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살고 싶어 하더라고/세월호 12주기 단상/

슬픈 사월의 임계점

by 산만언니

매년 4월 난 아프다.

순진했지.

아니 어리석었지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까지 때려치고 세월호 이후 결연하게 설쳤는데, 젠장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간 내가 했던 얘기는 그저 벽에 대고 두어 번 외친 하소연이 되고 말았지. 그 생각을 하고 보면 뼈 아프지. 그래서 매년 4월엔 몸도 마음도 호되게 아프지.


처음 펜을 들었을 땐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는 심정으로 나는 봤으니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 쓰고 말하기 시작했는데 ,


글쎄 이제와 보면 이게 다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공적인 변화는 고사하고 개인적으로 내가 얻은 것도 싸늘한 사회의 반응과 냉소뿐이었으니, 그저 이 모든 게 허무하고 허탈할 수밖에.

또 이 일을 통해 내가 처절하게 깨달은 건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의 간극을 도무지 줄일 수 없다는 한계뿐이야. 어쩌면 우리는 이토록 자기 자신의 경험 이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좀처럼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 볼 생각도 못하는지. 이게 인간이라는 고지능 동물의 실체인지. 고작 이 따위가 신의 모상이라는 인간의 진짜 얼굴인지.


어떻게 이토록 처절하게 이기적이며, 타인의 비극과 상실을 모르는지. 아니 알아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안 하는지.

정치적 올바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이 그렇게나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딴 가치? 신념?


사람이 말이야 자기 새끼를 뱃속에 열 달 품었다 낳았어. 그 소중한 걸 잃었다고 생각해 봐. 그 심정이 어떨지 어떻게 몰라?. 강보에 싸였던 눈 못 뜨던 갓난애가 어느새 눈 맞춰 웃어주더니 이제 좀 걷네 싶던 그 아이가 가방 메고 학교에 가 친구를 사귀고 교복을 입더니 수학여행을 간데 그 길로 손 흔들고 나가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집에 가 아이를 위해 기도나 하라는 소리를 해?


어디 저 먼바다에서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진도 앞바다에서 사고가 났는데 어째서 우리 해경이 304명이나 되는 희생자를 구조하지 않았는지, 이에 분노한 시민 천만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와 정권까지 교체했으나 재판은 무려 7년을 끌고 피의자 전원 11명에게 전부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니. 그게 이해가 되냐고, 이해가 돼야 잊을 거 아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잊어.


그러니 다들 병이 나 안나. 나 역시 마찬가지. 차라리 지난 6년간 어디 경치 좋은 산에 가 삽질이라도 했다면 올 겨울 들어가 살만한 동굴이라도 하나 괜찮은 거 팠을 텐데 싶어 가슴이 아려, 그뿐이야? 그 후로도 참사는 계속 됐어.


게다가 더 황당한 건 이후 벌어진 사회적 참사 앞에서 세월호는 양반이더라는 것.


세월호 경력직이 정부 고위층에 있을 때 벌어진 참사는 말도 못 해. 이태원에서 아리셀 오송지하참사 무안공항 제주 여객기참사까지 세상에서 순식간에 지워지는데 이건 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라.

삼풍 때는 안 그러더니, 세월호 이후 사회적 참사 피해자는 바로 반정부 세력이 되더라.


유가족이 거리에 나와 진상규명을 외치면 다들 보상금을 노리는 파렴치한이 돼. 돈 얘기는 한 마디도 안 꺼내는데 전부 돈 얘기 한다고 해. 기가 차고 숨이 넘어갈 노릇.


그뿐인가, 각종 커뮤니티엔 발 빠르게 유가족에 대한 모함과 괴담이 올라와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것도 괴로운데 이로 인해 유가족은 이웃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세월호 이후 참사피해자는 이제 늘 보상금을 더 뜯기 위해 눈먼 시위를 하는 가해세력 종북 좌파가 돼.


재밌는 세상이야. 어떻게 요즘 같은 개인 미디어 세상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놀라울 따름.

다른 말인데, 최근에 베프가 말기암 판정을 받아 함께 병원을 다녔어. 이혼한 친구라 내가 친구와 함께 병원에 다녔는데


이번에 나 암 병동에서 되게 충격받았잖아. 아니 환자들이 정말 너무 살고 싶어 하는 거야.


나 정말 몰랐어 사람들이 이토록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걸.


사는 동안 나는 수 없이 많이 죽음을 경험했고,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취약한지 봤기 때문에, 또 이 생의 끝이 있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당연히 죽는 것을 알게 되면 다들 덤덤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살고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다들 말도 안 되는 희망과 기적을 붙들고 살려고 하는 거야.


종합병원은 그래, 그렇다 쳐. 근데 호스피스는 더 가관인 거라 그곳이야 말로 더는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그저 진통을 줄이기 위해 가는 곳이잖아. 근데 거기서도 다들 퇴원하면 뭐 할지 얘기를 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여태 나는 한평생 내가 죽거나 다치는 입장이어서 사랑하는 대상을 잃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해 본 적 없어 상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더라고.


이제야 헤아려 볼 수 있었지. 매일 같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픈 친구를 보며 같은 병실에 와 있는 사람들을 보며 영화에서 왜 악당이 당사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가족과 아이를 납치해 협박하는지 알겠더라고.


친구가 아파도 이런데 내가 품고 낳은 자식이면 그곳이 지옥이지 다른 곳이 지옥일까 싶더라.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가장 바라는 시간들은 남들이 지루해하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이야. 아침에 일어나 씻고 학교나 회사에 가 믹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잠에서 깨 일을 하고 탕비실에 삼삼 오오 모여 시시 껄렁한 얘기로 수다 떨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두부와 콩나물을 사고 갓 지은 밥에 국을 끓여 가족 모두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나른하게 늘어지는 하루하루.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걱정을 하는 날들. 아이들의 고만고만한 성적. 아파트 대출 만기. 남편의 적어지는 머리숱 같은 것들. 혹은 좋아하는 드라마의 말도 안 되는 결말 같은 것.


한데 말이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시시한 고민을 해 본 적 없어.


스무 살에 아빠가 스스로 목을 맨 걸 보고 그 후로 석 달 뒤에 삼풍 백화점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후 여태 내 고민은 왜 대체 더 살아야 하는지. 죽지 말아야 할 이유는 뭔지. 같은 무거운 고민이야.

다시 세월호 얘기로 돌아오면, 그 배가 바다에 빠진 지 12년이 흘렀네, 그때 바람 부는 팽목항에 서서 어쩌면 나는 이걸 증언하기 위해 살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당신들 이러면 안 된다. 왜 제대로 구조하지 않느냐. 어째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 삼풍 때는 온 나라가 떠나가도록 난리 버거지를 치더니 심심하면 조명탄이나 하나씩 탕탕 쏘고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래 나 이런 말 하려고 그들은 죽고 나는 살았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어.요즘 애들 말로 자의식 과잉 ㅎ


그래서 요즘 자꾸 가만히 있어도 무릎에 힘이 빠지고 슬퍼. 거기다 세상의 규칙은 왜 이 다지 거지 같니. 어째서 또 아픈 건 독하고 못된 내가 아니고 착하고 여리고 순한 내 친구야.


만약 둘 중에 하나 아파야 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파야지. 딱히 살고 싶지도 않은 내가 그 몹쓸 병에 걸려야지. 어째서 하나 달라면 둘을 내어주는 착하고 순한 내 친구가 아프냐고 이렇게나 살고 싶어하는 내 친구가 아프냐고 이 때문에 나는 요즘 가만있어도 약이 바짝바짝 오르고 억울하고 분해서 가끔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쳐.


하긴 이 땅에서 오래 살아남는 건 인간이나 식물이나 질기고 독한 것 뿐이더라


그걸 생각하니 더욱더 이 띵에 정이 떨어져 살기 싫어.

그래 그냥 그렇다고.


#슬프다이이나마이트위스트로트로이카바레트로이킴은제대했더라디오좋아하는사람들착해요들레이히어로끝#멘탈나간산만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