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Nov 16. 2022

4화_비혼 주의자가 개와 가족이 되기까지

  개라는 가족의 의미와 발견

나는 비혼 주의자다. 물론 전부터 어떤 대단한 결심을 하고 이 길을 택한 건 아니다. 그저 더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아 결혼하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어느새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그래야 이후 따라 올 수많은 무례한 질문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적의를 품게 된 건 아마 원가족의 영향이 클 것이다. 오랜 세월 내게 가족이란 전부 인적 드문 소 도시 터미널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고 오고 싶은 더러운 속옷 같은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은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한평생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나는 이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해서 요즘은 이들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그나마 서로 주고받은 상처가 적은 작은 오빠를 제외하고 말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내 행동을 두고 비정하다고 욕하겠지만 우리 집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말 못 한다. 이런 연유에서 꽤 오래 나는 혼자였다. 가족에게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 있었나. 모르겠다. 기옥조차 나지 않는다.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고 자라지 못한 나는 사는 동안 한 번도 남에게 의지해 본 적 없었다. 그 때문에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는 게 힘들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고기 맛을 안다고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을 받아 봤어야 사랑받는 기분을 알 텐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누군가의 호의나 선의가 불편하게만 여겨졌다. 오히려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해 줄 때 그제야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나이 스물에 아무런 서사도 맥락도 없이 한 순간에 사람들이 죽고 사는 걸 보고 누군가와 이마를 맞대고 진지하게 미래를 설계해 본 적 없다. 내일은 그야말로 와야 오는 것이니까. (참고로 필자는 삼풍백화점 참사 사고 생존자다)


꽤 오래 혼자 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잘 맞지 않는 남에게 억지로 나를 맞추느니 조금 외롭더라도 혼자 잠들고 혼자 깨는 날들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 삶의 오랜 규칙과 취향들을 남과 맞춰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해서 앞으로도 쭉 혼자 살려고, 혼자 사는데 필요한 생의 여러 기술들을 예방차원에서 익혀 두곤 했다. 변기를 뚫거나 형광등을 갈거나 가구를 조립하는 일들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한들,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지상정. 혼자여서 아쉬울 때가 내게도 더러 있었다. 그건 어느 날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먹고 싶다거나 몸이 아파 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였다. 다른 건 뭐든 다 혼자 다 할 수 있는데 어쩐지 식당에서 혼자 고기를 굽는 것과 (요즘은 배달 어플이 있어서 괜찮지만) 혼자서 온몸을 꼬부리고 겨우겨우 걸어 다니며 병원에 가 접수를 하고 처방전을 들고 가 약을 짓고 죽까지 사서 집에 오는 일은 힘에 부쳤다.


이럴 때는 종종 '아무래도 혼자 사는 건 좀 무리지?' 하는 마음이 들곤 했지만 기력을 회복하고 나면 어느새 이런 마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내 삶은 혼자서도 굳건하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물론 개가 끼어들기 전까지.

복주랑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땐 정말 힘들었다. 이 집에 숨 쉬는 존재라고는 나 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옆에 하나가 더 있다. 그것만으로도 적응이 안 되는데 얘는 종일 나만 보고 나만 따라다닌다. 그도 그럴게 복주가 혼자 책을 보겠나 차를 끓여 마시겠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온종일 나만 쳐다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복주 입장에선 나를 지켜보는 일이 매우 중요한 업무다. 내 손에서 밥과 간식이 나오고 나를 통해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 한 동안 적응 못 했다. 어느 날 집안에 시시티브이 한 대가 설치된 것 같았다. 개가 집에 온 후로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심지어 화장실에 있어도 계속 개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다녔다. 해서 어느 날은 진심으로 개를 구조자한테 돌려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복주는 혼자 남겨지는 걸 유독 견디지 못했다. 내가 자기 시야에서 오분만 사라져도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 증세를 보였다. 덕분에 나는 보이지 않는 감옥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복주 혼자 두고 마음대로  쓰레기 하나 버리러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려견이 보호자와 떨어지면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증상을 분리 불안이라 하는데, 복주의 이런 분리 불안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레 외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부득이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시기가 하필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출간 시기와 겹쳤다. 개가 집에 오기 전부터 외부 행사는 지방까지 줄줄이 잡혀 있는데 개를 혼자 두고 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출판사에 사정 얘기를 해 양해를 구하고 거의 모든 행사에 복주를 데리고 다녔다. 다행히 당시 담당 편집자가 개를 좋아했다.(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녹화를 하거나 강연을 할 때 편집자는 내 개와 공원 산책을 했다. (편집자의 업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펫 시터를 구해야 했다. 부르는 데는 많은데 복주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당근마켓을 통해 인근에 사는 친구와 연이 닿아 한동안 복주를 맡기고 일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터와의 약속이 절묘하게 어긋났다. 일정 조율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당장 시터가 필요한데 시터는 경남 본가에 가 있었다. 이를 어째 눈앞이 깜깜했다. 큰일이다. 그 시간에 복주를 혼자 두고 나가면 녀석은 또 탈출을 시도할 것이다. 게다가 이 생각에 내가 이 생각에 계속 사로 잡혀 있으면 방송이고 뭐고 집중 못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급하게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지금 당장 집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안 보였다.


딱 한 사람 작은 오빠를 제외하고, 그래서 오빠한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오빠는 흔쾌히 술자리를 박차고 나와 우리 집에 왔다. 오빠가 온다는 소식에 안도하고 그제야 방송국으로 갔고 무사히 방송을 마쳤다. 만약 그때 오빠가 안 된다고 했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복주를 빈집에 두고 그대로 외출했겠지? 그러면 녹음하는 내내 마음이 몇 번이나 무너졌겠지? 아무리 혈혈단신 홀로 산다 해도 이토록 눈앞이 깜깜할 때 연락할 수 있는 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더라.  


복주의 불안증은 복주가 차츰 나이를 먹자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고 동생 해탈이가 생기고 나서는 완전히 좋아졌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오빠 신세를 진다. 지방 일정이 있거나 외부 강연이 늦으면 개들은 전부 오빠네 보낸다. 돈을 주고 업체에 맡길 수 있지만, 나 역시 불안증을 앓아서 그런지 마음이 안 놓인다. 개를 좋아하는 조카들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홀로 혼자서 나 혼자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얼마나 큰 오만인가. 결국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사람이거늘.

개를 키우기 전에는 훨씬 더 사는 일에 긴장을 많이 했다.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애를 썼다. 자기 검열을 심하게 했다. 누군가 나를 혼자 살아 그런다고 할까 봐 항상 단정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애썼다. 오죽해 친구들이 오면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베란다에 머리카락 한 올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개와 살면서는 만고 포기하고 대충 산다.


신발을 안 신고 하루에 서 너번씩 산책을 다니는 네발 달린 짐승이 둘이나 돼니 이건 뭐 청소가 딱히 의미 없는 일이 되 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대충 더럽게 산다. 그뿐인가 전에는 약을 먹고 안대를 하고 귀마개를 해도 겨우 잘 까말까 했는데  개와 살기 시작하면서 하도 나가 걷다 보니 이제 밤이 되면 수면제 없이도 잘 잔다.


또 개 때문에 자꾸 밖으로 돌며 개로 인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그들과 어울려 시시 껄렁한 말이라도 주고받으니 하루가 되게 색 다르게 다가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게도 열렬히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걸 말이다. 오랜 세월 모르고 살아온 마음이었다. 난 내가 여태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다.


이렇게 나는 대형견 두 마리와 함께 살지만, 개가 없던 때와 개와 가족을 이루고 사는 지금을 비교해 보면 개들과 함께 살게 된 이후의 생이 훨씬 행복하다. 개가 자고 있는 것만 봐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른 건 모르겠고 개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전보다 많이 웃는 사람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이 친구들은 내게 충분한 가족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게 참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3화_두 번째 개를 데려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