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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훈 Feb 24. 2024

유튜브가 독서라는 이상한 착각

1-2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1-2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요리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요리하는 것이 즐겁다. 처음 요리할 때는 레시피 없인 주걱 하나 들지 못했다. 심지어 레시피를 들여다보느라 식재료 넣는 타이밍을 놓치거나 음식을 태워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레시피를 띄운 스마트폰 없이는 요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리를 십여 년간 하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무궁무진할 것만 같은 식재료 조합과 조리법도, 각각 어울리는 궁합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물엿에 버무린 오이를 뜨거운 물에 데쳐 먹는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기상천외한 음식을 좋아할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아무리 요리가 창의성의 영역을 드나든다고 해도, 식재료 궁합과 조리법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요리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처음 시도하는 음식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인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나는 배달 음식으로 충분하다고 극구 말렸지만, 그는 요리를 좋아한다면서 직접 나섰다. 요리를 시작한 지 20분 정도 지나자,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거실을 채웠다. 그런데 느닷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그가 말했다. "제가 하려던 건 제육볶음인데 뭔가 이상해요. 맛 좀 봐주시겠어요?"


졸지에 실험 대상이 된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가스레인지로 다가섰다. 수증기에 들썩이던 냄비 뚜껑을 열자 된장 냄새가 물씬 풍겼다. '된장찌개도 준비하셨구나.' 나는 뚜껑을 닫고 옆 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 냄비엔 뜨거운 물만 펄펄 끓고 있었다. 두 냄비 외엔 다른 냄비는 찾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는 분명 제육볶음이라고 말했지만, 제육볶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아까 그 된장찌개가 제육볶음인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머쓱잖게 웃어 보였다.


그렇다. 내가 된장찌개로 착각한 것이 실제 제육볶음이었다. 아니, 착각이라고 하기엔 분명 된장찌개였다. 된장 냄새가 짙었고 애호박과 두부가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가 제육볶음에 애호박과 두부를 넣는단 말인가!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보글보글 기포에 맞춰 돼지고기와 애호박이 번갈아 넘실대고 있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상황은 이러했다. 지인은 제육볶음과 된장찌개를 대접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리 도중 미리 검색해 둔 레시피를 혼동하고 말았다. 시작은 제육볶음이었지만, 중간에 된장찌개 레시피가 끼어든 것이다. 지인은 혼동한 레시피를 의심하지 않고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다 자기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물에 근접하자 도움을 요청했다. 적지 않은 요리 경험에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문제를 파악한 것이다.


한낱 우스꽝스러운 경험담에 불과하지만, 이 경험이 정보와 지식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한다. 레시피는 정보다. 레시피에서 얻은 정보를 비교하고, 과거의 경험과 대조하여 '새로운 정보로 재구성한 것'이 지식이다. 즉, 레시피를 보지 않더라도 식재료 간 궁합과 어울리는 조리법을 찾을 수 있어야 요리 지식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유명 요리사와 요리 연구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레시피를 달달 외우고 있어서가 아니다. 기존의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요리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레시피의 역할을 무시하거나 레시피를 참고하는 사람을 깍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위 경험담 또한 당사자의 허락을 받고 작성했다. 다만 위 사례가 정보와 지식의 차이를 설명하기 좋은 경험담이라고 생각했기에 인용한 것이다. 그는 요리 정보는 있었지만, 요리 지식은 없었다. 그 결과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잘못된 정보를 붙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정보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단순 정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겐 지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한때 지식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기도 한다. 나의 유쾌한 요리사로 예를 들면, 제육볶음엔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 새로운 지식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자 정보였다. 이렇듯 정보와 지식의 구분은 해당 개념을 인식하는 당사자의 현 상황에 영향받는다. 바로 이런 난점이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지식을 혼동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보와 지식의 구분이 어렵더라도 둘을 명확하게 나누는 잣대가 있다. 바로 사고가 그것이다. 사고 과정이 배제된 정보는 지식이 될 수 없다. 사고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그저 사방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아직은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정보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정보의 기준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 과정의 개입은 개인 편차와 별개로 작동한다. 비판적 사고는 제대로 알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된장찌개 레시피를 보며 제육볶음을 조리할 때, 약간의 비판적 사고가 작용했다면 잘못된 레시피였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반복적인 사고 활동은 우리가 레시피라는 단순 정보에서 요리 지식을 추출할 수 있게 해 준다.


지식은 선이다. 반면 정보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식은 정보보다 한 차원 높은 층위의 개념이다. 지식은 점진적으로 퍼져 있는 정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의 사고를 수반한다. '우리의 사고'. 이것이 정보와 지식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잣대이며, 유튜브가 독서의 기능을 넘볼 수 없는 이유이다. 유튜브는 사고를 확장하기보단 되레 축소한다. 유튜브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리생각은 착각이다. 다음 장은 그 이유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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