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생활은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 같았다

공무원03. 신규 공무원 연수가 시작됐다

by 이생원

출근을 안 하니 마냥 좋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연수 첫 날,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꼭 들어가있는 자기소개. 사실 자세한 소개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속이나 이름 정도나 밝히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이 보통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인사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잠깐의 타이밍을 보고 정면과 좌측, 그리고 우측 세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맹세코 관종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경직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터라 가끔 눈에 띄는 행동을 하긴 하는데 약간의 웃음소리 새어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짧은 자기소개 시간이 끝났다.

**이 글의 시점은 10년 전입니다.**



전환직과 신규 공채가 함께 하는 연수생활


신규 공무원 연수를 듣는 사람의 수는 45명이었다. 한 강의실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있다보니 옛날 학교를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물론 지금은 한 반에 스무 명도 안된다고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자리는 이미 지정되어있어서 연수가 끝날 때까지 같은 자리, 같은 짝꿍과 함께였는데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공채 신규 공무원은 기능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한 분들과 함께 연수를 듣게 되어서 짝꿍이 같은 동기가 아니라 어르신들이었다. 그분들은 이른바 전환직 1기라고 불렸는데 이게 뭐냐면 당시 공무원 조직에 큰 변화가 생긴 것중의 하나가 기능직을 없애고 일반직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기능직 중에서 일반직으로 전환하고 싶은 사람은 시험을 보면 일반직이 되었다.


참고로 그때는 그러한 사실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닥친 상황이니 그냥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니 왜 젊은 신규 공무원들이 나이가 있으신 분들과 함께 연수를 받는지에 대해서 딱히 의문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않았는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시에 나와 함께 합격한 동기들과 전환직 선생님들의 수는 거의 비슷한 스무명 정도였다.


전환직 관련해서는 왈가왈부가 많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하지만 공채로 들어온 신규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딱히 전환직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는데 연수생활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연수방법을 선택한 윗분들의 생각이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공채 신규와 전환직 신규를 연수 동기로 만들어서 사이를 좋게 만들겠다? 교류를 시켜서 서로를 이해시키겠다? 어차피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지 공채는 공채끼리 전환직은 전환직끼리 모였기 때문에 실패한 작전이었다)


다만 젊은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하다보니 웃픈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보통 일정에 따라 어디로 이동하는 경우 전세버스를 타게 되는데 이때 반장이 인원체크를 한다. 반장은 우리 동기중 한명이고 나보더 어린 여자애였다. 하지만 성격이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나쁘게 말하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느낌이었는데 하루는 인원체크를 할 때 시간이 없으니까 전환직 선생님들 포함해서 그냥 이름을 불렀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파랗게 어린 아가씨한테 반말로 이름이 불리는 것에 기분이 나빴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인지 약간 말이 있었다.



신규 새내기는 연수보단 동기들하고 놀기 바빠요


연수 교육책자는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양으로 상당히 두꺼웠다. 하지만 우리가 연수를 받는 시간은 대략해야 3주 정도였으니 과연 그 내용을 제대로 배우고 익힐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연수는 연수이고 결국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더라도 동기들과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보니 연수원에서의 시간은 매우 귀중했다. 서로를 알고 친해지는 중요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공무원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공무원 생활에서 동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지루해질 수 있는 공무원 생활에 비타민같은 활력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 동기들은 그걸 넘어서 동기간 커플도 많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말이다. 아, 이건 너무 TMI인가.


어쨌든 결국 우리 신규 공무원들의 관심은 연수보다는 동기들간의 친목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어딜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든 공시생 시절을 겪고 이제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하는데 누가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을까. 우리 동기들은 빠르게 서로의 친목을 위해 여러가지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아쉽다고 한 부분은 연수가 출퇴근이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공무원 중에는 아예 연수원에서 숙박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더 친해지기 좋다는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는 얘기였다.(그리고 또 하나는 전환직의 존재)


우리 동기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더 많았는데 사실 나는 여자랑 더 친해기기 쉬운 타입이라 크게 문제가 없었다. 특히 동갑내기가 몇 명 있는데다가 그중 한 명은 나의 혈육인 누님과 학교 후배 사이라 조금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연수원이 조금 멀어서 전세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 출퇴근 시간에도 친해질 기회가 많았다.


좋은 동기들을 많이 만나는 건 나중에 도움을 받기도 좋고 여러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니 가급적이면 이러한 연수생활을 잘 보내는걸 후배 공무원에게 조언하기도 했는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없으면 내가 할 일은 누가 하지?


사실 당시에는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애초에 첫 날에 실장님께 전화드린 것 외에는 학교를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인데 다행히 실제로 어떤 역할을 맡은 것도 없는 터라 따로 업무전화가 온 적도 없었다. 역할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업무분장을 말하는 것인데 당시 실장님은 내가 한 사람 몫을 하기 전까지는 그 일까지 모두 하고 계셨는데 이게 딱히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이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없어도 내 직장은 잘만 돌아간다. 나중에 공무원을 그만둘 때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어느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없으면 그 역할은 누군가 맡게 되고 조직은 어떻게든 돌아간다고 말이다. 그래서 조직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 신규 연수는 화요일에 시작해서 그 다다음주 화요일에 끝나는 스케줄이었다. 왜 월요일에 시작해서 금요일에 끝내주지 않는 것일까.


어쨌거나 지금 힘든 것은 하루 몇 시간동안이나 한 자리에 앉아서 학생 때처럼 강의를 들어야 하는 점이었다. 잠을 적게 잔 것도 아니었지만 강의를 듣고 있자면 솔솔 잠이 오는 것이 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딱히 수업시간에 열정적으로 듣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워낙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분위기상 크게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억지로라도 정신을 붙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이 가장 행복할 수밖에 없었고, 동기들과 놀다 보니 어느새 연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틀 출근하고 연수받으러 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