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를 만나러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내 입에서 나올 이름은 바로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일 것이다. 2013년에 방문했던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만났던 <밤의 카페테라스> 그림 속의 푸른색으로 표현해 낸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의 표현이 내게는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때부터 아마 쭉 반 고흐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천재는 단명한다”라는 말이 있던가. 135년 전의 오늘 1890년 7월 30일, 프랑스 오베르쉬르와즈의 묘지에 안장된 너무나도 젊었던 37세의 빈센트 반 고흐. 그런 그를 기억하며 써보는 오늘의 브런치,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방문기.
네덜란드 대표 작가 빈센트 빌럼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은 고흐가 가장 사랑한 동생인 테오의 아들이자 조카인 ‘빈센트 빌럼 반 고흐’에 의해 설립된 곳이다. ‘반 고흐’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 이곳은 유화 200여 점, 소묘 500여 점을 포함해 총 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반 고흐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시간은 10년 밖에 안된다는데, 그가 남긴 그림은 무려 2,500점이 넘는다고 한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본 작품만 해도 워낙 많고 다 너무 좋아서 어떤 그림을 올릴까 한참 고민했다. 포기할 수 없어 이번 브런치는 많은 글보다는 그림 위주로, 그리고 마음 같아서는 다 올리고 싶지만 반 고흐 미술관이 본인들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하는 컬렉션 위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1885년 작품, 빈센트 반 고흐의 초기 대표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 (De Aardappeleters, The Potato Eaters). 네덜란드 뉘넌에서 그린 그림으로 어두운 색감으로 인해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고흐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 그 탁한 빛깔 속에도 얼마나 밝은 빛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그림에 진실을 담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 이들의 삶의 진실을 담아낼 것이다. 사람들의 주름에 배어있는 깊은 삶과 손과 옷에 묻어있는 흙의 의미를 노래할 것이다."
1887년 작품, 파리에서 지내던 여름에 그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Zelfportret met Strohoed, Self-Portrait with Straw Hat). 모델을 살 돈이 없어서 본인을 모델로 자화상을 많이 남긴 반 고흐. 특히 이 작품은 돈이 없어 캔버스가 아닌 마분지에 유화로 올린 그림인데, 저렴한 물감을 사용했기에 주변의 색이 많이 증발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말하지. 자기 자신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신을 그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야."
1888년 작품, 여름에 그린 <추수> (De Oogst, The Harvest). 반 고흐가 가장 사랑했던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인 아를 (Arle)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놀랍게도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단 하루 만에 그려냈다고 한다.
"밀에는 오래된 황금이 뿜어내는 모든 빛이 서려 있단다. 구릿빛도 있고, 청금빛도 있고, 황금빛, 적청빛, 그리고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난로의 불빛처럼 반짝이는 주홍빛도 있지."
1888년 작품, <아를의 방> (De Slaapkamer, The Bedroom). 아를의 '노란 집'으로 알려져 있는 고흐가 살았던 2층의 방을 그린 이 작품은 총 세 가지 버전이 있는데, 반 고흐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은 첫 번째 버전이다.
"내 침실은 아주 단순하게 만들 거란다. 넓고 큰 가구들, 침대, 의자, 탁자, 모두 하얀 나무로. (…) 언젠가 너도 볼 수 있게 될 거란다. 환한 햇살이 비추는 작은 집을 그린 그림, 또는 창밖으로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이 보이는 그림을."
1888년 작품, <씨 뿌리는 사람> (De Zaaier, The Sower). 밀레의 영향을 받은 고흐의 작품 중 하나이자, 그림을 그리기 전 신학을 공부한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씨를 뿌리는 행위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일, 고흐에게 있어 그림이 바로 자신이 뿌리는 생명의 씨앗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시련 속에서도 계속 버텨낼 수 있다면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흔히 이야기되는 사람들 속에 들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 우리 앞에 아직도 싸움이 남아 있다면 그저 조용히 성숙하기를 바랄 수밖에."
1888년 작품, <노란 집> (Her Gele Huis, The Yellow House). 고흐가 아를에서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만든 곳으로, 폴 고갱과의 갈등과 불화로 인해 아픈 시간을 보낸 안타까운 곳이기도 하다. 슬픈 사실 하나, 그림 속 이 노란 집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다고.
"볕이 잘 드는 집의 외부는 금방 만든 버터 빛 노랑으로 칠했고 창틀은 진한 녹색으로 칠했다. (... )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진실로 살 수 있고, 쉼 쉬고, 생각하고, 그릴 수 있다."
1889년 작품, 고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해바라기> (Zonnebloemen, Sunflowers). 고흐가 눈에 담았을 남프랑스의 작열하는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 그림은 배경마저도 그가 사랑한 색, 노란색이다. 이 작품은 고흐의 네 번째 해바라기로, 현재 해바라기 작품은 암스테르담, 런던, 뮌헨, 도쿄, 그리고 필라델피아 총 5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노랑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태양과 햇빛, 창백한 유황색, 부드럽고 눈부신 황금빛. 아! 얼마나 아름다운 노랑인가."
1890년 작품, <붓꽃> (Irissen, Irises). 고흐에게 있어서는 가장 어두웠을 시간이었을 1890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병원에 입원하고 한 달 후부터 붓꽃을 그려나가며 고흐는 자신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보라색 붓꽃 그림과 라일락 덤불 그림 두 점을 그리고 있는데 (...)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1890년 작품, <꽃피는 아몬드 나무> (Amandelbloesem, Almond Blossom). 반 고흐 미술관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1890년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한 첫 선물. 고흐의 사랑이 가득한 선물을 받은 그 조카가 바로 반 고흐 미술관을 세운 설립자이자 자기의 이름을 물려받은 조카 빈센트 빌렘 반 고흐.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초봄에 가장 일찍 피는 아몬드 꽃, 이 그림을 통해 고흐는 조카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조카를 위해 침실에 걸만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핀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지요."
1890년 작품,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 (Korenveld Onder Onweerslucht , Wheatfield Under Thunderclouds). 고흐의 마지막 시기인 1890년 작품들에선 밀밭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이 많고, 유독 그가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감정들이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든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던 고흐지만, 애석하게도 슬픔과 극심한 외로움은 고흐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혼란스러운 하늘아래 펼쳐진 거대한 밀밭 그림이다.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내 길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겠지 (...) 이 그림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 감정을 네게 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1890년 작품,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 (Korenveld met Kraaien, Wheatfield with Crows). 먹구름이 낀 듯한 어둑한 하늘과 까마귀가 그려진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 붓터치 하나하나에 고흐가 가지고 있던 외로움과 슬픔이 확 느껴져서 한동한 그림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지만, 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느낌이 드는구나. (…) 그래, 내 그림들 말이야. 나는 그것을 위해 내 생명을 걸었어. 이 때문에 내 이성은 반쯤은 망가져 버렸지. 그런 건 상관없단다."
내가 왜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고흐의 그림을 표현하는 말들을 생각해 보면 "두드러진 색채, 힘찬 붓놀림" 등이 있는데, 나에게 있어 반 고흐의 그림이 좋은 이유는 어쩌면 주관적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정 명확한 주제인 것 같다. 꽃, 별, 하늘 등의 "자연"이라는 명확한 주제 안에 담긴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와 감정을 본인만의 방법과 깊은 색채로 표현해 낸 고흐. 그리고 거기에 두껍게 물감을 올려내어 - 임파스토 기법이라고 한다 - 그림의 생동감과 반짝이는 빛들을 화폭에 담아낸 반 고흐의 그림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 고흐가 표현해 낸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쁨, 그리고 황홀함까지도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고흐 본인에게 있어서는 슬픔과 극한의 외로움이라는 자신의 어두운 감정들을 그림에 표현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었을까 싶어 한편으론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조금 더 버텨냈다면 자신이 말했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될 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는 그날을 직접 눈으로 봤을 텐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늘 이상향이었던 별로 너무나도 빨리 떠나버린 반 고흐. 자신이 늘 그리고 싶었던 밤하늘의 별이 된 고흐를 기억하며, 반 고흐 미술관 방문기를 마무리해 본다.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 앞에서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 시작은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