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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원 Sep 12. 2023

나는 아직 여물지 않은 여드름인가보다

여드름을 짜다 때가 중요하다는 것을 논하다

얼마 전 등에 여드름이 났다.

하필 보이지 않는 등이라, 오히려 더 빨리 짜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여드름을 짜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하셨지만,

나는 성미가 급한 모양인지 다 조져야 직성에 찼다.


오른손으로 여드름을 만져보니 두툼하게 올라오기는 하였으나 아직 여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확실하지 않다.

일단 짜본다.

아무런 소득이 없다.

볼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여드름이 더욱 화가 나 발개졌을 것이다.


머리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손이 간다.

무슨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도 아니고.


하루가 지났을까.

여드름의 감촉이 조금 달라졌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운데에 고름이 모인 것 같았다.


여드름을 짜려면 정확히 힘을 조준해야 하는데 등에 난 여드름은 그게 어렵다.

나는 마치 등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양손을 여드름 주위에 모았다.


그리고 힘을 주었다.


-


여드름이 터졌다.


"악!"


그리고 나는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휴지를 갖다대니 고름과 함께 피가 묻어났다.

조금 더 쥐어짜니 피가 더 나왔다.


따가움을 느끼며 피를 닦아냈는데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여드름이 완전히 곪기 전에 짜서 아픈 것인가?

사실 황금색으로 여문 여드름은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쉽게 터진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급하게 터쳐온 탓에 아픈 적이 더 많았다.


뭐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여드름 짜다 뭔 소리냐고 하겠지만,

만약 내가 때를 잘 알고 여드름을 짰다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또 피가 나오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대신 아픔과 상처를 얻었다.


사람이 정확한 때를 알기는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확한 때에 움직이는 것 같다.


성급하게 움직여 때를 맞추지 못하거나

너무 여유를 부리다 때를 놓친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다.


특히 남녀 사이에서 많이 일어나는 법이다.

상대방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혼자서 불타오르거나

괜히 이것저것 재고 생각하다 그 사람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젊은이도 호시절이라는 말을 잘 모른다.

본인이 돈이 없거나 성공하지 못하였어도 그 자체로 좋은 때라는 걸

훗날에나 알게 되겠지.


내가 알아야 하는 때는 언제일까.

왠지 여물지 않은 여드름의 모습이 나와 혹은 수많은 청년들과 비슷한 것 같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그 때,

노오란 빛으로 가득차게 되면 그 때가 오겠지.


지금은 그저 한 올 한 올 황금실 가닥을 꾸준히 모을 뿐이다.

세상으로 뛰쳐나갈 때를 위하여.


그리고,

다음부터는 때를 기다려 아주 좋은 날에 여드름을 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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