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주기에 부쳐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즘도 토요일 저녁마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걸 알면서도 차마 가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현관까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이상하게 다른 사회적 참사와 다르게 세월호에는 감정이입이 많이 됩니다. 아마 2014년에 진도에서 유가족의 비통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더 한 것 같습니다.
글이나 말보다 강렬한 건 이미지고 그보다 무서운 건 경험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백날 매운 게 어떤 건지 설명해 봐야 잘 모르고 자꾸 달라고 식탁 밑에 와 떼를 씁니다. 그럼 그럴 때 고추장 조금 찍어 입안에 넣어주면 다시는 아이들이 매운 거 먹겠다고 달려들지 않습니다. 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매운맛을 봤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 맛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유가족 역시 마찬가지고요. 더는 이 땅에서 그런 끔찍한 지옥도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 뿐입니다.
이런 연유에서 저 역시 자꾸 세상에 말하고 다니는 겁니다. 참사는 사람을 가려 찾아오지 않는다. 세월호는 처음도 끝도 아니다. 그날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감히 조롱하지 말라. 유가족은 벼슬이다. 이 비정한 세상이 만들어 준 슬픈 벼슬 그러니 이들이 스스로 애도의 시간을 끝낼 수 있게 제발 내버려 달라고 말입니다.
이번에는 미루고 미루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고 안산을 찾았습니다. "왜 세월호 수사가 이토록 더딘지 문재인 정부가 이 일을 못하고 있는 진짜 이유가 뭔지, 어째서 유가족들이 여전히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효자동에서 농성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요. 얼마 전에는 세월호 수사 관련 자료를 정리한 기사를 딴지 일보에 올렸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딴지일보는 골수 민주당원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한데 그곳에서 조차, 이번 기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청와대와 국회의 절반 이상을 내주었고 4년이라는 시간을 줬는데도 해결 못 한 거면 이 정부는 세월호를 해결할 의지가 없거나 무능한 거다. 같은 날 선 비판들이 되돌아왔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이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시민들이 현 상황을 훨씬 더 잘 알고 있더군요. 이제와 구구절절 이 정부에서 진상규명을 하지 못한 이유를 말해 봤자 그 모든 게 핑계라는 것도요.
안산에 갔던 날 유가족분들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다른 건 둘째치고 이 대답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2014년 4월 이후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기에 매주 토요일 효자동에서 시위를 한다는 것,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 들어서고는 이 일이 해결된 줄 알고 관심을 끊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자꾸 유가족들 보고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뭘 할 수 있겠냐고 한다는 것 하지만 당신들 생각은 다르다는 것, 대통령까지 바꿨으면 다 바꾼 거 아닌가 대체 뭘 더 바꿔야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거냐 하는 대답들 말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이들의 답변에도 아무 대꾸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 집으로 오는 길에 어쩔 수 없이 80년 광주가 떠오르더군요. 사고 당시에 국가가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비극이 시민사회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오명을 벗고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렀는지, 또 무고한 시민을 그렇게나 많이 죽인 가해자는 여전히 서울의 저택에서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리고 있는데, 당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만 여전히 80년 5월에 발이 묶인 채 회복되지 못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덜컥 두려웠습니다. 세월호가 광주 꼴 나면 어쩌나 싶어서요.
오늘은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국회에서 '사참위법'개정안과 특검이 통과된 것, 4.16 민주시민교육원'이 문을 연 것, 오는 6월 '해양안전체험관'이 운영되고, 12월에 '국민 해양 안전관'이 준공된다는 말들이 주된 골자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 귀에는 이 모든 말들이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과연 대통령께서 지난 1월 검찰로부터 전부 무혐의 판결 받은 지난 정권 고위 관료들에게 죗값을 다시 똑똑히 물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요.
사실 유가족은 정부에서 국민 세금 써 가며 교육관이니 추모관이니 뭐 거창하게 하는 거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한 책임자 처벌"입니다. 대체 그 낡아빠진 과적 괴물을 누가 바다에 띄운 건지, 또 당시 교육부에서는 어째서 수학여행을 배 타고 가라고 권고 한 건지, 사고 당일 해경은 왜 주변에서 구조하러 온 미군 함정을 돌려보내고, 조업하다 말고 달려온 어선들을 막아선 건지, 선장은 어째서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하고 자기 혼자 탈출한 건지, 제발 이 물음들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라도 해 달라고 겁니다.
적어도 관련자 불러다 적법하게 수사라도 해서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다. 하면 용서를 하든 원망을 하든 뭐라도 할 텐데 7년이 지나도록 여태 그걸 못하니까 답답한 겁니다.
그리고 유가족분들이 이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이 대로 진상규명 못하고 죽으면 나중에 애들 얼굴 어떻게 보겠냐고, 적어도 훗날 아이들 만났을 때 "아빠는 최선을 다 했어. 엄마는 약속을 지켰어"라는 말 하고 싶다고
.
지난 2018년 인터넷에 처음 "세월호를 잊으라는 그대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이듬해까지 미디어에 노출되고 악플에 시달린 저 역시 그 기억 때문에 매년 4월 16일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제 마음도 이런데 4월에 유가족들 심정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참담합니다. 또 여전히 제가 유가족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위로밖에 없어 속상하고요.
오늘 이뤄진 세월호 참사 7주기 기억식의 제목은 "기억, 책임, 약속"이었습니다. 기억은 시민들이 할 테니, 국가는 책임지고 국민과 한 약속을 조속히 이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거듭 부탁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