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는데 인상적인 장면이 나왔다. 아이와 함께 카페에 간 주인공 김지영에게 주변 사람들이 다짜고짜 "맘충"이라고 욕하자, 극 중 김지영이 따져 묻는다. "저를 아세요?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쪽이 아세요? 왜 다른 사람 상처 주려고 안달이에요?" 이 얘기를 듣고, 나는 혼자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늘 이게 궁금했다.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며, 왜 서로 상처 주고 싶어 안달인지.
얼마 전에 뉴욕에서 일하고 있는 사촌 언니를 오랜만에 봤다. 언니는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 남자랑 결혼해 계속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미국에서 911 테러에 대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 있어? 하니 언니가 깜짝 놀라면서 그럴 리가, 한다. 해서 만약에 미국에서 911 테러가 지겹다고 말하면 어떻게 돼? 하니까, "글쎄 잘 모르겠네, 물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 그런데 그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과연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다는 얼굴이다. 해서 내가 세월호 얘기를 해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놀라서 까무러친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나는 국내에서 이슈가 된 "겨울왕국 노 키즈존" 논란이나 "스타벅스 뜨거운 물" 논란을 떠 올려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게 뭐가 어때서 남들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엄마와 함께 나들이하는 걸 왜 그토록 이 사회가 못 참아주는지도 모르겠고, 물론 아이가 싫다는 그 마음도 안다. 어떤 일이든 나까지 꼭 좋아해야 할 건 없으니까, 남들이 좋다고 해도 나는 싫다고 할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사촌 언니 말마따나 그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데 어째서 몇몇 사람들은 불쾌감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사이다 발언"이라며 동조까지 해 주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양보해서 봐도, 내 기준에서 이런 논란들은 어째 좀 각박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지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전에 회사 다닐 때도 겨울왕국 노 키즈 존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회사에 딸린 사내 어린이집 보호자들에게 임직원용 주차공간을 내주자는 얘기가 한때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게시판에 어떤 임원이 글을 하나 올렸는데, 자신에게 배정된 주차 공간을 사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같은 팀 여직원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할 거라 생각했다. 한데 천만에, 익명게시판에는 그날 바로 "그럴 수 없다. 회사에서 낳으라고 해서 낳은 애냐" 하는 역차별 논란이 벌어졌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이런 식의 논쟁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날씨 일 년 중, 좋은 날 그리 많지 않다. 노상 춥거나 덥고, 황사에 태풍에 비바람 부는 날이 더 많다. 한데 그런 날 어린애를 차도 없이 유모차에 태워 오는 엄마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보통 사람들의 정서 아닌가, 게다가 없는 자리 새로 만들어 주자는 것도 아니고, 안 쓰는 공간을 임직원 간에 서로 공유 하자는 건데 그거 가지고도 " 된다. 안 된다 " 야단이라니, 어쨌든 이 일은 사측에서 어린이집 쪽으로 주차공간을 더 확보해 주면서 좋게 끝났다. 한데 그때 역차별 논쟁을 보던 그 마음은 여태 씁쓸하다.
글쎄, 블라인드라는 익명게시판 특유의 정서 때문에 그런 글이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실제로는 다들 속으로는 다들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한데 나는 이런 식의 일을 볼 때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보태주지 않아도, 충분히 고단한 생들을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말이 맞다. 착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고, 나쁜 사람들은 너무 열심히 산다는 말, 생각해보면 회사에도 이런 사람들이 꼭 있다. 하루 종일 네거티브 뉴스만 만들어내는 사람 말이다. 항상 어떤 일을 봐도 혼자서 조금 다른 각도로 보고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고 소문부터 내고 다니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살다 보면 이들의 관점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한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들은 조직 안에서 언제나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켰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이들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안 해도 되는 감정싸움을 하고 살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난 20년의 직장생활 중 가장 후회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이 들하고 잠깐이라도 어울려 다니며 물색없이 괜한 사람 함께 미워해 준 시간들이다. 해서 난 정말 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렇게 남 얘기하는 게 좋거든 차라리 어디 가서 미용실을 하던지 사우나를 차리라고, 왜 굳이 힘들게 매일 아침 넥타이 매고 하이힐 신고 출근해서 남들 일 할 때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말이다.
솔직히 나는 여태 살면서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 치고 잘 된 사람 본 적 없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도 뭐 하나를 해낼까 말까 하는 세상을 살면서, 내 신경의 전부를 남에게 맞추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하겠는가, 하여 나는 회사에 다닐 때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말도 잘 안 섞었다. 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그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며, 밖에서도 종종 함께 밥을 먹던 친구 중 하나가 사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네거티브 메신저였다. 게다가 그녀를 통해 사내에 확산된 내 소문엔 이런 식의 프리미엄 딱지까지 붙어 유통되었으니까. "측근을 통해 들으니" "측근을 통해 확인한 결과" 그렇다. 내 눈 내가 찔렀다. 그러니 이제와 누굴 탓하랴.
앞서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지난 2018년 7월 9일 아침에 업무용 차로 사고를 냈고, 이에 관련해서 2018년 8월 19일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받았다. 한데 그 사이에도 블라인드라는 익명 게시판은 나 때문에 계속 뜨거웠다. 그러다 내가 정직 5일의 처분을 받자. 사람들은 말했다. 늦여름 휴가 보내 주는 거냐고, 솜 방망이 처분이라고.
이 일에 대해 말들이 하도 많으니, 당시 대표이사까지 특별히 참석했던 인사위원회였다. 해서 나야말로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내가 뭐나 된다고 이 사람들이 나를 봐주겠냐고,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결과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5명 이상의 이사회 임원이 회의에 참석해 사안을 검토하고, 징계 수위를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마저도 불신했다. 마치 사람들은 계속 나를 이런 프레임 안에 가둬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 내가 싫어하기로 한 이상, 넌 계속 나빠야 해. "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도저히 이 일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퇴사했다. 당시 나는 이 회사에서 이미 함께 일하면 안 되는 년, 나쁜 년이라는 낙인이 찍힌 후라 더 이상은 내 힘으로 뭘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이래도 욕을 먹고 저래도 욕을 먹으니, 이깟 회사 이게 다 뭐라고 그런 욕을 먹고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으니까.
사실 처음엔 모든 걸 그냥 묻고 가려고 했다. 나도 잘한 것 없으니 들추지 말자, 하면서 말이다. 한데 이렇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블라인드에서 본 말들이 자꾸 생각나 견딜 수 없었다. 또 최근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덮고 가면, 앞으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해도 되는 사람" 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 하여 이 일에 대한 고소를 진행하기로 한 거다. (변호사와 함께 시기를 보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퇴사하고 한동안 틈 날 때마다 여러 나라로 짐 싸들고 여행을 갔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도 유모차나 휠체어는 먼저 가라고 전부 길을 비켜준다는 것을, 아무리 도로가 엉망이어도 보행자가 있으면 누구든 기꺼이 브레이크를 잡아준다는 것을,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경제 순위 12 위 국가고, 국민 소득이 연평균 3만 불이 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가 먼저 가려고, 밀치며 산다는 것을, 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대체 왜 그럴까,
이제 지금보다 조금 더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보다 늦게 걷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처지 같은 게 보이지 않을까, 그럼 서로가 서로에게 지금보다 덜 사납게 굴 텐데 말이다.
사실 이 연재는 처음에 딴지일보라는 매체에서 '죽지 않는 돌고래' 편집장의 권유로 시작했다. 한데 정작 딴지일보에서는 연재 도중 사정이 생겨, 악플러들 때문에 끝까지 쓰지 못해, 중간에 이곳으로 옮겨 와 여기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연재는 처음에 딴지일보 편집장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완성은 브런치의 독자분들이 한 거나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사는 동안 나는 어디에 있든, 아마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하여 그간 여기저기 벌여놓은 글들 마무리되면, (가령 삼풍 생존자입니다 시즌2 같은 ) 다시 대기업 체험수기 시즌 2를 쓸 생각이다. 그렇게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이 연재 덕분에 수많은 직장인 독자분들께 공감 어린 지지와 따뜻한 격려를 받아서 글 쓰는 여정이, 이전처럼 힘들지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독자분들께 연재에 나오는 인물들에 너무 감정이입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드리고 싶다. 더러 극의 재미를 위해, 이야기를 바꾸고 사건을 부풀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 몸과 마음 모두 평안하시길 바란다.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