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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Jan 02. 2023

끝과 시작

월정사에서

한 해의 마지막날 늦은 오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든 절은 고요했다. 고요 속을 거닐며 오로지 혼자만 있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뽀드득 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포근한 눈이라는 말이 이제야 와닿았다. 


타종 행사가 가까워지자 고요했던 절이 다시 북적였다. 사람들은 한 손에 연등을 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어둠 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 빛을 따라 도착한 곳엔 새해 소망을 적는 카드가 있었다. 나는 나의 소망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어느덧 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부지런히 일어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로 펼쳐진 전나무숲길을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마음이 충만해졌다. 난 자꾸 무얼 구하려고 이곳에 오는 걸까? 난 자꾸 무얼 이뤄달라고 비는 걸까? 그냥 걷자.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아무리 좋은 걸 봐도, 아무 의미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냥 이 순간을 느끼기로 했다. 그러니 다시 모든 것들이 눈부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스름 지는 서울의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스스로를 뽐내며 우뚝 쏟아있는 타워 뒤로 남색과 자줏빛이 뒤엉킨 하늘이 펼쳐졌다. 어둠이 드리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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