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는 일은 어쩐지 쉬워 보인다.
뭐든 제대로 알면 입을 함부로 열 수 없는데 어설프게 알 때 우리는 꼭 아는 척을 한다. 운전도 초보를 갓 뗀 운전자가 제일 설치고, 회사도 보면 주임 대리가 가장 말이 많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제 막 뭐든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자신감 넘치는 행동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뭐가 됐든 간에 제대로 알면 섣부르게 행동하지 못한다.
개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개를 키우고 한두해 지났을 즈음에 개에 가장 대해 잘 안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알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바로 ‘개’다. 당연하다. 같은 살가죽 덮어쓴 사람 속도 모르는데, 어찌 털가죽 입은 개들 속을 감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땐 몰랐다. 개를 한 일 년 키우자 왠지 내가 개를 잘 다루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그때만 해도 우리 해탈이와 복주는 내가 주도하는 모든 훈련을 잘 따라와 줬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기본 삼종 세트는 물론이고 산책 때 줄도 끌지 않았고, 일 없이 짖지도 않았다. 그뿐인가 우리 개들은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반려견 순찰대’ 시험에도 둘 다 단박에 붙었다. 그러니 나는 자꾸만 개에 대해서 자신이 생겨 가만히 있어도 자꾸 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맘 속 어딘가에 스멀스멀 훈련사라는 직업에 진지하게 관심이 갔다. 겁 없는 성격에 기골까지 장대 해 여자치고 힘도 좋으니 아무리 큰 개라 해도 이 두 손이면 능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나도 훈련사나 해볼까”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이 빛나던 찰나의 꿈은 얼마 안 가 뜻밖의 상황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건 바로 그간 나의 자랑이었던 우리 집 개들이 천지 사방 날 뛰며 슬슬 사고를 치고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복주가 종종 다른 친구와 시비 붙어 친구 치료비를 물어 주더니 나중엔 해탈이 가 포천 집 담을 넘어 가 이웃의 닭까지 잡았다. 그뿐 아니다. 해탈이 녀석까지 다른 친구에게 입질을 했다.
덕분에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 앞에서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사죄의 말을 해야 했다. 차라리 내 개가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 오는 게 낫지, 내 개가 가해자가 됐을 때의 심정이라니.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아픈 개를 생각해도 괴롭고 저 사고뭉치와 앞으로 살아갈 새털처럼 많은 날을 떠올려도 괴로웠다. 고민이 깊어 갖은 방법을 다 써 봤다. 방문 훈련사도 수소문해 만나고 개의 마음을 읽어주는 타로 상담까지 받아봤다. 하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궁하면 통한 건지 지성이어 감천이 된 건지 중요한 타이밍에 내가 녀석들을 호되게 야단칠 수 있었다. 그러자 차츰 얘들도 나아졌다. 그땐 몰랐는데 아마 이때가 우리 개들의 사춘기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개를 키워 보니 사춘기는 사람만 겪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성장을 하는 모든 동물은 저마다의 사춘기를 겪는다.
개의 경우는 성견이 되고 힘이 세지면 자기 체급이 얼마나 되나 다른 개와 겨뤄 본다고 한다. 물론 종을 떠나 기질적으로 겁 많고 순한 개들은 그런 짓을 안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집 녀석들은 이 시기에 사고를 쳤다. 그것도 저 보다 체구가 한참 작은 개들만 골라서.
그러니 아이고야. 하늘이 노랗더라. 세상에 내가 그간 그토록 치를 떨던 행동을 내가 키우는 개가 할 때의 기분이라니. 그리고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의 절망감이라니. 그러니 말해 뭐 해 훈련사라니. 내가 직접 가서 구르고 뛰며 개 대신 훈련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국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해탈이하고 나는 동시에 펜션에 놀러 온 검은 개한테 물려 블랙랩(검은 레트리버) 요즘도 검은 개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나 둘이 같이 슬금슬금 피하기까지 한다. 언제 한 번 포천 집 앞마당에 있는데 펜션에 놀러 온 개 한 마리가 우리한테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려들더니 해탈이의 목을 물고 공중에서 흔들었다. (참고로 해탈이 몸무게는 23킬로다) 순간 이성을 잃은 나는 뭘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닥치는 대로 양손을 뻗어 이들을 힘으로 뜯어말렸다. 물론 그러면 안 된다는 거 안다. 머리로는 안다. 개싸움에 사람 손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 하지만 내 개가 바로 눈앞에서 죽는다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니 원칙이니 뭐니 생각할 겨를 없이 손부터 먼저 나갔다.
어찌어찌 젖 먹던 힘을 다해 간신히 이들을 뜯어놓고 보니 아뿔싸 다친 해탈이도 해탈이지만 내 손이야 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놀란 것도 잠시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 손으로’ 직접 차를 몰고 인근 병원에 가 파상풍 주사를 맞고 드레싱을 하고 누웠다. 그 와중에도 거주하는 곳이 산골이라 구급차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직접 병원에 가는 게 빠를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대와 신경을 비켜가 근육만 상처가 난 거라 큰 수술은 피했다지만 이 일로 나는 두 달 넘게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나는 왼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며 지내야 했다. 그러니 이 와중에 훈련사라니 진짜 어른 들 말마따나 서천 소가 웃을 일이지.
그래 아니 뭐 백번 양보해서 이 상태로 내가 만약 훈련사가 된다 치자. 그러면 검은 개를 데리고 오는 고객들한테 뭐라고 할 건가 “제가 전에 검은 개한테 물려 트라우마가 있으니 검은 개 훈련을 저는 못 합니다” 할 건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지.
그러니 훈련사도 보기에나 쉽고 말이나 쉬운 얘기지. 막상 하면 그 얼마나 힘든 일이냐는 얘기다. 이 일에 대해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훈련사에게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니 그가 반색하며 안 그래도 주변에 나처럼 ‘나도 훈련사나 해 볼까’ 하는 사람이 최근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해서 내가 물었다. 그럴 때 선생님은 어떻게 대답하느냐 그러자 그가 “저는 그는 그냥 다 해 보라고 해요” 한단다. 왜냐고 물으니 사실 다들 말만 하는 거지 실제로 도전하는 경우는 희박하단다. 또 내가 말한 것처럼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본인과 비슷한 시기에 훈련사 일을 시작한 동기도 수십수백이지만 지금껏 훈련사 일을 하는 친구들은 주위에 몇 안 된다고 한다.
해서 생각했다. 말은 쉽구나. 너무나도 쉽구나.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앞으로 남이 잘해서 쉬워 보이는 일을 두고 “나도 이거나 해 볼까”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쉬운 일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잘해서 쉬워 보이는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이제는 어디 가서 개에 대해 훈련은 고사하고 아는 척도 안 한다. 그 이유는 개도 사람처럼 저마다 달라 그 개를 직접 키우기 전까지는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