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
2026년 4월 5일 부활절을 기점으로 사순절이 2월 18일부터 시작되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며 부활절 전까지 40일간 묵상하며 보내는 기간인데, 이번 사순절을 지내며 2020년에 떠났었던 요르단-이스라엘 여행이 생각났다. 성경 속의 이야기가 가득한 그 땅을 걷는 시간이 참 좋았었기에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 그래서 이번 부활절을 기다리며 한 곳 한 곳 추억하며 써내려 가보고자 한다. 요르단 여행의 첫 시작은 바로 요르단의 수도, 암만.
요르단 여행의 첫 시작점은 바로 요르단의 수도, 암만. 요르단은 성경에서 '요단강 동편'으로 나오는데, 구약의 이야기에 많은 장소가 되어주는 곳이다. 암만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장소는 바로 암만성, 시타델 (Amman Citadel). 현지어로 암만 시타델의 이름은 자발 알 깔라 (Jabal al-Qal'a)로 불리는데, 그 뜻은 '성채의 언덕'. 이름처럼 암만 시타델은 암만의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 고대 성채로, 성경에서는 다윗왕과 밧세바 이야기와 연관이 깊은 곳이다. 바로 이 장소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 장군이 전사한 암몬성 전투의 그곳으로, 성경에서의 이름은 '랍바 성'.
해발 약 850m에 위치한 가장 높은 언덕인 암만 시타델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니 아쉽게도 시간상 방문하지 못한 로마 원형 극장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저 로마 원형 극장조차 2세기경에 만들어진 곳이라는데, 얼마나 오래된 역사인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 암만 시내는 잿빛 색의 건물들이 가득했는데, 암만은 법적으로 모든 건물들을 외벽을 요르단산 천연 석회암으로 마감을 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빽빽하게 건물이 서있음에도 무언가 통일되어 있다는 느낌도 나면서, 또 한편으로는 차분하고 우울한 느낌도 함께 느껴졌다.
암만 시타델은 7,000년이 넘는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였는데, 주인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계속 변화해왔다고 한다. 우선 구약 시대에는 '암몬 족속의 큰 도시'라는 뜻의 랍바 암몬 (Rabbath Ammon)으로 불리다, 신약 시대쯤인 헬레니즘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는 필라델피아 (Philadelphi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현재 이름의 암만 (Amman)은 이슬람 세력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고대 이름의 어원으로 회귀한 형태라고 한다. 그리고 암만 시타델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인 우마이야 궁전은 암만이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이슬람 시대에 세워진 궁전. 우마이야 궁전은 비잔틴 양식과 페르시아 양식이 섞여 오묘한 분위기를 나타냈는데, 궁전 안으로 들어서니 파란 돔이 안에는 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신기했다.
암만 시타델은 고대 로마의 헤라클레스 신전, 이슬람의 우마이야 궁전, 그리고 기독교의 비잔틴 교회까지 수천 년의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답게 다양한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 속 이야기에 나온 장소에 내가 서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이렇게 오랜 역사가 담긴 곳에 와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던 마음. 신기한 마음으로 암만 시타델에 남아있는 성경 속의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노력했으나 시타델이 위치한 곳이 가장 높은 언덕이다 보니 주변에 건물이 하나도 없어 사방에서 바람이 꽤 강하게 불어왔다. 그래서 바람에 흠씬 두들겨 맞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암만 시내를 떠나 방문한 또 다른 장소는 제라시 (Jerash). 제라시는 암만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제라시는 성경 속에서는 '거라사'로 불리던 그 지역으로 기원전 4세기 경에 세워진 고대 로마 시대의 거점 도시인 데카폴리스 10곳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중동 지역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제라시는 대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지고 나서 모래와 흙 속에 오랜 기간 파묻혀 있다 발굴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금까지 가봤던 로마 유적도시 중에 가장 잘 보존이 되어있던 곳이었던 것 같다. 로마 시대 하면 성경이나 역사책에서만 보던 시대인데, 이렇게 내 눈으로 그 유적들을 보고 있다니 그저 신기.
제라시는 크기가 엄청났고 봐야 할 유적들이 너무 많아서 거의 뛰어다니면서 봤는데, 제라시에서 가장 좋았던 풍경은 제우스 신전에서 바라보는 타원형 광장의 풍경이었다. 세계사를 배우던 시절, 고대 로마에서 광장 '포럼'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를 배웠던 것 같은데 타원형 광장의 크기를 보니 그 시대에 이곳이 얼마나 상업과 문화의 중심 거점이었는지가 제대로 느껴졌다. 56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둘러싸고 있는 제라시 광장의 길은 수 백개의 기둥이 서있는 열주 대로까지 쭉 이어졌는데 열주대로의 바닥에는 그때 당시의 마차의 바퀴자국까지 볼 수 있었다. 세계사 시간에 많이 들었었던 '팍스 로마나 (Pax Romana)' 시기가 남아있던 곳을 직접 걷고 있다니, 역사덕후로써 그저 감동.
요르단이 이렇게나 신기하고 놀라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니,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제라시 남쪽 극장으로 향했다. 제라시 남쪽 극장은 요르단에서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뛰어난 로마 시대 극장으로, 이곳은 현재까지도 제라시 축제의 무대로 사용이 된다고 한다. 덕분에 암만에서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을 방문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로마 시대 만들어진 극장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들어보면 음향이 좋아서 어느 곳에 앉아도 무대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하는데, 그때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과학적으로 설계했을까 다시 한번 놀라움 가득. 무대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서 2층으로 올라가 봤는데, 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높이감이 상당해져서 나중에 내려올 때는 거의 앉아서 내려온 나는야 쫄보.
제라시에서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은 제라시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곳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르테미스 여신이 제라시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화려한 장식의 기둥들이 서있었는데, 이 11개의 기둥들은 열주 광장의 기둥들의 양식과 다른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라고 한다. 제라시 유적이 만들어진지 2,000년이 지나고 심지어 대지진도 겪었음에도 어떻게 이렇게나 크고 높은기둥들이 무너지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을까. 놀라움과 신기함을 남기며 아르테미스 광장을 마지막으로 제라시 유적 방문을 마무리했다.
다시 암만 시내로 돌아온 우리들의 첫날 저녁 메뉴는 요르단의 전통음식, 만사프(Mansaf). 만사프는 자미드라는 염소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소스에 삶은 양고기를 올린 덮밥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자세한 맛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만사프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내 입맛에 잘 맞았던 것은 기억난다. '가장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요리라는 만사프와 함께,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요르단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