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Jul 30. 2022

3화_두 번째 개를 데려오다.

기적의 해탈

순전히 사고였다. 진심이다. 난 정말 이 친구까지 키울 생각 없었다. 굳이 이 일에 대한 죄를 찾자면 깊이 사유하지 않은 거라 할 수 있겠다. 맞다. 당시에 나는 "순간"에만  집중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생각이 짧은 거였다. 그 덕에 지난여름 나는 이 개를 데려 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봄 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가 복주를 보고 본격 "나만 개 없어"라는 개 앓이를 시작했다. 고모로서 아니 어른으로서 애가 개 때문에 풀 죽어있는 걸 보는 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덜컥 조카에게 나는 "그럼 우리 강아지 임보를 할까?" 하는 소리를 했다. (우리 떡볶이나 먹을까도 아니고 임보를 할까 라니. 그것도 대형견을....)


현실적으로 오빠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개를 키울만한 상황이 아니다. 오빠네 부부는 이미 중 고생 남매를 키우고 있고 이 친구들 뒷 바라지 하는 것도 버거워 숨이 턱까지 찬 상황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 애들 고모인 내가 해맑게 개 한 마리를 더 보탠 거다. 처음엔 나도 조카한테 허스키 말고 상대적으로 관리하기 쉬운 작은 개를 추천했다. 하지만 조카 녀석이 복주를 통해 이미 큰 개가 주는 큰 기쁨을 알아 버린지라 소형견은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덕분에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김포의 한 공장에 나타났다는 이 친구를 데리고 오게 됐다.(이 친구 역시 포인 핸드를 통해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네 부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고모네 다녀온다던 딸이 갑자기 낯선 개 한 마리를 안고 현관에 나타났을 때 말이다. 물론 조카한테 해탈이를 들려 보내며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개 키우는 걸 반대하면 우리는 이 개 못 키운다. 명심해라. 단단히 일렀다. 그런데 조카 왈 "만약에 집에서 해탈이를 내쫓으면 저도 함께 나올 거예요" 했다. 뭐????????? 그제서야 나는 일이 뭔가 꼬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개는 오빠네 집에 엉덩이를 밀어넣는데 성공했다. 한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작 그 집에는 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름 조카 녀석이 해탈이의 주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아무리 작아도 장차 대형견이 될 개를 길 들이기에는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조카한테는 여러모로 버거웠다. 그 덕에 녀석은 오빠네 호적에 이름만 올리고 우리 집에 와 살다시피했다. 그러더니 끝내 조카는 내게 "고모 아무래도 제가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없어서요. 해탈이는 고모네 있는 게 해탈이를 위해서 더 좋을 거 같아요." 했다. 음..... 응?????  물론 이는 속 깊은 조카의 배려라는 걸 안다. 아이가 생각해도 저희 집 보다 우리 집에 있을 때 해탈이가 훨씬 행복해 보여서 내린 결정이라는 걸.


이렇게 나는 예정에 없이 나는 복주 동생으로 시베리안 허스키(믹스)를 한 마리 더 키우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권태롭게 느껴지거든 아들을 낳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아들보다 허스키 한 마리를 먼저 키워보라 하고 싶다. 해탈이 보다 6개월 언니인 복주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먹으면 먹을수록 매력 있는 평양냉면 같은 성격의 친구인데 이 친구는 맵기 강도를 최고로 올린 마라상궈 같다. 눈물 나게 맵고 짜다. 물론 세상의 모든 허스키가 다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친구는 활동량이 정말 대단하다. 뭔 놈의 개가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사고를 치는지, 거의 일년 동안 난 한시도 이 친구에게서 종일 눈을 떼지 못했다.  


복주는 진돗개 특유의 영민함으로 뭐든 한 번 가르쳐 주면 두 번도 필요 없이 척척 해 냈다. 앉아. 기다려. 심지어 캔넬 훈련까지 뭐 하나 힘들게 한 거 없다. 하지만 해탈이는 복주와 완벽하게 다른 세상이었다. 해탈이는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었다. 앉아 라는 간단한 시그널도 가르치는데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또 전에는 내가 개 키우는 걸 옆집에서도 몰랐다. 복주는 헛 짖음이 없다. 하지만 해탈이는 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요구성 짖음을 하고 하울링 했다. 또 잠깐만 한눈을 팔면 어느새 먹으면 안 되는 걸 입에 물고 나타났다. 놀라서 다급하게 뺏으려 하면 이 녀석은 잽싸게 세탁기 뒤나 침대 밑으로 튀었다.


그러면 나는 이성을 잃고 "아니야 나와 아니야 먹지 마 먹지 마 하지 마 뱉어 뱉으라고오오오오오 호" 하며 배에 힘을 꽉 주고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이 친구는 뭐든 닥치는 대로 먹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휴대폰 충전 줄, 티브이 리모컨 숫자패드, 카펫, 벽지, 바닥재, 나무 몰딩, 문짝, 플라스틱 슬리퍼, 비닐우산, 수세미 등등 입에 닿는 건 뭐든 뜯어먹었다. 다행히 전부 소화시켜? 큰 탈은 없었다.


배변 훈련도 힘들었는데 녀석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데나 똥오줌을 갈겼다. 배변판은 처음 얼마간 지독히도 우연히 한 두 번 이용한 게 전부다. 때문에 매일같이 나는 이불 홑청을 뜯어 빨고 무거운 카펫을 이고 지고 빨래 방을 오가는 신세가 됐고 날이 갈수록 시름은 깊어져 갔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작정하고 대체 뭐가 문제인지 깊이 고민했다. 어째서 내 말을 안 듣는지 말이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는 복주를 자기 리더라고 생각하고 따르며 나를 무시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녀석에게 나는 아무리 봐도 그냥 함께 사는 덩치 큰 친구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러니 좀처럼 훈련이 안 되는 거라. 해탈이는 나라는 존재는 완벽히 무시하고 복주 말만 들었다. 그런데 복주는 이 친구의 배변 활동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어째.  답답한 내가 직접 우물을 팔 수밖에. 그 후로 나는 녀석이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네발로 걸으며 해탈이한테 이빨을 보여주면서 으르렁거렸다. (나도 젊어서는 내가 마흔을 훌쩍 넘겨 이러고 살 줄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법은 통했다. 그제야 해탈이가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매일 조금씩 나아졌고 이제 더는 실내에 실수를 잘? 안 한다.

이런 연유로 얼결에 나는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것도 중 대형견 개 두 마리를. 요즘도 가끔 그날 김포에서 녀석을 덜컥 데려온 순간을 떠 올리면 그때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복주를 데려왔을 때도 그랬지만 해탈이를 데려온 것 또한 이상하다. 평소 뭐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녀석 없는 인생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 녀석과 꼬박 일 년을 넘겨 살다 보니 녀석의 효용성이 의외로 남달랐다. 먼저 녀석은 사춘기 조카의 마음에 난 구멍을 따뜻하게 메꿔주었고, 예민한 개 언니 복주에게도 밝고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마지막으로 녀석은 내게도 억지로라도 여러 사람과 인사하고 얘기할 거리를 만들어 줬다.


요즘 이 친구를 보면  나는 이렇게나 엉망인 세상이 그래도 제법 굴러가는 가는 게 누군가는 굶어 죽으라고 젖도 못 뗀 개들을 의도적으로 버려도 누군가는 끝끝내 찾아내 개들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살리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다른 게 기적일까 우리 모두 이 험한 세상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함께 사는 게 기적이지.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친구를 "기적의 해탈"이라 부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2화_서울에서 누렁이를 키우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