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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래, 나 정신병자다.

by 산만언니

맞다.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여러 번 밝혔듯 유년시절의 가정폭력, 학창 시절 삼풍사고 등 살면서 겪은 크고 작은 불행들이 사는 내내, 내 영혼을 찢어 놓았기에 나는 공식적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하여 지난 십여 년간 약을 먹지 않고 잠든 날이 없다. 주된 증상으로는 불안으로 인한 불면을 꼽을 수 있다. 우울과 강박증세도 있다. 아무튼 나는 약이 없으면 단 하루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병원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일상생활하는데 아무 문제없다. 그러니 그 긴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


지금은 불안 증세가 많이 좋아졌으나, 전에 심할 때는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해 잠옷 바람으로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고, 혼자 술을 마시다 술병을 깨고는 맥이 뛰는 혈관을 찾아 긋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에는 운전을 하는데 자꾸 두 손을 핸들에서 놓고 싶은 충동이 들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 했던 적도 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사고를 쳤거나, 사고를 치고 싶었던 때는 혼자 있었을 때였다. 대체로 크리스마스이브나, 명절, 혹은 생일처럼 다들 어디선가 어련히 알아서 행복하게 보내겠거니 하며 주변 사람들이 나를 내버려 둘 때였다.


나 같은 유형의 정신병자는 뭐 대단할 게 없다. 환청이나 환각이 들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병이 악화되면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게 전부니까, 그리고 이 병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약을 꾸준히 먹고 관리 잘하면 일상생활하는데 큰 문제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관리를 못하면 애석하게도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여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한 후 사는 내내 병에 최대한 집중하며 살았다. 그런 이유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목숨 걸고 했다. 하지만 노력은 어디까지나 노력일 뿐, 꽤 많은 날들을 나는 나를 괴롭히며 살아왔다.


최근에는, 그러니까 회사에서 내가 블라인드 스타가 됐을 땐, 또다시 극심한 통제가 안 되는 불안한 상황에 놓였고, 이번엔 진짜 내가 나를 어떻게 할 거 같아서, 스스로 이부자리 싸 들고 인근의 정신병원을 뒤져 혼자서도 입원이 가능한지 알아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행 의료법상 가족이 있는 사람이 보호자 없이 스스로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게 불가능해 당시에 나는 어떤 정신병원에도 입원하지 못했다. 그렇다. 슬프게도 내게는 이럴 때 도움받을만한 가족이 없다. (나중에 선생님이 정히 충동적인 생각이 들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해서 사고를 치고 내 얘기가 매일같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에도 나는 제시간에 따박따박 출퇴근을 했다. 무슨 대단한 목표가 따로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당시에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약속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자. 하지만 이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꽤 이상했던 모양이다. 자꾸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보러 우리 층에 왔고, 구내식당에서 서로 눈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나 때문에 우리 회사 블라인드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얘기와, 다른 지방사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내 인트라넷으로 내 사진을 찾아본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극심한 대인기피까지 걸려, 출퇴근 길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찾아 골라 다녔고, 사람 마주치는 게 싫어 가능하면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만 다녔다. 물론 꽤 오랜 기간 점심도 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자려고 누워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들을 보는데, 갑자기 다시 한번 "아 그냥 이딴 소리 듣고 사느니 죽어버릴까, 죽는 게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다시 했다는 걸 자각 각하 고는, 날이 밝자 서둘러 나를 받아 줄 만한 폐쇄 정신 병원들을 찾아다닌 거였다.


그 후로도 블라인드에서 내 이름은 꼬박 3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거론됐다. 징계 공고가 떠도, 팀을 옮겨도 사람들은 계속 나를 "'지하 주차장녀"라고 부르며 내 얘기를 했다. 술을 먹은 게 아니라 정신과 약을 먹은 거라 하니 " 개념만 없는 줄 알았는데 정신병자였어? ㅋㅋㅋ" "약쟁이야? ㅋㅋㅋ " 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나는 이때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우리의 한글은 위대해서 너무나도 위대해서 ㅋ라는 자음 한 글자로도 남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물론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블라인드 같은 거 아예 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막상 당해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에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께서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블라인드를 거론하며 "익명의 다수가 등에 칼을 꼽는 기분이다."라고 한 적 있는데, 그분에게 댈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당시에 비슷한 심정에 사로 잡혔다.


막상 퇴사하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얼굴 한 번 보자며 연락 해왔다. 물론 다들 호의에서 비롯된 제안인 건 알았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아 대부분 좋은 핑계를 찾아 거절했다. 그러다 간혹 예의가 아닌 것 같은 자리는 마지못해 나가면 스트레스를 꼭 심하게 받았다.


왜 아니겠는가, 죽기 살기로 한 게임에서, 먼저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나온 건 어쨌든 나다. 지고 나온 경기 복기하는 게 즐거울 리 없었다.


평소엔 어떤 사고가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면, 피해자에게 있어 가해자의 의도 같은 것, 가령 " 그렇게 아플 줄 모르고 때렸습니다" 같은 말들이 얼마나 중요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항상 명확한 피해사실 앞에서 선한 의도 따위는 아무 소용없다. 생각했다. 의도는 어디까지나 본론이 아니니까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을 때나 찾아보는 별책부록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 일을 겪으며 알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가 문제라는 걸, 의도를 알지 못하면 영원히 그 일과 화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또 그제야 알았다. 왜 어른들이 뺨을 맞아도 이유를 알고 맞으면 덜 아프다 한 건지, 해서 나 역시 벌써 일 년도 넘은 이 일에 대해, 이제라도, 사람들을 찾아 만나보고 싶다. 그때 나한테 다들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다.


또 이들을 만나면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당신들은 정신병자가 왜 싫은지, 내 병은 감기처럼 남한테 옮기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자기 신수나 들들 볶으며 사는 게 전부인데, 어째서 가만히 둬도 괴로운 사람을 그렇게나 미워하는지도 알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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