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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그래, 그 이후의 생

by 산만언니

많은 분들께서 이 연재를 보고, '미생'의 장그래가 떠 올랐다고 했다. 나 역시 미생을 보며 많은 순간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으니, 어느 정도 맞는 얘기 같다. 드라마 미생을 볼 때도 비정규직으로 조직생활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남들처럼 장그래가 정직원이 되길 응원하지 못하고 인턴을 끝낸 그가 실제로 정규직이 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했다.


전에 미생이 한참 유행일 때 어떤 소설가가 한 라디오에서 자기는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지 미생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안 되더라. 자기들이 계약에 성공해도 회사가 돈을 버는 거지 자기들이 돈을 버는 게 아닌데 왜 저렇게 좋아하고, 왜 그렇게 열심히 할까 그게 너무 생소하더라. 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 되므로, 조직생활 안 해 봤으면 그런 말 할 수 있다. 해서 내가 늘 말하는 거다,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타인의 인생이라고.


나 역시 실제로 조직생활을 해보기 전까지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뭐랄까, 내 눈에도 그들이 좀 어리석어 보였다. 한데 막상 조직생활을 해 보니, 소속감이라는 게 또 묘해서 사람을 자꾸 변하게 만들었다.


회사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그냥 나는 내가 우리 팀의 주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가 속한 부서가 혹은 회사 자체가 성과를 내고 잘 나가는 게 좋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보통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잘 되는 걸 좋아한다. 뭐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학교 다닐 때 반대항 피구 경기에서 우리 반이 이기면 좋은 거,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우리나라가 우승하면 좋은 거, 회사생활도 다를 거 없다. 이런 종류의 감정이다.


그리고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면 특히 대기업에 근무하면 의외로 생의 많은 불안요소가 줄어든다. 또 대기업에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이 모여 있기에 일상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전문가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덕분에 법률상담에서 금융자문까지 주변에서 쉽게 받을 수 있어 좋다. 또 무엇보다 큰 일 겪을 때,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직장 내 인맥들이 꽤 많은 위로가 된다. 특히 나처럼 가족이나 친구와의 연대가 튼튼하지 못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해서 이런 연유로 요즘 젊은 친구들이 전보다 더 공기업이 됐든 사기업이 됐든 조직으로 몰려드는 것 같다. 사는 게 그만큼 불안정하니까 말이다.


대기업 그러니까 특별히 제조업은 크게 보면 자동차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게 굴러간다고 보면 된다. 바퀴 혼자 잘났다고 혼자서 멀리 갈 수 없듯이, 제조업 역시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협조로 굴러가는 거다. 또 제조업도 자동차처럼 부품 두어 개쯤 제 역할 못한다고 갑자기 길에서 멈추어서거나 하지 않는다. 수만 개의 부품들이 일시적으로 생기는 자동차의 크고 작은 결함들을 보완하며 굴러가듯, 제조업 역시 어지간하면 서로가 서로의 구멍을 메워주며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제조업의 본질이며, 조직의 힘이라고 보면 된다.


해서 대기업에 취업한다 해도 생각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입사 통보를 받는다는 건 어찌 보면 그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거지 그 외에 별 다른 게 없기 때문이다. 또 회사에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니 어쩌면 퇴사할 때까지 영영 내 맘대로 일을 못할 수도 있다. 제조업의 업무란 개개인의 뛰어난 재능보다 기존의 매뉴얼과 프로토콜의 반복에 의해 진행되는 게 많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 대기업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상사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해서 대기업이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거다. 어쨌거나 그들의 졸업장과 성적증명은 오랜 시간 이들이 성실하게 공부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 자료니까


그러니 바꿔 말해, 이런 조직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업무를 맡길 때는 그간 얼마나 많은 검증을 했겠는가.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지금 당장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이 대기업에 입사지원을 한다 해도 아마 많은 국내의 기업들은 그의 채용을 고사할 거다. 물론 구글처럼 혁신적인 기업들은 차세대 딥러닝 개발자로 이세돌을 영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기업 특히 제조업의 경우는 대개가 스타플레이어를 원하지 않는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의 경영진은 다들 겉으로는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이런 기업문화 정착에는 IMF 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정말 회사를 다니는 내내 실력을 증명하며 살아야 했다. 해서 그간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심지어 누가 나한테 "지 몸 하나 관리 못하는 게 디자인은 무슨 디자인이야 " 같은 소리 할까 봐, 지난 20년간 체중조절도 강박적으로 했다. 게다가 뭐가 됐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배웠으며, 하나를 하더라도 끝까지 했다. 왜 아니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석 박사들하고 함께 일하게 됐는데, 이들과 적어도 오분 이상 대화는 해야 할 것 아닌가.


한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했던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들은 보지 않고, 그저 운이 좋아, 혹은 몇몇 임원들이 예뻐해서 직장생활 거저 한 줄 안다. 물론 한 두 번 그럴 때도 있었겠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조직에서 임원까지 가는 사람들은 소위 말해 이 판의 고수들이다. 그런 고수들이 왜 쓸데없이 나 같은 애를 믿겠는가, 게다가 나는 이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다. 학교에서 고향까지 뭐하나 겹치는 게 없다. 그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티 안 나게 노력하는 모습을 눈여겨 봐 준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하는 그날까지 회사에서 나는 많은 이들의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전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에 사장님 지시로 제법 큰 프로젝트를 수행 한 적 있었다. 수 십 년째 쓰고 있는 그룹의 올드한 이미지의 사내 로고 디자인을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기업 로고가 아니라, 제품 브랜드 이미지) 물론 이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수행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야말로 사원부터 한 칸 한 칸, 따박따박 올라가 과장이 된 후의 일이니까, 해서 나는 이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보통 이런 일을 하면 관련 업체 두 어 군데 만나 미팅해서 비교견적을 받고 더 나은 견적을 제시한 업체를 골라 계약을 하고 진행하는 게 관행이지만, 나는 비용절감을 위해 중간 업체를 전부 빼고 모든 일을 직접 했다. 디자이너도 다 따로 만나 별도로 계약하고, 상표권 확보도 스스로 하는 등, 모든 업무를 쪼개 회사 돈을 아꼈다. 물론 이 일을 하기 전에 꽤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분야에서 일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정받고 싶은 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결국 애초에 브랜드 업체가 제시했던 견적의 1/10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는 이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가성비 좋은 신규 브랜드를 만들어내자 관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그걸 계기로 나는 사내 방송까지 출연하게 됐고, 여기저기서 칭찬을 받았다. 이제 이 일에 대해 홍보를 하고 사용 가이드 배포만 하면 됐다. 해서 해당 업무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경영지원 본부장을 찾아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보고했다.


보고 당일, 본부장은 내게 눈길 한 번 건네지 않았다. 불철주야 내달려 그 일을 만든 건 난데, 그는 계속해서 나를 투명인간처럼 여기며 우리 팀장님만 보며 얘기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 팀장 역시 당황해, 그가 질문을 할 때마다 내가 만든 보고서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보며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렇게 보고가 끝나자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려 손목을 까딱거려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사인했고, 우리는 진작에 돌아선 그의 등에 대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날 팀장님이 내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 주었는지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팀장님도 무안해서 쩔쩔맸던 것만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후로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 본부장은 틈만 나면 나를 갈궜다. 예를 들어 사람들 많은 데서 나의 지적 능력(그걸 지적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공공연하게 테스트했다. 한국말로 해도 되는 말들을 굳이 영어로 표현하며 "지금 내가 하는 말, 무슨 말하는지 알아들었어?"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쨌든 그 일이 마무리되자 그가 내게 말했다. "조직에선 말이야, 한 발 늦게 걸어도 안되고, 한 발 빨리 걸어도 안 되는 거야, 딱 반 발만 앞서 걷는 거야" 당시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였다. 그 후로도 그는 오가다 마주쳐도, 내가 퇴사하는 그날까지 내가 하는 인사를 제대로 받아준 적 없다.


또 나는 여태 일 하면서 퇴사하는 그날까지 내가 나하고 지킨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업체 미팅은 가급적 2시에서 4시 사이에 끝낸다는 거였다. 일하는 동안 나는 여태 업체로부터 공밥 한 번 얻어먹은 적 없고, 명절이라고 어디서 사과 한 알 받아 본 적 없다. 살아보니 세상에 공짜 없었다. 한데 이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 이상했나 보다. 같이 오래 일해 온 디자인 업체 사장이 언젠가 농담조로 이런 말 한 적 있다 "차라리 오밤중에 불러내 술값 대신 내달라는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편해요. 과장님 같은 분한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해서 나는 말했다. "지금처럼 일만 잘해주시면 됩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넓은 회의실에 앉아,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받던 날, 거기 계신 분들께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는데, 질문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본인이 다른 수많은 여직원들의 롤모델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당시엔 이 얘기를 들으며, 내가 무슨 롤모델 씩이나 된다고 저런 말을 하나 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내가 만약 끝까지 잘하고 나왔다면 좋은 선례가 되어 적어도 그룹 안에 있던 다른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해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일은 너무너무 복잡하다고, 일을 망쳐 버리고 나쁘게 사는 건 언제나 편하고 쉬운데, 착하게 사는 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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