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00. 대학을 졸업하니 할 게 없더라
대학을 졸업하니 할 게 없더라
"너는 공무원 준비 안하냐?"
"나?"
행정학과 동기들끼리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대화 중 하나는 바로 공무원 시험이다.
그 목적으로 입학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나는 딱히 그 부류는 아니었다.
"글쎄...일단 아직 졸업까지 시간 남았으니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그게 내 솔직한 대답이었다.
참고로 엄마가 내심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는 건 알고 있었다.
행정학과에 들어온 것도 사실 그 이유가 컸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 길 말고 다른 길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열정이 있는 대학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아, 한 2년 여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졸업이네."
금세 졸업을 맞이한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까 좀 열심히 살지 그랬냐.
얄짤없이 군대를 24개월을 다녀왔으니 총 6년을 대학생의 신분으로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특혜 중의 특혜인 휴학을 군휴학 빼고는 해보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다도 졸업 유예를 신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취업을 준비할 생각은 없었으니 별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 고민을 해볼만도 한데 당시의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동기들도 모두 휴학없이 2010년에 대부분 졸업을 했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2004년 학번으로 입학하여 05년도 군번으로 군에 입대했고, 07년에 제대와 함께 복학하면서 어느새 3년이 지나 나는 경제활동의 전선의 앞에 서게 되었다.
졸업이 홀가분한 느낌도 들었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백수가 된다는 점이 확실히 미묘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나의 타이틀은 졸업하자마자 대학생에서 공시생으로 바뀌었다.
사실 졸업하기 전 4학년 시절에 고민은 했었다. 3학년을 전공과목으로만 듣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나서 조금 여유가 생겼기에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말이다. 행정학과 출신으로서 보통 진로라 하면 공무원 시험 준비라고 할 수 있는데, 5급 행정고시를 노리느냐 아니면 7급이나 9급을 노리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길이 달라졌다. 고시준비생은 따로 기숙사 같은 것도 있었다.
아예 공무원이 아닌 길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당시 나의 지식수준과 시야는 매우 협소했기 때문에 딱히 좋은 길을 찾지는 못했다. 게다가 경험주의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머리로만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사기업에 취업을 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특히 취업준비와 더불어 면접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무원은 필기 시험에 합격하면 거의 최종합격에 가까웠으니 그런 점은 고려할만 했다.
결국 4학년의 마지막을 졸업 논문 작성과 함께 마치면서 이대로 큰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공시생이 될 것임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9급 공무원 시험에 대해 얕잡아보는 분위기가 조금 더 있었다. 특히 남자라면 9급보다는 7급이었다. 공시생이 보기에는 급수 차이가 상당히 커보이지만 실제 공직에 들어와보면 둘 다 어차피 하위 직급에 불과하다. 어쨌든 5급인 사무관을 달 수 있을 확률이 달라지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자들 중에는 7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본인의 의지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는 말이다.
나는?
졸업하던 해인 2010년 2월에 5급 시험에 응시했다.
꿈은 컸던 모양이다.
물론 경험삼아, 현실적으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알기 위함이었지, 정말로 고시준비의 길로 걸어가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높은 곳에 있는 떡일수록 맛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라 그 유혹에 한 번 정도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참담한 결과와 함께 이 길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는 현실과 타협했다. 9급은 조금 아쉬우니 7급을 준비하기로 말이다.
그래도 소싯적에 똑똑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나였고 시험에는 자신이 있던 터라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학창시절에 제대로 공부했다면 지거국이 아니라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리라는 정체모를 자신감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과 비교하여 공무원 시험 준비생, 줄여서 공시생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레이스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결승선을 끊어야 했는데 과연 제대로 고민도 하지 않고 관성적으로 공무원 준비를 하게 된 내가 얼마 만에 합격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애시당초 이 길뿐이었긴 하지만 합격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