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그간 직장 생활하며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쓰려고 한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로지 기억나는 게 회사에서 축구한 거밖에 없다. 해서 쓴다. 회사에서 축구한 얘기.
물론 어렵게 승진을 했을 때도 좋았다. 모두가 힘들거라 했는데 기어이 돼서 좋았다. 하지만 그때도 어쩐지 축구에서 이겼을 때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명백하게 지난 20년의 직장생활 중, 축구했을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게 맞다. 물론 내가 직접 뛴 건 아니다. 나는 관리만 했다.
한 때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사장배 축구대회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축구를 하러 회사를 다니는 건지, 회사에 다녀서 축구를 하게 된 건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다들 축구에 열심히였다. 오죽하면 면접 볼 때 입사지원자들의 간단한 축구실력을 볼 수 있게 체력장 코스를 별도로 넣자는 소리까지 다 했을까, 실제로 당시 면접관들 중 몇몇은 입사지원자들에게 축구 잘하냐고 대 놓고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아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땐 모두가 축구에 미쳐 있어서 이 모든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렇다면 왜 하고 많은 스포츠 중에 어째서 축구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성비다. 하다못해 야구만 해도 기본적으로 글러브에 배트는 있어야 할 수 있는데, 축구는 공하나 만 있으면 어디서든 어림잡아 스무 명도 넘는 인원이 함께 놀 수 있다. 같은 이유에서 농구나 배구도 진작에 탈락이다. 고작해야 한 번에 열 명씩 밖에 못 뛰니 축구에 댈게 아니다. 하여 이윤추구가 존재 이유인 기업에서는 당연히 축구를 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요즘 대한민국에서 축구하는 회사 없다. 요새 젊은 친구들한테 축구하게 퇴근하고 남으라고 하면 아마 아무도 남지 않을 거다. 혹여 남는다 해도 이 친구들은 먼저 축구하는 시간에 대해 연장근무 인정해 줄 거냐고 물어 올 거다. 맞다. 세상은 변했다.
솔직히 말해 요즘 친구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들은 아버지 세대가 조직에 충성하다 결국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 지켜보며 자란 아이들이다. 쌍용차나 한진해운 사태만 해도 벌써 십 년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사회에 나왔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은 이 친구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입을 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 땅에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건 이들보다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희한하게도 그 해 사장배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부서가 연말이면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언제부턴가 축구장은 서로의 축구실력을 겨루는 장소가 아니라, 그해 그 본부의 조직문화나 본부장의 리더십 각축전으로 변질되고 말았았다. 하여 축구만 했다 하면 본부장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열을 올렸다. 해서 심할 땐 제품의 시생산 일정까지 조정해가며 경기를 했다. (제품 시생산 일정 반나절 미룬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만약 이게 문제가 되면 그게 진짜 문제다.)
내가 소속된 곳은 연구소였기에, 즉 공대출신이 많아 본사에 비해 소위 말해 학교 다닐 때 "공 좀 차 본 친구" 들의 수가 다른 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서 매년 우리 팀은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한데 어쩐 일인지 우리는 막상 실전에만 들어가면 이전에 국가대표 찜 쪄먹게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공을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기 바쁜 희대의 오합지졸로 변해버렸다.
해서 궁금했다. 대체 왜 이러는가, 하여 나는 매일같이 선수들과 함께 밤이 새도록 우리가 왜 지는지 끊임없이 토론했다. (물론 술도 한 잔 하면서) 뭐 당시 우리가 주고받았던 내용들은 지금 생각해도 죄 다 한심하지만, 그중 제일 한심한 얘기는 이거였다. 자기들은 국가공인 규격의 경기장에 최적화되어있는 몸이라, 코딱지만 한 동네 축구장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나 뭐라나.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돌연 (술김에) 축구팀의 매니저가 돼버렸다. 축구하는 애들하고 몰려다니다 졸지에 매니저가 돼버린 거다. 한데 당시만 해도 나는 완벽한 "축알 못"이었다. 그런 내가 매니저라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축구보다 야구가 더 좋다. 해서 여태 축구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지난 2002년 월드컵이 전부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매니저 몇 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나중엔 나도 프리미어 리그를 보며 이러니 저러니 입을 털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매니저가 된 후 나는 본격적으로 우리 팀의 패배 포인트부터 분석했다. 사실 실패한 과정을 복기하는 건 게임이 됐든, 연애가 됐든, 뭐가 됐건 간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왜 졌는지 모르면 계속해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그러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해서 나는 우리 팀의 경기를 수 없이 많은 날 복기했다. 그랬더니 문제가 보였다. 그건 바로 이 친구들이 축구를 전부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다 잘한다는데 있었다. (실제로 이들 중 몇몇은 진짜 선출 아닌가 싶게 잘 하긴 했다)
어느 스포츠나 마찬가지겠지만, 무엇보다 팀플레이가 요구되는 종목들은 해당 팀의 그림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당연하다. 수비가 받쳐줘야 스타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는 거다. 한데 우리는 팀원 모두가 스타플레이어가 되고자 했다. 해서 안 되는 거였다.
반대로 상대팀이었던 본사의 아재들은 우리보다 개인의 체력이나 기량은 월등히 떨어지지만, 각자 자신의 포지션을 정확하게 지키며 영리하게 뛰었기에 전 후반 경기 모두 큰 공 들이지 않고 점수를 냈다. 해서 생각했다.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니 해 보자.
그때부터 나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기존의 관행을 깨고 젊고 적극적인 선수들을 전방으로 배치하고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선수들을 후방으로 뺐다. 공격은 빠르게 수비는 철저하게 라는 전략으로 말이다. 또 선수들에 대한 물리적 지원도 끌어 왔다.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연습 때도 매일같이 먹을 거 싸들고 쫓아다니며 극성을 피웠다. 또 이들이 경기하는 걸 녹화해서 복수의 프로축구 관계자에게 보여주며 조언도 구했다. 한데 재밌었던 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이 하나같이 별 다른 게 없었다는 거다. 이들은 그저 우리에게 전부 살살 뛰라고만 했다.
그리고 나는 이때 축구장에서 뜻밖에 생의 큰 이치를 하나 깨달았다. 그건 바로 몸에 힘을 주고 살면 뭐가 됐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다치기 쉽다는 것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던지는 투수의 공이 멀리 나가듯, 축구 또한 다르지 않으며, 우리네 인생 역시 그렇다는 것 말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 팀은 내가 본격적으로 매니저를 맡은 후 4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우승했다. 말이 쉽지, 몸에서 힘을 뺀다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사는데 힘을 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극단적인 생각을 전보다 덜 하게 됐으니 말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행복한 감정에 영향을 주는 상황들, 그러니까 돈, 인간관계, 가족문제 등은 매일같이 열심히 죽고만 싶었던 나이 서른에 비해 지금이 훨씬 나쁜데 이상하게도 나이 마흔을 넘기니 확실히 예전처럼 더는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고 자연스럽게 뭐가 꼭 되어야지 하는 생각들을 버리자, 희한하게도 전보다 살만해졌다.
아무튼 내가 왜 느닷없이 축구 얘기를 꺼냈느냐, 아마 나는 축구가 아니었다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그토록 유명하지 않았을 거다. 바꿔 말해, 축구 때문에 이미 나는 사내에서 유명했으며, 덕분에 사고를 치기 전에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해서 블라인드에서도 사상초유의 게시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이슈몰이도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이 시절, 이 친구들과 함께하며 축구를 통해 분명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해서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아무리 내게 손가락질하고 욕한다 해도 내 안에 있는 이런 마음들까지는 훼손할 수없을 거라고 ,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추신: 어느덧 연재도 막바지다. 다음에 올리는 글이 이 연재의 마지막 회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연재에 공감을 표해 주신 여러분께 벌써부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