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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_부탁 말씀드립니다.

by 산만언니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이 연재 글을 쓰며 드디어, 글 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연재가 나가는 내내 많은 분들이 내게 메일과 쪽지 등을 통해, 다른 업종에서 다른 직종으로 근무하지만 공감한다는 피드백을 열렬히 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삼풍 시리즈'를 쓰는 건 여전히 힘들다. 거짓말 조금 보태 '피로 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잘 써야 한다는 무게감이 매일같이 나를 짓 누른다. 그러니 속된 말로 그 글을 쓸 땐 약을 팔 수 없다. 매 순간 정직하고 반듯하게 써야 한다. 한데 이런 건 고수의 것이다. 그렇다. 해서 내 가랑이는 요즘 매일같이 찢어지고 또 찢어지고 있다.


반면에 이 시리즈 그러니까 '나의 대기업 체험수기'는 삼풍 시리즈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썼다. 어느 회사나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 쓰는 동안 마음이 편했고, 이 기회를 통해 그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또 이야기에 재미를 위해서라면 언제 어느 대목에서든 인공조미료도 마음껏 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이 험란한 노동을 무려 '재미' 있었다고 기억하겠지.


한데 최근에 전 회사 임직원들이 '블라인드'를 통해 내 브런치 글을 찾아본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어째 이전보다 마음이 좋지 않다. 이번 계기를 통해 그간 글을 쓰며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직 그곳에 있는 내 동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를 해 보겠다며 매일같이 서로를 격려하며 사는 이들의 사기가 이 참에 꺾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다. 혹시라도 이 글을 통해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 너희가 다니는 회사가 고작 이래 '라는 말로 왜곡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이다. 절대 그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니다. 누구보다 이들 정 내가 잘 안다. 그 안에 있는 당신들이 얼마나 애쓰며 하루하루 버티는지, 그러니 오해 마시기를.


생각해보니 나도 전에 회사 다닐 때, 내가 우리 회사 욕 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우리 회사 욕하는 건 싫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그들에겐 '남'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 얘기가 불편할 수 있다. 그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죄송하다.


다음은 이 회사를 나보다 오래 다니고 명예롭게 은퇴한 몇몇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린 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쪽 가슴에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은 회사의 이미지에 내가 재를 뿌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며 차마 그 마음들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이 부분은 정말, 거듭거듭 죄송할 뿐이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이 진짜 면목없는 이유는, 전 회사에서 내 글이 논란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 글을 내릴 수 없는 처지라는데 있다. 왜냐면 나는 앞으로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나 때문에 분노한 분들이 계시다 하더라도, 나는 이 글을 고치거나 내릴 수 없다.


하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해 앞서 말씀드린 분들께 깊은 양해의 말씀을 구하는 것뿐이이다.


그러니 독자분들께서도 제발 이 글에 나오는 인물과 상황의 진위여부를 상세히 따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부탁드린다. 이 글은 보고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하면 의례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내 생각을 써 내려 간 '문학적 텍스트'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내가 다녔던 회사가 지금보다 훨씬 잘 되길 바란다. 만약 이제라도 그 회사에서 야구팀을 창단한다면 두 번 고민 않고, 지난 40년간 응원해 온 두산을 버리고 갈아 탈 생각이다. 그리고 야구장에 조카들을 데려가 치킨을 사 먹이며 이렇게 말할 거다. " 맞아, 이 회사가 고모가 다닌 회사야. 고모가 그만두니까 그때부터 되게 잘 되더라고, 솔직히 아쉽지, 그런데 어쩔 수 없어, 회사하고 나하고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거야 "


그러니, 그대들 모두 건승하시길 바란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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