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시작한 행정실 공무원, 그리고 그 끝에 관하여

공무원00. 공직생활의 시작과 끝

by 이생원

공직생활의 시작과 끝

친구의 딸 돌잔치에서 친구 아버지는 나에게 물으셨다.

"너 어디에서 일한다고?"
"학교 행정실이요."
"학...교? 소사냐?"

솔직히 당시 나는 소사가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얕잡아 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잡일꾼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뉘앙스를 파악하곤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오래 있지는 않을 거예요."

그때는 몰랐지. 멍청한 내가 새로운 시작도 하지 못하고 결국 그대로 끝내게 될 줄은 말이야.




2012년 7월 나는 교육청 9급 공무원에 임용되었다.


첫 발령지인 G초등학교에서 1년 8개월,

두 번째 발령지인 O초등학교에서 1년 4개월,

세 번째 발령지인 W유치원에서 2년 6개월을 있었고,

마지막 발령지인 C고등학교에서 18일 만에 병가와 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1일 의원면직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현재는 그럭저럭 흘러가며 살고 있는 중이다.




얼떨결에 교육청 공무원


나는 정말로 내가 교육청 공무원이 되어 행정실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행정실이란 존재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거니와 교육청 공무원이 되기 위한 교육학을 공부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합격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결국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되었다.


나는 원래 7급 공무원을 목표로 공부하던 공시생이었다. 그러던 중 공시생 3년 차에 갑작스러운 합격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교육청 9급 시험이었다. 이후 지방직과 국가직도 합격 통보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른 시험과 달리 교육청 면접시험은 날짜가 코앞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필기 합격 발표가 6월 중순인데 약 10일 뒤에 면접이고 6월 말에는 최종합격 발표가 예정되어있었다.


잠깐 위에서 교육학을 공부 안했는데 어떻게 합격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참고로 교육청 시험과목은 국어, 영어, 한국사, 교육학개론, 행정법총론으로 일반행정직렬을 준비하던 나는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아예 공부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사실 7과목을 공부하고 있던 상황에서 교육학개론을 더 공부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과락만 면하자는 심정으로 교육학 책을 보기는 했다. 2011년에는 요약집 한 권을 가지고 5일 정도를 공부했는데 당연히 그 정도로 정리가 될 리가 없었으니 불합격했고, 2012년에는 하루 전날 기출문제 36회를 모두 풀었던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공부하면 기억나는 것은 유명한 학자 몇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상식 선에서 찍는 수준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합격을 했을까?

답은 당시 교육청이 문제를 자체 출제했다는 사실에 있다.

하필이면 교육청 문제 스타일이 내게 매우 잘맞은 탓에 교육학 외의 다른 과목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결국 교육학을 반타작하고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원래 목표로 하던 7급 공무원 시험은 하반기에 있었으나 면접 시험을 준비하게 되면 당연히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기도 아까운 상황이었고 결국 고민 끝에 가장 빠르게 다가온 교육청 면접 시험에 응시하고 최종적으로 합격했다.


하반기 시험을 위해서 임용유예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어머니 왈 일단 한 번 다녀보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냐고 하셨고 그렇게 나는 사회생활을 경험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조만간 떠날 거니까 상관없겠지


나는 살면서 경험을 통해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오랜 고민을 하지 않으면 꼭 뒷날에 선택 당시를 떠올리고 후회 비슷한 감정에 빠진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당시에는 그걸 알지 못한다. 만약 그때 조금 더 고민을 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후회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궁금증은 생긴다.


정말 나는 경험삼아 교육청 공무원이 된 것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친구 아버지께 자신있게 얘기한 것이다. 원래부터 내 목표는 7급 공무원이었으니까. 당연히 머지 않아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었다. 20대 후반의 내가 얼마나 생각이 짧고 멍청했는지 알 수 있는 얘기다.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으니 7급 공무원 시험도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글쎄, 나는 엄청나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보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접한 정보로는 행정실에서 일하는 교육행정 9급 공무원은 퇴근도 빠르고 시간도 여유롭다고 했다. 그게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으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9급 공무원 카페에는 교육행정직들의 불만이 매우 많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했던 게 멍청했다)


그래서 올해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임용유예를 선택하고 7급 공부에 전념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이 정보가 확실히 컸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믿었고 내가 생각한 행정실 공무원은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그리고 사직서


결과적으로 나는 임용 후에도 공무원 시험 공부를 놓지 않았고, 계속해서 시험에 응시했지만 2012년 이후로 합격에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내 방의 책장에는 여전히 공무원 시험 교재들이 꽂혀있었고 나는 아직도 공시생인것처럼 시험을 놓지 못했다.


환경이 바뀌면서 여유도 생기고 공직생활에 적응함에 따라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여기서 정년 퇴직을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조용히 다니면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는 퇴직할 때가 다가올 것인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들어온 공직을 스스로 떠나려고 하는지 많은 이들이(특히 엄마) 이해하지 못했다.


간단히 말하면 조직의 비전을 찾기 힘들었고 조직 내에서 내가 있어야 할 위치가 보이지 않았다.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인생의 절반의 시간을 쏟는 직장에서의 생활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요즘은 MZ세대니 뭐니 하면서 직장은 직장일뿐 이런 얘기가 많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니 썩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직서를 언제 제출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무작정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니 몇 년 정도 천천히 준비하고 비행기가 연착률하듯이 부드럽게 의원면직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듯이 그런 기회도 급작스럽게 생겨버렸고 나는 의원면직을 하기 전에 질병휴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내가 계획했던 대로는 아니었다. 휴직 중에 사직서를 제출해야겠다는 한 가지 계획만 들어맞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 직장 밖에서 만나고 싶은 동료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고 떠오르기도 싫은 악연이 다가오기도 한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이 그러하다.


나 또한 평범한 공무원에 평범한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다. 3년 동안 3번이나 발령지가 바뀌기도 했고 일을 무지막지하게 하기도 했고 일이 너무 없기도 했다. 월급 루팡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기도 했고 이 월급받고 이렇게 일하는 건 너무 무료봉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생각해보면 공직생활에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이 배웠다. 특히 공부만 할 줄 아는 샌님이던 나를 인간구실을 하게 만들어준 것도 행정실이란 곳이다.


그래서 나는 운이 좋은 공시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직서를 써내려가면서도 만약 내가 합격하지 않았다면 공무원에 대해서도 모르고, 조직에 대한 좋고 싫은 점도 몰랐을 것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공무원 타이틀을 버린지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무원 생활은 내게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다. 딱히 절이 싫어 떠난 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을 조금 틀었을 뿐이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겪게 해준 공직생활,

다 잊어먹고 과거의 산물로 남기 전에 많이 적어둬야겠다.

사직서에서도 숨길 수 없는 악필의 흔적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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