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택배즈 입양완료
이제 더는 개를 구조하지 못하겠다. 옆에서 구경할 땐 몰랐는데 직접 해 보니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데려온 게 살아 숨 쉬는 게 아니라 그저 물건이라면 어디 잠깐 보관했다 여유 있을 때 어떻게 좀 해 보겠는데 ‘개’라는 게 어디 그런가.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나는 만고 태평한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비관론자다.
그도 그럴게 여태 내가 발붙여 온 세상은 비정했다. 미래에 대한 어설픈 희망과 막연한 기대는 오히려 독이 됐다. 차라리 미리 머릿속에서 수 천 번 수 만 번 절망하고 시작하고 또다시 좌절하는 걸 그려 보며 사는 게 편했다. 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예측 불가능”이다. 우스개 소리로 주변 사람한테 나는 혹시라도 진짜 ”당첨될지 몰라 여태 로또 한 장을 사 본 적 없는 사람이다 “ 고 할 정도다. 이 정도로 나는 생의 변화에 질색하는 사람이다.
한데 말이다. 이런 내가 개를 키우고 나서는 매일같이 예측 불가능한 일들과 만나야 했다. ‘개’라는 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어 그런가 여태 익숙했던 것들과는 모든 게 달랐다. 도대체가 이놈의 개라는 동물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아무리 입력을 해도 정보 값이 다르게 출력되는 고장 난 컴퓨터처럼 개라는 동물은 그야말로 제 멋대로였다.
하지만 이 또한 세월의 힘일까. 이 또한 얼추 익숙해졌다. 이제 어느 정도 이들이 예측 가능한 범위로 개들의 행동 관련 빅 데이터가 수집되었다고 할까 이제 더는 개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에 여유가 좀 생겼다. 개를 키운 후 꼬박 3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느닷없이 임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말해 뭐 해 나는 또다시 남 모르게 끙끙 앓아야 했다.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이놈의 일을 어떡하나 조바심을 내며 지냈다. 그런데 파양이라니. 이를 어쩌나. 나는 이제 아주 자리 깔고 몸져누울 판이다.
다행히 이 와중에 돌아온 배달이를 룽지네서 돌봐줬지만 룽지네는 어디까지나 임보 가정이지 입양 가정은 아니다. 그러니 속이 꼭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 욕심 같아서야 임보집에 눌러앉았으면 좋겠지만 어디 막상 내가 다견을 경험해 보니 이게 선뜻 남에게 권할 수 없는 문제였다. 개 역시 사람아이처럼 하나에서 둘이 되는 순간 넷의 목을 한다. 그러니 룽지 언니한테 둘째로 배달이를 데려가라고는 차마 하지 못했다. 물론 속으로는 조금 바랬다. 배달아 엉덩이 들이밀고 그 집에 들어가라.
그뿐인가 불경기가 오래라 사람들이 개도 많이 버렸다. 각 시도 보호소마다 매일 견사에 새로운 개들이 들어차고 그만큼의 개들이 죽어 나갔다. 여러 SNS 에는 각기 애달픈 사정을 지닌 구조견과 임보견들이 가족을 찾았다. ‘포인핸드’에 (유기견입양어플) 들어가 상황을 봐도 도무지 우리 배달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정말이지 수 없이 많은 예쁘고 어린 개들이 가족을 구한다고 새로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배달이는 입양 황금기인 퍼피 시절을 파양 소동으로 고스란히 날려 버렸다. 그러니 내 맘은 계속 타들어갈 수밖에.
이런 내 맘과는 별개로 구조 임보자의 단톡방에서는 여전히 맘씨 좋은 누나들이 매일같이 배달이 사진을 공유하며 현미경을 꺼내 들고 배달이의 귀여움을 새록새록 발견해 냈다. 예컨대 배달이의 불가사리 닮은 발가락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메마를 대로 메마른 감성의 중 늙은이다. 이삼십 대 누나들과는 다르다. 아무리 누나들처럼 예쁘게 보려고 해도 개 발가락이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벌어지는 게 뭐가 그리 귀여운 일인지 몰라 늘 머리꼭지를 좌우로 오도씩 꺾곤 했다.
한데 말이다. 이들의 따뜻한 시선과 환한 마음 덕분이었을까, 배달이가 하숙집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가족이 선물처럼 나타났다. 뭐라고? 처음에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마음껏 감사할 수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배달이 배송이를 통해 또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달이는 꽤 좋은 가족에게 입양 됐다. 배달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박스에 배달이가 버려진 게 생각 나 슬퍼 배달이의 이름을 ‘달이’라고 바꿔 부르겠다고 직접 손 편지를 써 준 누나가 사는 부산의 한 4인 가족이었다. 4인 가족이라니 세상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 구성원이란 말인가. 4인 가족이 주는 안정감이라니. 는 거짓말이다. 너무 좋아 별 말이 다 나온 것뿐이다.
특별히 이번 면접은 룽지언니가 직접 나섰다. 지난번 파양 소동 이후 룽지 언니가 안 그래도 그 집으로 갈 때 싸한 게 있었다고 했던 차였다. 언니말로는 하나하나 말로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쩐지 그 집에서 배달이를 데려갈 때 퍽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본인이 최소 세 번은 면접을 보고 보내야겠다고 호언했다. 이 얘길 들으며 속으로 나는 솔직히 룽지언니가 결국 배달이를 키우겠구나 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누가 미쳤다고 개 한 마리 데려가는데 세 번씩이나 면접을 본단 말인가.
그런데 룽지언니는 현재 배달이네 가족을 만나고 온 날 바로 다음 날 “이 집이라면 배달이를 보내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언니 말에 의하면 가족 모두가 배달이를 아끼는 게 첫 만남부터 느껴졌다고 했다. 이렇게 배달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파양 후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방을 뺐다. 물론 <평생 반품 불가 조건>으로 말이다.
이로서 정초부터 시작됐던 #아산택배즈가족 찾기 프로젝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여기까지 온 여정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아마 혼자였다면 상상도 못 했으리라. 전국에서 여럿이 뜻을 모아 귀하고 값진 생명을 살렸다. 감회가 남 달랐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이 전부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마음 따위, 불구대천의 원수 뺨에 시원하게 물 한잔 못 끼얹는 마음 따위 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다. 사람의 일은 시작도 끝도 오로지 마음이었다. 버려진 개를 가엾이 여긴 그 착한 마음. 무려 전국에 퍼진 놀라운 이웃들의 조건 없는 선의. 연대.
참사 피해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아니 2014년 봄의 대한민국을 지나온 이라면 전부 그렇듯. 해마다 4월이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가슴이 미어졌다. 어느 날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데 밖에 나가 고함이라도 질러야 하는 거 아닐까 하다가 또 어느 날은 아니야.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하며 도로 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그날 이후로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은 누가 보태주지 않아도 아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특별히 세월호 10주기가 되는 해다. 그래서 나 역시 연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안산을 줄기차게 드나들며 유가족과 생존자 부모 인터뷰를 무려 4건이나 땄다. 나도 뭔가 하나 하자 싶어 열심히 땅으로 깊이 꺼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아 일으켜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그런데 글쎄 딸을 먼저 보낸 어느 엄마의 담담한 말을 들은 후, 그러니까 딸아이를 찾고 보니 열 손가락이 밑이 전부 새카맣라는 말 그 문장을 만나고는 그만 덜컥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이 와중에 배달이가 이런 기적을 보여줬다. 마치 하늘에서 보아라. 세상엔 나쁜 마음만 있는 게 아니지 않으냐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덕분에 다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아 펜을 들 힘이 조금은 생겼다.
앞으로 사는 일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아이들 입양 계정에 가 볼 생각이다. 힘을 모아 함께 만든 이 놀라운 이야기를 오래오래 아껴 읽을 참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 않으리. 다시 한번 버려진 개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 다해 응원해 준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 사는 내내 잊지 않겠다.
마지막으로는 이한빛 피디가 생전에 자주 썼다는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 의 줄임말인 ‘연두, 빛’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한빛 엄마도 노상 많은 이들의 부축으로 여끼까지 걸었노라 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이 모든 일이 연대가 아니면 또 뭘까 싶다. 그러니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