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요리보단 내 것이 담겨 있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이 그릇처럼
그렇게 기다렸던 자취 생활이 아니었던가. 가족들이 탄 자동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진 것을 보고도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입학할 때만 해도 가족들과 헤어지는 게 하나도 슬프지 않았었는데… 한껏 신나 가족들을 보내던 몇 달 전 모습을 생각하니 쨍쨍한 여름날 울고 있는 지금이 괜스레 우습게 느껴졌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여기가 우리 집 맞나 싶은 게 꼭 남의 집에 온 기분. 조용한 방이 낯설다. 1인용 침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바닥이 너무 삭막하게 느껴지고, 지난밤 가족들이 함께 정리했던 물건들이 모두 내 것이라 생각하니 와닿지가 않았다.
화장실에서 칫솔 네 개를 발견했다. 언제 또 올지도 모르면서 칫솔을 남겨두다니, 주인 잃은 칫솔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 물 한 잔이 생각나 냉장고로 향했다.
물 한 잔 마시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뭐.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기도 전에 갑자기 왈칵 울음이 터졌다. 냉장고 문 앞에 엄마가 써놓은 쪽지들이 가득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떠나더니 언제 이런 걸 다 써 붙이고 간 거야. 그러고 보니 어제보다 더 채워져 있는 음식들 하며, 아침보다 더 깨끗해진 방하며… 금세 손을 더 봐놨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가 되감기 되면서 방 풍경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이불에 남아있는 온기, 새로운 짐들에 담겨있는 마음. 홀로 남은 방 곳곳에 가족들의 흔적이 남아있음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내 마음을 속였나 싶다. 엄마가 안아줄 때만 해도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벌레가 걱정되어 눈물이 나는 것 같았는데, 생각할수록 가족들이 그립고 혼자가 되는 게 서글퍼서 그런 것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나 울 리는 없으니까.
그날 밤, 나는 잘 도착했다는 가족들의 전화를 받은 뒤 이불에 파묻혀 또 울었다.
며칠 뒤에는 다시 나타난 대왕 바퀴벌레를 어쩌면 좋으냐고 엄마에게 전화해 펑펑 울었고, 다시 며칠 뒤에는 늦은 밤 돌아온 집에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쓸쓸해 홀로 눈물을 글썽였다. 아마 그렇게 한 달쯤 눈물로 보냈을 거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울기만 하진 않았다. 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니 몰려드는 과제가 그리움이나 쓸쓸함을 느낄 틈도 없을 만큼 나를 바쁘게 만들었고, 바퀴벌레는 내가 무서워하든 어쩌든 매일 등장했다.
사람들 속에 이리저리 뒤섞여 지내다 보면 아무도 없는 내 방의 고요함이 어찌나 간절해지고, 지겹도록 마주하는 바퀴벌레에 맞서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치밀해지고 용감해지는지.
눈물 대신,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즐거움을 얻는 방법과 불청객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그렇게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점차 우는 날이 줄어들면서 눈물이 뜸해져 갔다.
걱정돼서 전화 걸기 전에 제발 먼저 연락 좀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새삼 깨달았다. 내가 생애 첫 자취생활에 어느새 적응했다는 사실을.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건들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익숙한 장소, 흔한 일상이 되어있었다.
그 후로 7번의 이사를 더 했다. 어떤 때는 반년도 겨우 채운 뒤 새로운 곳으로 떠났고, 어떤 때는 사계절이 두어 번 지나갈 동안 한 곳에 머물기도 했다.
보통 내 의사에 따라 결정되었다기 보단 상황에 맞춰 떠나야 했던 거지만, 그래도 이사를 하면 할수록 다행히 점점 마음에 드는 보금자리를 찾았다.
나그네처럼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참 많은 사연들이 생겨났다. 그 사연들이 곧 다음 이사할 곳을 고를 때의 기준으로 추가되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일 것, 주인집과 교류가 적은 곳일 것, 공간 분리가 가능한 곳일 것, 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 곳일 것…
짐의 종류와 양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몇 번 이사를 다닐 땐 고스란히 들고 다니던 첫 자취 때의 짐들을 어느 순간 대부분 정리해버리기도 하고, 가지고 다니기 번거롭다며 일부러 들이지 않던 인테리어 소품과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제나 따라다니던 스무 살 여름, 가족들의 흔적들이 나의 색깔과 섞여 공존하게 되었고, 몇 번의 이사를 더 하다 보니 이제는 집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온통 내 것들이라 그때의 물건들은 구석에서 이따금씩 발견될 뿐이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그렇다. 무조건 싼 것으로 아무렇게나 샀다가 결국엔 몇 번씩이나 바꿔온 식기구들, 대학 졸업 후 새로운 마음으로 장만한 이불 세트, 집들이 선물로 받은 시계, 향초, 무드등… 여러 번 이사한 만큼 물건에 담겨 있는 시간과 기억도 제각각이다.
그 물건들이 곧 나의 20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거의 전부였던 어린 시절의 생활을 벗어나 나만의 생활을 꾸려온 과정들을 담고 있는 것 같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올 때의 성장통, 독립과 함께 책임져야 했던 사건과 감정들. 그런 것들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휴가를 맞아 우리 집에 놀러 온 엄마에게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다. 내가 고향에 가면 엄마가 한식을 만들어 주고, 엄마가 우리 집에 오면 내가 양식을 만들어 주는 게 요즘의 패턴. 이번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를 만들었다.
“엄마, 내가 엄마보다 파스타는 더 잘 만들걸?”
“그러네. 이제 혼자 잘해 먹고 사네.”
계란 프라이나 겨우 할 줄 알았던 내가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다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요즘엔 집안 이곳저곳 나사도 풀었다 조였다 한다는 걸 엄마는 모르겠지. 괜히 우쭐거리는 마음에 얼마 전에는 화장실 전구도 직접 갈았다며 자랑을 했더니, 엄마가 그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본인보다 낫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하긴, 이제는 더 이상 자취 생활에 대한 헛된 로망을 갖고 있지도 않고 혼자인 게 무서워 울지도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적응하며 지내다 보니 소소한 살림 팁이 많아진 건 물론이요, 당하지 않고 살려다 보니 임대차 보호법 같은 것들에는 얼마나 빠삭해졌는지. 요령은 아직 한참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제법 어른이 된 걸지도.
뒷정리를 하던 중 엄마가 그릇 하나를 가리키며 어디서 많이 보던 거라고 한다. 내가 산 거 아니었나?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고향에서 서울로 향하던 날 함께 실려왔던 그릇이다.
얼마 안 남아있는 첫 자취시절 물건을 발견했더니 엄마도 나도 그때의 기억을 꺼내게 된다. 마트에서 물건을 많이 산 게 맞긴 하다느니, 잡아줄 수도 없는 바퀴벌레를 어떡하라고 강원도에 냅다 전화를 했냐느니 그런 얘기들이 이어진다.
그땐 뭐가 그렇게 막막했을까? 그러게 말이야. 지나고 나니 웃음만 나오는 일들. 당시엔 내 짐이 아닌 것을 억지로 나눠 갖게 되었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때 짊어져야 했던 것들은 필연적이면서도 일부분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엄마도 나도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으니까.
엄마가 돌아간 뒤 오래된 그릇을 다시 본다.
이제는 엄마의 요리보단 내 것이 담겨 있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이 그릇처럼, 내 삶을 스스로 채우는 것 역시 자연스러워진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만들 줄 아는 요리가 많아진 만큼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넓혀왔고, 버리지 않을 적정량을 알고 맞추는 만큼 나 자신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홀로 살아온 시간 틈에서 꽤 성장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래, 딱 1인분.
나 한 사람의 몫은 해낼 줄 아는 그런 어른쯤은 되지 않았을까?
<자취하면 어른이 되나요?> 닫음
커버 이미지 출처: flatic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