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107주년 삼일절을 맞이하며
2025년 4월 11일에는 제106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기념하며 서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8월 15일에는 제80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며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브런치를 썼었다. 그리고 이번 2026년 3월 1일, 제107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따라잡기 시리즈 대망의(?) 마지막 브런치를 써보려고 한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뜨거운 외침이 가득했던 1919년 3월 1일을 기념하며 써보는 오늘의 브런치는 서울에서 찾아보는 독립운동 역사의 목소리.
독립운동의 목소리를 따라서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역사 테마 공원인 서대문독립공원. 보통 이곳에 오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독립문까지만 눈에 담았었는데, 이번에는 서대문독립공원 안쪽으로 들어가 조금 더 자세히 구경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보러 간 곳은 바로 독립문. 대한민국 사적 제32호인 독립문은 1897년에 완공된 건축물로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독립문 앞의 두 개의 돌기둥은 영은문의 초석으로 1895년 청나라에 대한 관계를 단절하며 영은문을 철거한 후 세워진 게 바로 독립문이다.
독립문 구경을 마친 후 독립문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니 3.1 독립선언 기념탑을 만날 수 있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적 순간을 기리는 구조물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를 외치는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는 기념탑이다. 현재는 서대문독립공원에 의미 있게 세워져 있는 3.1 독립선언기념탑은 사실 12년 동안 버려져있었던 탑이었지만 1992년 8월 15일, 이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념탑 뒤로는 좌우로 독립 만세 운동의 뜨거웠던 장면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한자로 3.1 독립선언서 전문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독립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아쉽게도 보고 오지 못해서 다시 가보는 것으로.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 <3.1 독립선언서> 中
독립운동의 목소리를 따라 찾아간 두 번째 장소는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딜쿠샤 (Dilkusha).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유산 제687호로 지정되어 있는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23년에 지은 붉은 벽돌집은 3.1 독립선언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앨버트 테일러 부부의 집. 3.1 운동 하루 전인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난 테일러 부부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갑작스러운 일제의 수색을 피해 간호사들이 독립선언서 수 천장을 아내인 메리 테일러의 침대 밑에 숨겨두었고 이것을 앨버트 테일러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AP통신의 임시 특파원이었던 테일러는 이 선언서를 본인 아들의 침대 밑으로 옮겨 숨긴 후, 영문으로 번역해 동생을 통해 일본 도쿄로 몰래 보내었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 3.1 운동의 발생과 독립 선언의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딜쿠샤 역사전시관 안에서는 테일러 부부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전시와 역사적 기록물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중요한 언론 활동을 진행했었는데, 3.1 운동 외에도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힘썼다고 한다. 이후에도 독립운동가들의 재판 과정을 취재하는 등 한국의 상황을 세계에 꾸준히 알린 앨버트 테일러는 1941년 6개월 간의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수감 생활을, 1942년에는 미국으로 추방당하며 한국을 떠나게 된다. 1948년 사망 후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딜쿠샤에서 나오면서 460년이 넘은 큰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었는데, 딜쿠샤의 부지가 본래 권율 장군의 집터로 이 은행나무는 권율 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장소를 이제야 와보다니, 그래도 지금이라도 와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 그렇게 독립운동의 목소리를 전 세계로 알려지게 도와준 앨버트 테일러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의 목소리를 따라가 본 서울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1919년 3월 1일 정오,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만세 소리가 수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3.1 운동이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건 이름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주역이 된 독립운동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보여준 결코 당연하지 않았던 용기 덕분임을 늘 잊지 않기를 바라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치고자 한다. 대한민국 만세.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 <3.1 독립선언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