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02. 첫 출근날이 개교기념일이었다.
첫 출근날이 개교기념일이었다.
"다음은 이번에 새로오신 행정실 선생님들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출근 이틀 째, 방송실에서 이번 7월에 발령난 사람들의 소개가 있었다.
이런게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학생들한테까지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7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된 OOO입니다....."
카메라가 어딘지도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마쳤다.
그렇게 G초등학교의 일원이 되었지만 문제는 다음 날부터 나는 연수를 받으러 가야 한다.
게다가 학교는 곧 여름방학이니 나중에 학생들은 개학하면 저 사람은 누구지? 할 수도.
하지만 원래 행정실 직원이란 학생들에게 그런 존재다.
**이 글의 시점은 10년 전입니다.**
기다리던(솔직히 그렇게 기다리지는 않은) 첫 출근날 아침부터 폭풍이 몰아쳤다.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는 나로 하여금 콜택시를 부르게 만들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1시간 전으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다니 이제 돈벌기 시작한다고 돈을 막 쓰는 것 아닌가?
다행히 전에 실장님께서 옷을 편하게 입고 오라고 말씀하셔서 정장차람이 아니었기에 그나마 덜 신경쓰였지만 이러나 저러나 비에 젖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콜택시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7시 20분, 행정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이 잠겨있었다. 당시 출근시간이 8시까지였으니 아주 일찍 왔다고 하기엔 그렇지만 그래도 이른 시각이었다. 부지런한 공시생 생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따고 생각한다.
하필이면 첫 출근날이 개교기념일과 겹쳐서 출근하는 분들도 없고, 어디서 문을 열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던 나는 그렇게 한 시간여를 기다리다 실장님께서 오셔서 당직실에서 열쇠를 가져와 드디어 행정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날 실장님도 매우 편한 복장이셨는데 약간 밝은 카라티를 입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개교기념일이라 학생들도 없고, 선생님들은 개교기념일에 연수를 떠났다고 하니 학교가 텅 비어있는데다가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니 분위기가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이때는 몰랐다. 어째서 학교의 구성원들이 연수를 떠났는데 행정실은 남아있는지를.
사람들은 처음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관습이 있다. 첫 애인, 첫 직장, 첫 월급 등등. 정년퇴직을 하시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직장에 출근하던 첫날이 생생하다거나 잊지 않고 있다거나인데 나는 솔직히 비바람과 콜택시, 그리고 개교기념일만 기억난다. 직장인이 된 꿈과 희망에 부풀었다거나 어떤 설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감수성이 원래 없는 성격이라 그런 모양이다.
다만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임자와 주말에 만나 인계인수를 받기로 약속했다.
잠깐 군대 얘기를 먼저 해볼까 하는데, 왜냐하면 군대에서 인계인수를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방 보급부대에서 복무한 나는 조금 특수한 보직에 있었다. 군인인데 훈련보다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그런 보직? 어쨌거나 병장 때 이등병에게 그 임무를 넘겨주면서 시간이 남다보니 따로 매뉴얼을 작성해서 넘겨주고 왔는데 그정도는 되어야 인계인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다.(참고로 내 선임은 쌍시옷이 가득한 구두전달만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첫 발령지에서 내 전임자로 근무하던 누나는 매우 훌륭한 공무원이었다. 후임이 신규라는 점을 생각해서인지 서류로도 한 철을 정리해서 남겨주었고, 직접 주말에 시간을 내서 만나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전임자 누나가 G초등학교에 신규로 발령나서 3년 동안 몸과 마음을 바친 곳이라 애정이 있어서 그랬던 이유가 크기는 했을 것이다.
토요일 주말에 텅빈 학교, 썰렁한 행정실에서 전임자 누나와 만나 시스템 관련 설명을 듣는데 분명히 눈과 귀는 뭔가를 보고 듣고 있는데 이해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애시당초 결재를 올릴 때는 이렇게 하고 결재를 취소할 때는 이렇게 문서를 회수하면 된다고 하는데, 왜 회수해야 되는지도 모르니까 그냥 잘 기억해두기로만 했다. 아마도 전임자 누나도 한 두어시간 얘기하다가 깨달은 것 같다.
직접 경험해보면서 깨달아야 알지, 이렇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이다.
전임자 누나는 나랑 나이차이가 꽤 났는데 신규로 발령난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2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애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공부만 하다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이니 내가 나를 봐도 그랬을 것이다. 이날 점심은 전임자 누나가 중국집에서 사줬는데 여러 당부의 말과 함께 그래도 내 정신상태에 대해서는 조금 칭찬을 했던 것 같다. 얼마나 걱정을 했길래 이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알려주려는 열정의 전임자 누나는 무려 오전부터 네 시까지 나와 함께 있었다.
사실 공무원 사회에서 인계인수란 발령처럼 복불복에 가까운데, 전임자 누나 정도의 인계자라면 엄청난 열정과 책임감이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잘 배워야겠다는 마음가짐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으니 보통은 되는 인수자이지 않았을까. 나중의 일이지만 나는 4줄로 된 인계서를 받은 적도 있다. 그냥 나는 떠나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건데 생각보다 이런 일은 허다하다.
어차피 책임자는 새롭게 발령난 사람이니까.
개교기념일이었던 첫 출근날 이후 둘째날은 제대로 학생도 등교하고 선생님들도 출근했다. 그래서 아침에 방송조회로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또 없다. 연수를 받으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연수냐고? 새내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즉 신규 공무원 연수다.
약 3주간의 연수를 끝마치고 돌아오면 이미 이틀 간의 기억은 거의 없어져 있을 테니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뭐, 물론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출근하지 않는다는 점, 연수를 받지만 월급은 제대로 나온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크게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공시생을 벗어났음에도 또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점이 조금 부담이 되기는 했다.
결국 어정쩡한 위치와 상황에 있던 나는 이날도 점심에 교감 선생님과 나가서 뭔가 맛없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환영회식을 했다. 요즘 MZ세대들이 소위 극혐한다는 회식이지만 솔직히 나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좋은 상황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환영과 가는 사람에 대한 송별 정도는 있어야 사람의 정이 있지 않나 하는 사람이라. 크게 거부감은 없었지만 워낙 재미가 없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점심에도 맥주 먹고 저녁에는 소주 먹고.
이 알코올이라는 놈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굳이 공직사회뿐만은 아니겠지만, 엄마를 닮아 술이 약한 나로서는 여전히 친해지기 힘든 놈이다.
실장님은 가서 잘 배우고 오라고 하셨는데 이때는 몰랐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원래 내가 할일을 실장님이 하시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원래는 여기에 전임자 누나 후임발령을 안 내준다고 해서 전임자 누나한테 시스템 사용법 등 실무에 대해서 실장님이 미리 배워두셨다고 한다. 뭐, 덤으로 신규가 발령나면 교육을 시키기도 좋고...??
어쨌든 그렇게 애매하고 불편한 이틀이 지나고 연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