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에 정말 못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명희였다. 그녀는 정말 못됐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 내 머리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어린애가 영악했다. 또래보다 어른스러웠던 그녀는 별생각 없이 사는 같은 반 아이들을 전부 자기 아래 두고 통제하며, 만만한 애를 하나 골라 따돌려야 마땅한 이유를 만든 후, 그 애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걸 즐겼다.
물론 당시에 멍청함과 보통의 경계선에 있던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얼마 안 되어 그녀의 제물이 됐다. 한데 그때 4학년 때 나랑 같은 반이었던 친구 정원이가 명희의 서슬 퍼런 경고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매일 나와 함께 해 주었다. 그렇게 정원이가 내 곁을 굳게 지키자 명희의 무리들이 서서히 우리 쪽으로 하나 둘 건너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명희 스스로 우리 반에서 누군가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짓을 멈춰야 했다.
그 후로 나는 다짐했다. 나도 꼭 정원이처럼 되리라. 지금 당장 무섭고 두려워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하며 살리라. 하지만 여태 나는 당시 5학년이었던 정원이의 발끝도 못 쫓아간다. 아니 어쩌면 사는 내내 나는 많은 이들에게 영악한 명희였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회사 생활을 잘하려면 어느 정도 "악한 재능" 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위에서 말한 명희 같은 재능 말이다. 어쩐 일인지 회사에서는 평화롭게 지내는 일보다 남과 싸울 일이 많아, 다 큰 어른들이 정말 별 거 아닌 일로도 서로 물고 뜯기 일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예외는 있다. 절대로 이 바닥의 검은 물이 들지 않는 천연기념물 같은 백로들 말이다. 그렇다. 말 그대로 천연기념물
아마 그 이유는 대체로 악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회사를 잘 다니기도 하고, 또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내면에 있던 악한 재능들이 드러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해서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지난 직장생활에서 이 부분을 떠올리면 어쩐지 나는 조금 서글퍼진다.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 함께 일하고 헤어지면 그만인 일을 왜 그렇게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게다가 어른이 되고 다시 만난 회사원 "명희"들은 정말이지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는 당시에 초등학생 었던 명희와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몸은 어른이지만 속은 시기와 질투로 활활 타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도 그때의 명희나 지금의 명희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데 선생님이 예뻐한다. 선생님이 예뻐하니까 잘난척한다. 가난한다. 걸핏하면 학교도 늦게 오고 땡땡이도 치는데, 이상하게 친구들도 선생님도 쟤한테는 아무 말 안 한다. 재수 없다." (물론 다 내 생각이다)
이쯤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난 이 글로 인해 지난날 내가 회사에서 쳤던 사고에 대해 면죄부를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사적으로 복잡한 일이 있었다고 해서, 공적인 업무를 망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일에 대해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가 잘못했다. 나 역시 그 일이 누구보다 후회스럽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지난 일을 돌아다볼 때 자꾸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와 내가 받았던 비난의 무게를 자꾸 양팔 저울에 달아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번 기회에 지나간 일들을 쭉 한 번 헤아려 보는 거다. 헤아려 봐야 알 것 같고,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해야 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해 여름 사고를 친 후로 내게는 퇴사하는 그날까지 자꾸 가짜 뉴스가 따라붙었다. 가짜 뉴스는 대체로 이런 식이 었다. 몸이 좀 안 좋아 휴가를 내고 며칠 쉬면 "지하 주차장녀 아직 정신 못 차렸다더라. 사고 친지 얼마나 됐다고. 무단결근 중이더라 " 하는 식. 해서 퇴사하기 전까지 일이 있어도 잘 쉬지 않았고, 그런 말이 도는 걸 알아도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말로 하는 변명 같은 거 의미 없지, 하고 말이다.
한데 지난겨울에는 참을 수 없는 루머가 돌았다. 당시 기러기 아빠였던 본부장님께 별생각 없이 우리 수녀님들께서 담가주신 김치 한 통을 드린 적 있는데 그 일이 화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 이 루머는 밤마다 날 선 칼이 되어 나를 찔렀다.
사연인 즉 이랬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본부장님께 오전에 간단하게 업무 보고를 드린 후 잠깐 사담을 주고받는데, 그분이 내게 연말에 아이들 보러 미국에 가는데 김치를 어디서 사면 좋겠냐, 전에 맛없는 김치 사가서 와이프한테 혼났다. 그 얘기에 내가 별생각 없이, 집에 있는 김치 한 통을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마침 당시 집에 있는 작은 냉장고가 주변에서 받아온 김장 김치들로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김치라면 한 통 드릴 수 있다. 맛은 보장한다고 했다. 바로 다음 날 수녀원에서 받아 온 김치 한 통을 가져와 사무실에서 본부장께 드렸다. 한데 희한하게도 이 일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자극적인 키워드로 재편집되어 이렇게 배포되었다. " 지하 주차장녀 혼자 사는 본부장의 아파트에 주말에 김치까지 싸들고 드나든다. "
사실 나를 평소에 조금이라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이 일에 손톱만 한 의문도 품을 수 없다. 워낙 어디 가서 뭐든 잘 얻어오는 편이고, 뭐가 됐든 주변 사람들과 잘 나눠먹는 성격이다. 또 꽤 오래 보육원에 봉사를 다닌 덕에 그곳 수녀님들께서 항상 내게 이런저런 먹거리를 자주 챙겨주시기에, 평소에도 효소나 김치같이 혼자 먹기 어려운 것들은, 회사 동료들과 자주 나눠 먹었었다.
또 구설이 심했던 그 해 겨울에는 집에 혼자 있으면 진짜 말 그대로 너무 심란해, 틈만 나면 보육원에 가 살다시피 했기에, 나는 본부장이 산다는 그 동네에는 우연이라도 얼씬 한 적 없다. 하니 내 입장에서는 그 얘기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내 나이 마흔을 넘겼다 해도 아직 미혼이고 여자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남자 혼자 사는 아파트에 음식을 해서 드나든다는 소문이 반가울 리 없었다.
다행히 이번엔 소문은 역추적해 소문의 진원지를 금세 찾을 수 있었고, 얼마 안 가 최초에 이야기 유포자를 찾아, 본부장께 보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본부장은 괜히 본인 때문에 내가 곤란을 겪어 어쩌냐고 미안하다 사과하더니 바로 그를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한데 그는 본부장 앞에 가더니 예수를 모른다던 베드로처럼 혐의 사실을 세 번이나 완강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해서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내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 좋다. 그렇다면 내가 고소를 할 테니, 어디 판사 앞에서도 똑같은 말 할 수 있나 보자"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말렸다. 가뜩이나 사내 평판도 안 좋은데, 그러지 말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참으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대체 내가 왜 참았는지 모르겠다. 당시 내게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주고받은 증거, 그러니까 고소가 성립되는 확실한 증거도 있었고, 또 그 해 내가 본부장이 살던 동네 쪽으로는 얼씬도 안 했다는 사실 또한 증명할 수 있었다. 한데 주변 사람들이 하도 말려서 그냥 넘어갔다.
범인은 뜻밖에도, 생판 모르는 남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나이 오십의 사업팀 한 부장이었다. 모르겠다. 그 역시 오다가다 어디서 내 얘기를 주워들은 건지도, 만약에 그랬다면 누가 그에게 그런 얘기를 해줬는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끝까지 자기는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고,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고 잡아떼기만 했다. 해서 나는 이 일을 겪으며 얘기를 만들고 전하는 데 있어 나이나 성별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생각했다.
퇴사하기 얼마 전, 우연히 그와 빨간 신호등 앞에서 마주친 적 있다. 그때 나는 부러 그에게 인사도 안 하고 눈을 계속 맞추었다. 그러자 그는 어쩐지 내 시선을 좀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피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그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 어쩌다 저런 미친년 하고 엮여 본부장한테 찍혔을까"라는 느낌을 전해 받았다. 사실 나는 속으로 그가 정히 그 일에 대해 말로 사과를 못 하겠으면 눈으로라도, 몸짓으로라도,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천만에, 그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해서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애초에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