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과학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우스갯소리

by 이일훈

프롤로그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과 실제 그 사람의 행동이 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이 말을 농담처럼 던지곤 한다. 물론 많은 이들에게 그저 유쾌한 농담일 뿐, 이를 진지하게 과학적 명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몇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의 외모와 성격은 정말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우리가 타인의 외모에서 느끼는 직감이 진화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관상을 진화 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관상이 유사과학이라는 입장의 독자는 내 의구심에 크게 반발할 것이다. 그래서 본론에 앞서 몇 가지 확실하게 언급해 두고자 한다. 내가 지금부터 전개할 이론은 단순 흥미에서 시작된 것이고, 현재로선 증명할 수 없는 사변적 접근이며, 난 외모만으로 누군가의 성격을 전부 파악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글을 단순 재미로 읽어주길 바라며, 누군가는 이처럼 엉뚱하지만 흥미로운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가 주길 부탁한다. 자, 그럼 지금부터 관상이 과학일 수도 있는 이유를 시작해 보겠다.



1. 다면발현


진화 생물학 또는 유전학에는 '다면발현(pleiotropy)'이라는 개념이 있다. 다면발현이란 하나의 유전자가 둘 이상의 서로 다른 표현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눈 색깔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면, 해당 유전자는 눈 색깔 외에도 다른 외형적 특징을 발현시킬 수 있다. 외형뿐만이 아니다. 해당 유전자는 우리의 성향이나 선호, 심지어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한 가지 특징을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부수적인 효과로 다른 특징들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눈 색깔과 다른 특징들 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없다. 이는 다면발현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예시일 뿐, 실제로 이런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대신 조금 더 실질적인 예시로 다운증후군이 있다. 다운증후군을 유발하는 21번 염색체의 추가는, 보유자의 신체와 행동에 한 가지 특징만 발현시키지 않는다. 이 염색체의 추가는 외모 전반에 여러 신체적 변화들을 유발하고, 그와 더불어 여러 행동적 특징들 또한 발현시킨다.


그렇다면 이를 더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실험이 필요할까?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은 유전 공학 기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특정 유전자 하나를 편집한 뒤, 거기서 파생되는 다면발현적 특징들을 기록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반인륜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이미 진행되었던 동물 대상 실험은 어떨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아니고, 유전 공학 기술을 이용한 것도 아니지만, 해당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외모와 성격의 상관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면 어떨까?



2. 은여우 길들이기 실험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에프는 야생 동물이 가축화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일명 '은여우 길들이기 실험'이라 불리는 이 실험의 진행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은여우 개체군에서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낮고 온순한 개체만 선별하여 교배시키는 방식이었다. 다음 세대의 새끼들이 태어나면, 또다시 그중 가장 온순한 개체들만 선별하여 교배를 이어갔다. 이렇게 세대가 거듭될수록, 은여우는 사람에게 친근하고 복종적인 행동 특성을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행동만 변화한 것이 아니었다. 은여우의 외모 또한 세대가 지날수록 확연히 달라졌다. 늘어지거나 구부러진 귀, 말려 올라간 꼬리, 짧아진 주둥이, 전체적으로 밝아진 털색 등 흡사 개와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보였다. 오로지 행동적 특징만을 기준으로 인위 선택적 번식을 했음에도, 신체적 특징 또한 특정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성격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요인이 외모에도 다면발현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적어도 은여우에 한해서는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완전히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3. 새로운 개념: 동종 공진화


진화 생물학에는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두 종 이상의 생물이 상호작용하며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함께 진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대표적인 공진화 예시로는 꿀벌과 꽃의 관계가 있다. 꽃은 꿀벌을 유인하기 위해 꿀벌이 좋아하는 색, 모양, 꿀을 진화시키고, 꿀벌은 그런 꽃의 수분을 돕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압이 작용한 것이다. 또 인간과 벼, 인간과 개, 인간과 장내 미생물도 대표적인 공진화 예시이다.


공진화 개념은 '두 개 이상의 종'이라는 전제가 필수다. 하지만 나는 이 공진화 개념을 한 종의 내부로 한정시켜 볼 것이다. 한 종의 특정 유전 형질이 같은 종의 다른 유전 형질과 상호작용하며 진화하는 개념으로 말이다. 이를 지칭하는 용어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성 선택'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개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편의를 위해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나는 한 종의 내부로 한정된 공진화를 '동종 공진화'라고 부를 것이다.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과학계에 이런 공식 용어는 없다. 이 점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새로운 개념인 '동종 공진화'는 같은 종 내의 각기 다른 유전 형질들이 서로에게 진화적 압력을 가하며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를 '성 선택'과 혼동할 수 있다. 하지만 성 선택이 특정 형질이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해당 형질이 더 많이 번식하는 현상을 주로 다룬다면, 동종 공진화는 선택받는 형질과 선택하는 형질이 서로에게 진화적 압력을 가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특정 외모를 선호하는 유전자가 그 외모를 발현시키는 유전자의 빈도를 높이고, 그 외모를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다시 그 외모를 선호하는 유전자의 유용성을 강화하는 식이다.



4. 통합, 그리고 결론


자, 지금까지 나는 다면발현, 은여우 길들이기 실험, 동종 공진화에 대해 언급했다. 아마도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세 가지 개념만으로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명제가 사변적으로 옳을 수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은여우의 행동적 특징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신체적 특징 또한 발현한다면, 인간의 유전자라고 해서 다르다고 볼 이유는 없다. 만약 여러분이 '인간도 동물이다'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인간의 특정 유전자도 성향과 외모를 넘나드는 다면발현적 요인을 갖출 수 있다. 그리고 실제 다운증후군이 이 가설을 보완하는 실질 사례이기도 하다.


핵심 결론은 이것이다. 인간의 특정 성향을 유발하는 유전적 요인이 외모에도 영향을 주었고, 이 외모를 더 잘 구분하는 또 다른 유전적 요인이 인간의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일 종 내에서, 각기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유전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동종 공진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인간의 직감은 단순한 느낌 그 이상이다. 직감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얻은 진화적 '기술'이나 다름없다. 갓난아기도 뱀을 처음 보면, 경험적 지식이 없더라도 기겁부터 한다. 뱀에게 호기심을 갖고 다가서는 유전 형질은 보유자의 생존을 방해해 후대로 이어질 확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외모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외모를 보고 직감적으로 인상을 판단한다. 그 인상을 더 명확히 구분 짓는 유전 형질이 당연히 사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이는 곧 후대에 남겨질 확률 또한 증가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외모에 아름답다고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 신체적 아름다움이 지능, 건강, 번식 능력 등 생존에 긍정적인 요소들의 다면발현적 징표라면, 그런 외모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유전 형질이 당연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진화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적으로(드디어!)' 꽤 인정받는 가설이다. 실제 지능이 높거나 건강할수록 외모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일부 존재한다(눈물이 흐른다).


바로 위 '과학적인' 주장이 인정받는 가설이라면, 조금 비약적이긴 해도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주장은 이미 과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하나의 특징이 특정 성격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은여우의 늘어진 귀가 은여우의 온순함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지닌 것처럼 말이다. 실제 우리는 개를 볼 때 직감적으로 사나운 개와 온순한 개를 파악하며, 이 직감은 꽤 높은 정확도를 가진다. 이를 고려한다면, 개보다 우리의 생존에 훨씬 중요한 다른 인간을 향한 직감이 더 높은 정확도를 가지지 않을까? 우리가 타인을 볼 때 3초 안에 첫인상을 판단하고, 이런 형질이 도태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에필로그


하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다. 난 서두에 밝혔듯 외모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엔 윤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이유 또한 있다. 그 힌트는 은여우의 꼬리에서 읽을 수 있다. 특정 행동 특성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얼굴에만 다면발현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친절한 성향을 띠는 유전적 요인이 겨드랑이털 모양에 다면발현적 영향을 미친다면, 그 사람의 외모적 인상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은 누가 봐도 사기꾼의 상인데,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른 신체적 요인들(예를 들어 겨드랑이털 모양, 발가락 사이의 점, 우심방의 주름 등)이 순수함의 징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 직감의 유용성을 보면, 그리고 이것이 유전적으로 얻은 '기술'이라는 것을 보면, 관상은 꽤 신뢰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명제가 생각만큼 터무니없진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차 강조하지만, 나는 관상이 과학이라고 밀어붙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세상에는 이런 주제로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또 필자와 같은 유전 형질이 인류 생존에 일부 기여했으니 살아남았겠거니 하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 그래도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헛소리를 당당하게 해 보겠는가. 그래서 끝으로 시원하게 한 번 외쳐본다. "관상은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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