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룸매거진 Nov 10. 2023

이 망할 놈의 영어

20여년의 캐나다 이민 생활, 영어라는 언어를 다루는 법

ESSAY

투룸 독자 에세이

이 망할 놈의 영어

글 서경완 그림 김현지




유럽 구석탱이의 한 섬나라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할 짓 못 할 짓 다 해놓은 덕분에 영어는 참 안타깝게도 전 세계 공용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으레 영어권으로 간 교포나 유학생이면 영어를 잘할 거로 생각하지만, 문법도 어휘도 발음도 모두 다른 이 언어의 장벽은 가히 백두산 급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동네에 정착한 이후부터 20년 넘게 거의 매일 영어를 썼다. 다행히 언어적 감각이 없지 않아 있어서 ESL반(English as Second Language)도 일 년 반 만에 떼고 보통반 영어에서 바로 A를 받았고, 이민 온 지 2~3년 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여기서 태어난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영어가 술술 나오는 어린이였다. 초중고 영어는 항상 A를 받았고 학사도 석사도 영어로 했다. 겉보기에는 정말 원어민 같지 않은가?


여기서 고백하자면 석사를 마치기까지 영어 미디어도 매일 접하고, 학위를 딴답시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도 16년간 항상 틀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처음 보는 단어의 발음과 억양, 그리고 관사다. 이제는 내가 진짜 원어민처럼 영어를 한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이민 18년 차쯤이었을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단어를 봤을 때 내가 생각한 발음이 그 단어를 모르는 원어민이 유추한 발음과 같아진 때였다. 모음이 여기저기 들어가 있을 때 어디가 강조되는지, 어떻게 읽어야 매끄러운 억양인지 이민 15년 차에도 알 수 없어서 옆에 있는 원어민 친구를 붙잡고 물어봐야 했는데 말이다.


그림: 김현지



관사는 정말 많이도 틀렸고, 얼추 감은 있었으나 확신은 없었다. 여기다 a를 넣어야 하는지, the를 넣어야 하는지 항상 헷갈렸고, 그냥 한국어처럼 깔끔하게 좀 안 되나 생각한 적도 많았다. 석사 때 지도 교수님께 논문 초고를 보냈는데, 관사를 잔뜩 고쳐주신 걸 봤을 때 느꼈던 부끄러움이랄까 쪽팔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에 쪼들리던 대학원생은 논문을 쓰느라 문법 공부할 시간은 없었고, 유료 교정 프로그램을 살까 했지만 돈도 별로 없었으니 그냥 계속 쪽팔리는 길을 택했다. 그로부터 한 6~7년이 지난 이제야 이놈의 관사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확실하게 안다. 물론 세상이 좋아져서 똑똑한 구글이 자동으로 너 여기 관사 빼먹었다고 알려주는 것도 아주 유용하다. 


영어를 주야장천 쓰면서 살아온 지 어언 22년. 이제 영어를 원어민처럼 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쌍욕부터 정제된 학문용 영어, 불만과 화를 억누르고 교양 있게 닦달하는 업무용 이메일까지 다 섭렵했고, 더는 관사가 불편하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긴 과정에서 영어가 참 뭐 같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여기저기서 다 깨버리고 예외만 한 다발을 만들 거면 도대체 문법은 왜 있는 것이며, 같은 알파벳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왜 이 단어는 이렇게 발음하고 저 단어는 저렇게 발음하는지 그 차이를 알 수가 없다. 뭐 하나 설명하거나 묘사하려면 문장은 왜 또 이렇게 길어지는지 정말 답답했다. 한글로 쓰면 문장 하나면 될 것을 영어로는 서너 문장은 써야 하니 구구절절 쓰느라 손도 아팠다. 하지만 프랑스인 동료에게 듣자 하니 불어는 더 풀어써야 한다고 하고, 영어는 명사에 성별을 부여하는 부질없는 짓을 하여 만인에게 고통을 주지도 않으니 그렇게까지 망할 놈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림: 김현지


그렇게까지 망할 놈이 아니더라도 영어는 어렵다. 어떤 언어를 잘 안다는 것, 원어민처럼 한다는 것은 문법이나 발음뿐만 아니라 그 문화까지 이해해야 하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나불나불 잘 떠들고 사는 나도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을 살고 나서야 영어를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영어권의 모든 이민자와 유학생이여, 발음이 잘 안 된다고, 문법 좀 틀렸다고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당당히 영어 잘하는 너희가 내 말을 알아들어야 마땅하다는 배짱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습득이 어려운 것은 이 망할 놈의 영어 탓이니.




해외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바일 매거진으로 만나보세요. 


투룸매거진 19호 전권 읽기 

투룸매거진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네덜란드 사람들도 직설화법에 상처를 받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