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난치병인만큼 완치가 안된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와닿는 것 같다.
물론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 이정도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 희귀난치병 환자의 숙명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병이기 때문에 장단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2023년 4분기에는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9월 추석 전부터 포도막염이 재발하는 바람에 괜찮았던 컨디션이 나락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매일 꾸준히 홈트레이닝을 해왔었는데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중단됐다.
그러다보니 체력은 다시 떨어지고 몸 상태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포도막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심각성을 생각해보게 된 것은 재발 주기가 많이 짧아졌기 때문이었다.
맨날 기록을 해둬야지 생각하면서도 기록을 해두지 않아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두달마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가면서 염증이 생겼는데 대학병원을 가기 싫어서 쉬면 낫겠지 하고 놔둔게 화근이었다.
실제로 먹는 약인 스테로이드제의 항염증 작용은 쓸만하지만 그외에는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것이 처방이기 때문에 요 몇 년 동안 재발하면서 약을 먹으나 먹지 않으나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정기진료일 이전에 포도막염이 재발했을 때 그냥 남아있는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면서 이른바 자가치료를 행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하고 상황을 지켜보려는데 마침 1년 정도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술을 한 잔 했더니 다음날 뭔가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간 고민하다가 대학병원에서도 재발했을 때 오기 힘들면 근처 안과라도 가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가까운 안과를 방문해 진료를 받았는데 거기서 좋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
"안앞이 많이 높네요. 백내장, 녹내장 있는 것은 아시죠?"
백내장, 녹내장에 대해서는 대학병원 진료시에는 전혀 듣지 못했고, 안압이 높다는 소리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안압도 높아서 녹내장 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조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약을 쓰면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혹시라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특히 녹내장이나 백내장은 한참 뒤의 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씀하시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은 포도막염 재발하면 먹어왔던 스테로이드와 함께 안약 4가지였다. 원래 안약은 그렇게 많이 써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점안액, 녹내장 안약 등이 포함되어있었고 하루에 2번 넣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손 푸짐하게 약을 들고 가니 마음이 심란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컨디션과 몸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틈틈이 체력을 기르기 위해 근력운동을 했는데 오히려 이게 몸에 무리를 주면 도리어 재발을 해버려서 이도저도 못했다. 그래도 9월까지는 3개월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해와서 이제 몸이 좋아지려나 싶었는데 결과가 이렇다니.
급 침울해졌다.
스테로이드를 또 한 번에 여섯 알을 먹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는 더 많이 먹은 적도 있지만. 어쨌든 스테로이드를 증량한 만큼 또 줄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예전보다는 부작용이 덜하기도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 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아서 스테로이드로 해결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여러번 했던 다짐같지만 이번에 잘 치료받으면 정말 제대로 관리해야겠다고 또 생각했다.
다행히 스테로이드를 꾸준히 먹으면서 염증도 좋아지고 안압도 내려갔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걱정을 덜 수 이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염증이 재발했던 왼쪽 눈이 나아지니 갑자기 오른쪽 눈이 이상해지더니 염증이 올라온 것이다. 며칠 전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느낌이 오른쪽 눈에 느껴졌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서 걱정스러웠지만 설마했는데 3일 뒤에 일어나보니 눈이 시뻘개져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대학병원 안과 진료일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호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왜 하필 이런 병이 생겨서 이렇게 번거롭고 남들은 겪지 않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몸이 아프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증상이기도 하고 당시엔 20대라 낫기도 빨리 나아서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베체트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이 언제였는지 그리고 또 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군대를 다녀온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