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냥 친일파 할게요

말뿐인 도덕을 향한 일침

by 이일훈

나는 직장인 극단에서 아마추어 배우로 활동 중이다. 나름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한 번은 독립영화 감독의 부름을 받아 배우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출연 배우는 총 네 명. 그중 두 명은 아마추어 배우였고, 나머지 두 명은 프로 배우였다. 아마추어 활동만 했던 나로서는 프로와의 작업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유명 배우는 아니었지만, 프로 배우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찌 신나지 않을까!


영화 촬영 전에는 배우와 스태프 간 친목을 위해 종종 회식을 한다. 그런데 하필 팬데믹 직후였던 터라 식당 회식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 전이어서 연습실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해 회식을 진행했다. 촬영 준비 기간엔 총 두 차례의 회식이 있었고, 모임 성격에 맞게 영화 이야기와 가벼운 일상 이야기가 대화의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두 번째 회식 자리에서 한 프로 배우가 갑자기 대화의 분위기를 바꿨다. '우리가 만약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과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 질문과 동시에 자신은 망설임 없이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나설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마치 누군가의 생각을 듣기 위해 던진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우리 중 누구도 대답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문자답을 이어가며 이런저런 장광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듣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앞 동료조차 구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거지?'


내 의문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다. 당시 배우와 스태프를 합쳐 거의 스무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함께했고, 회식 때마다 세팅과 뒷정리는 적잖이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독립투사'께서는 그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손을 보탠 적이 없었다. 심지어 돕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가 테이블을 펴고, 음식을 나르고, 끝난 뒤 정리를 함께할 때, 그녀는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뒷정리가 마무리되고 그녀가 꺼낸 화두가 그 '일제강점기 질문'이었다. 그녀가 긴 연설을 마치자 스태프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배우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절대 못 할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또다시 자신의 도덕적 확신과 우월감을 한껏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배우를 추켜세운 스태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발언 기회를 얻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바로 앞 동료의 의견조차 들을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민족의 의견을 대변하겠다는 거지?'


그녀의 말은 오히려 자신을 희생해 민족을 구한 독립운동가들의 위업을 희화화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그녀가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자기 말처럼 최전선에서 태극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관순 열사의 이름 옆에 나란히 그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비가역적이고 대체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참상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채, '나는 민족을 구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렇다. 말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반면, 한 사람의 반복된 행동은 그것이 비록 사소할지라도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말보다 행동'이라는 흔한 표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평소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불편을 수차례 외면했다면, 민족을 구하긴커녕 주변 사람이나 팔아넘기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평소 작은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사람은 더 큰 쓰레기도 거리낌 없이 버릴 것이다. 평소 주변을 돕는 데 인색한 사람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에도 인색할 것이다. 단, 도덕적 우월감으로 자신을 포장할 때면 모를까.


그런데 이런 부류는 자신의 도덕적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도덕성을 '발화'함으로써 그 결핍을 상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결핍은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법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제일 먼저 자기 입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누군가 끊임없이 돈타령을 한다면, 그는 돈에 결핍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누군가 끊임없이 이성 타령을 한다면, 그는 애정이나 성욕에 결핍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끊임없이 도덕 담론을 꺼낸다면, 그 또한 도덕성에 결핍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이를 방증하고 상징하는 집단이 있지 않은가. 바로 정치권 말이다.


추상적인 도덕 담론은 개인의 도덕성을 증명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소소하더라도 일관된 행동들이 개인의 도덕성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내 경험상, 정말 도덕적인 사람일수록 도덕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도덕은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저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실천한다. 호흡에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호흡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한다. 호흡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호흡한다. (물론 학문적 논의는 예외다.)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매국 행위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능력과 인맥, 기회가 갖춰져야만 가능한 '엘리트의 타락'이었다. 그러니 나는 매국을 '안' 했을 거라기보다는 '못'했을 거라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누군가 겨우 세치 혀로 독립운동가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민족을 위해 몸 바친 그들의 희생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들은 동료 앞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지 않는 사람과 같은 선상에 놓이기엔 너무도 훌륭하다. 그들의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구국의 영웅인 것이다.


연기론에는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라는 원칙이 있다. 만약 배가 아픈 연기를 한다면, '배가 아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배가 아픈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관객은 단지 '배가 아프다'고 주절거리는 배우를 보며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말뿐인 연기는 아무나 한다. 이 원칙은 현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도덕성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우리의 도덕성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행동, 그것뿐이다. 만약 말뿐인 외침이 진짜 독립운동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냥 친일파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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