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
지난해,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글을 쓰기 바로 전, 우연히 친한 수녀님들을 광화문에서 마주쳤다. 당시 수녀님들은 여주 수도원에서 세월호 집회 참석 때문에 광화문에 오셨고, 나는 마침 교보문고에 가던 길이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가까운 곳에 가 함께 커피를 마셨고, 그날 수녀님 중 한 분이 내게 노란색 세월호 배지와 빨간색 제주 4.3 관련 동백꽃 배지를 건네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녀님들은 내가 삼풍사고 생존자라는 사실을 모르셨다.
작년에 쓴 글은 2014년 4월 이후 계속 생각하던 거고 말하고픈 바가 명확했기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썼다. 글을 올리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고, 다른 커뮤니티로 글을 옮겨도 되냐고 물으시기에 "그러라고 쓴 글"이라 답변했다. 정작 나는 그 일을 잊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글은 인터넷상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문제는 정작 그다음부터였다. 글이 이슈가 되자 이른바 극우 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내 글을 가지고 페이스북에서 조롱하고 또 공개적으로 나를 고소하겠다고 하더니 내 SNS에까지 찾아와 삼풍사고 생존자임을 밝히라는 등의 악플을 달았다. 그 덕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글을 쓴 게 나라고 말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했다.
고소니 경찰 서니 하는 말에 놀란 나는 몇 날 며칠을 혼자 앓다가 (논란 중 상대에게 일베 짓 한다고 했다가, 모욕죄로 고소당해 경찰 서에가 조사받았고, 다행히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문득 광화문에서 만난 적 있는 수녀님들을 떠올렸고, 여주에 전화해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잘못한 거 없어요. 겁낼 것 없어요. 우리가 끝까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두려워 마세요" 그 후로 며칠 뒤, 수녀님 중 한 분은 내가 사는 곳까지 직접 걸음 하시어 이렇게 말해 주셨다. "그 글 읽고 우리 수녀님들 참 많이 울었어, 우리 곁에 그렇게 아픈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는 것도 몰랐다" 고. 나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수녀님은 이어 말했다. "그간 얼마나 아팠을까, 많이 아팠지? 글을 읽는 내가 다 가슴이 아프던데 쓴 사람은 오죽해" 하셨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삼풍백화점 생존자입니다>라는 글을 정식으로 연재했다. 딴지일보의 연재 제의를 받아들이며 편집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제 글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써야지요. 쓰는 게 맞겠지요."
진심이었으며 여전히 진심이다.
사실 어떤 종류의 불행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으므로 써야겠다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당시에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는 그렇게 이 글을 썼다.
글 쓰는 내내 많은 사람이 물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치유가 되었느냐고. 글쎄, 모르겠다. 이 질문은 늘 어렵다. 치유라고 하기에는 글 쓰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선의를 느꼈으니, 그 일에 대해 여전히 좋았다 나빴다 말하기 어렵다.
글 쓰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괜찮겠지 하고 시작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잊고 살 때는 몰랐는데, 기억하려 드니 그날의 기억이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덥고 습하던 날씨, 사고 직후의 먼지 내음과 피 비린내, 매캐한 연기까지. 나는 여태 뭐 하나 제대로 잊은 게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지난해 나는 이 일 말고도, 개인적으로 몹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해서 수없이 많은 날, 내 몸 하나 간수 못하면서 어쩌자고 글까지 쓴 다했나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기어이 지칠 대로 지쳐 지난여름 여주로 달려가 수녀님께 말했다. "그때 수녀님이 말릴 때 하지 말 걸 그랬어요. 저 너무 힘들어요." 그러자 수녀님께서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힘들면 하지 마요. 그건 하느님이 원하지 않는 거야. 지금이라도 하지 말아요." 해서 내가 말했다. "사실 저는요. 처음에 그 글을 세월호 엄마들 보라고 쓴 거거든요. 여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있다. 그 말하려고요."
그러자 수녀님께서 말했다. "그 글 세월호 엄마들 다 봤어, 우리 수녀님께서 안산에 계신 수녀님께 그 글 보내 드렸어. 함께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힘들면 그만둬." 그 말을 듣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며칠간 여주서 마음을 추스른 나는 서울에 와, 전보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연재 글을 마저 썼다.
그간 뉴스를 통해, 동거차도와 광화문에 있던 세월호 막사가 철거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소식을 들으며 유가족 분들이 이제라도 더 이상 한뎃잠 안 주무셔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헤아려보니, 감히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얼마 전 우연히 다른 매체를 통해 나를 알게 된 학생이 인터뷰 요청을 해왔는데, 학생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왜 아이들을 잃은 부모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까요?" 말했다.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잘 모른다고.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알면 그럴 수 없다고.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알아야 한다고. 그 말을 하며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아 계속 말해야겠구나. 이게 어떤 슬픔이고 고통인지 사람들이 알 때까지 내가 자꾸자꾸 말해야겠구나'라고 말이다.
해서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그 일에 대해, "지겹다. 그만하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도 당신들도 아니고 사고를 겪은 당사자들이라고. 또 세월호라는 과적 괴물을 만들고, 그 배가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과 여러 귀한 목숨을 싣고 출항하게 만들고, 기어이 그 배가 망망대해로 떠 밀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만든 세상을 만든 사람들, 이 시대를 사는 어른들은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고,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안 되는 일이라고.
나는 감히 유가족 분들에게 이런 말도 건네고 싶다. 더는 죄인처럼 살지 말으시라고, 당신들 잘못 아니라고, 당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그러니 남들처럼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술도 한 잔 하고 노래방도 가고 그러시라고, 더 큰 죄를 짓고도 잘들 사는데 자식 앞세운 게 무슨 죄라고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하냐고, 지금보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말하라고, 자식새끼 목숨 값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속 편하게 산다 하는 소리 들으시라고. 뭐 어떠냐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 당신들 마음 알아주기나 할 거 같아 그러느냐고. 그러니 세상아 나 좀 봐라, 살아남았으니 이렇게 산다, 하고 살으시라고. 나 역시 그럴 테니 당신들도 그러시라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억지로라도 우리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자고. 그렇게 부탁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신 모두에게도 무척 감사하고, 무척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