희곡을 쓰는 것은 어떻게 닮아있고 다르던가요?

희곡도 시처럼 대사 한 줄 한 줄이 이어지면서 최종적으로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돼요. 시를 쓰는 자세로 인물들의 감정과 상태를 담아서 쓰다 보니 희곡 한 편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쓴 한 줄 한 줄이 목소리를 입어 무대에서 초연되던 날,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시나 소설이 일방적인 소통이 강한 장르라면, 연극은 한 공간에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객석에 앉아 내 앞에 있는 배우와 쌍방향 혹은 다방향적인 소통을 해요. 제가 쓴 글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표현된다는 게 저에게는 너무나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극을 쓰든 연기를 하든 모국어를 써야 내 생각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일본, 영국에서 해내셨어요.

저는 작업할 때 특히나 한국어로 대화하는데도 ‘정말 말이 안 통한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해외에서 온 다른 아티스트와 만났을 때 오히려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몸을 부딪치고 마음이 통하니까 언어를 사용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말이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의 경험이 한국어로 소통하는 과정을 조금 더 매끄럽게 도와주지 않을까요? 

이게 기회가 되더라고요. 한국에서 했던 작업을 떠올려 보니 아마도 그땐 제가 많이 미숙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는 표면에 불과할 뿐, 제가 극작가로서 배우와 연출가에게 마음으로 더 다가갔더라면 더 좋은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반성해요.


영국에서 어떤 학업을 하며 지냈고, 또 어떤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며 지내셨을지 궁금해요.

처음엔 케임브리지에서 1년 동안 배우 수업을 받았고, 그 후에 런던에서 1년 동안 ‘Advanced Theatre Practice’를 공부했어요.


Advanced Theatre Practice 졸업 공연 팀 The Others Theatre Company의 Tunnel Vision 연습


연기를 제대로 배우려던 이유가 있었나요?

제 글이 활자에서 벗어나 실제 무대화가 되고, 배우의 몸을 통해 나타나는 이 과정이 저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런데 그동안 극작가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만 배우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어요. 이 ‘생각의 언어’를 제 안에서 통일하는 것은 어렵지만, 다만 좀 더 배우의 머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체험해 보고 싶었어요. 배우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 글을 보면, 다각도에서 객관적으로 연출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그 후에 참여한 ‘Advanced Theatre Practice’에서 연출을 대하는 내 시각이 넓어진 걸 느꼈나요?

이 학업 과정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협업이 이루어졌어요. 단순히 연출가만 이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배우, 댄서, 디자이너, 희곡론, 인형극, 뮤지션 등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와요. 그야말로 하나에 갇히지 않고 매일 더 많은 가능성을 모색하는 현장이었어요.


영국에 계실 때 만든 작품 <홈랜드Homeland>에 대한 얘기를 함께 해 볼까요?

런던 케닝턴의 화이트 베어 극장White Bear Theartre에서 공연을 했어요.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네 나라 출신의 여성 이민자들이 영국 런던의 조그만 플랫에 모여요. 이방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오해와 사건들이 발생하는 좌충우돌 부조리극입니다.


HOMELAND 공연 무대


사사롭고 끈질긴 문제들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집주인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문제, 같이 사는 플랫 메이트들과 일어나는 문제, 택배 문제 등 정말 사소한 문제들이요. 이런 게 다 나를 주체로 생각하게 되잖아요. ‘나 때문인가? 내가 영어를 못해서 그런가? 내가 이 지역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가?’ 그런 질문들을 던져 본 작품이에요.


아무래도 영국에서 지냈을 때 삶의 경험이 토대가 된 작품이겠군요.

일본에 살 때는 사실 인종이라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한국인으로서 다른 문화를 접했던 경험은 많았지만, ‘이방인’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에서 살 때는 거의 매일 매 순간이 ‘다름’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아시안 여성으로서, 이민자로서 영국 런던에서 살아가는 고충 같은 것을 다른 아티스트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조금 더 활자화, 무대화하고 싶더라고요.


역시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던가요?

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해 봤어요. 각자 겪은 경험을 하나하나씩 주고받다 보니 이 극이 완성되었어요.


매일 매 순간 ‘다름’의 연속을 느끼면서도 ‘왜 해외에 나와 있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너무 진부한 말이지만, 저의 세계를 넓히고 싶어서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 혹은 그냥 자신으로서 느낀 부조리들을 지금 이 상태의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으니 나는 수련하고 공부를 더 해서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저한테 도움 되는 일을 해 나갔어요.


끝내 전복시켜내야만 하고 반항할 수밖에 없는 그 대상은 무엇인가요?

사실 그 실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를 같은 교육에 몰아넣고, 같은 것을 따르게 하는 제도 또는 그것을 구축해낸 신념 같은 것일 거예요. 그것을 깨고 나가려 하는 시도들이 반드시 성공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자기의 세계는 바뀔 수 있으니까 변화를 위한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HOMELAND 공연이 열린 극장에서


데뷔작인 <봇>에서는 변화를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나와요. 작품을 쓰면서 이들을 도와주려는 시선도 있는 건가요?

많은 청소년이 제 희곡의 인물들로 나오는데, 그 인물들은 항상 자기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어리고 미성숙하니까 분투하고 좌절하고 괴롭죠. 저는 그 시간을 도와주고 싶어요. 청소년이 만드는 청소년극, 청소년들이 직접 협업하는 환경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다양한 환경에 놓여 있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고민을 나눌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고민이 무대에 올랐을 때 마침내 관객하고도 나눌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이 내 앞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듣고 있을 때,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이 모든 체험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인생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요. 그래서 저는 더욱이 소외된 시간과 공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홈페이지에 적어 놓은 배우 수업 기록에서 ‘연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이런 답을 적으셨어요. ‘타인을 의식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연기를 할 때 오직 ‘나’에만 도취하면, 그때부터 다른 사람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아요. 그런 순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연극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배경, 다른 이야기가 존재해야만 비로소 내가 존재해요. 항상 저기 어딘가에 타자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과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적었어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맞닿을 수도 있는 답이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9월 3일 런던 Camden people’s theatre에서 하루 동안 졸업 공연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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