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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안 좋아 보고를 못하다니
날씨 탓? 좋은 날씨? 험한 날씨?
by
Faust Lucas
Nov 25. 2020
날씨가 안 좋아 보고를 못하다니
중령 여러 명이 소령 방에 모여 있다.
'야~~ 큰 일이네, 내일모레가 성과분석 회의인데 우수부대 결심을 못 받아서...'
'에이~~ 참모장이 멋대로 해 가지고 박살이나 나고'
'참모장 더라 보고하라 하지! 자기가 했놓고, 참모님은 그걸 왜 가지고 들어가셔 가지고'
'나보고 하라는데... 그럼, 어쩨?'
'야! 인사야?'
'예?'
'어떻게 하면 좋겠냐? 눈치 있잖아?'
'아니 그건 그거고, 제 방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마십시오!'
'왜?'
'며칠 전에도 장님이 들어오시며 뭐라 하셨습니다. 회의실에서 심의하다가 불려 가서 혼났습니다. 기초군기를 잡아야 할 참모가 방에서 담배 피운다고...'
'아~~ 그랬어? 미안하다, 미안해! 근데 사단장님도 여기가 사랑방인 거 아시냐?'
'스파이가 많으니 당연히 아시겠지!'
'야~~ 근데 이거 싸인 하나 받는 게 이리 어려워서야... 큰일이다. 비서실장은 오늘 들어갈 생각도 말라던데...'
여럿이 모여 답도 안 나오는 푸념을 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다들 보고 거리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부대로 봐서는 우수부대 선발 결과도 중요했지만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맡고 있는 참모 책임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처리해야 한다. 급하지 않은 경우는 여유가 있었다. 반면 오늘, 내일까지 보고 기한이 정해진 참모는 안절부절 이었다.
재떨이에는 죄 없는 꽁초만 짓눌리고 종이컵만 구겨지기 시작했다.
'인사야! 담배 좀 줘봐라!'
'그냥 끊어라! 사 갖고 다니던지, 인사가 너 때문에 피지도 않는 걸 갖다 놓잖아'
'인사는 서비스야~~ 그지?'
'근데, 도대체 몇 개를 피십니까? 너구리 굴 되겠습니다.'
'환풍기 꺼졌다, 돌려라'
'쟤도 열 받았나?'
또 누가 열 받았지? 모두가 그리 생각했는지 실없이 웃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고 ㅇㅇ참모가 들어왔다. 우리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우리도 깜짝 놀랐다.
'ㅇㅇ! 너 뭐냐? 선임들 토의하는데, 특별 참모가 감히 일반참모 방에 노크도 없이... 같은 계급이라고 막 먹냐?'
'뭐가 같아요, 인사는 중령(진)인데... 그래 뭐하러 왔어?'
'우수부대 다 결정됩습니까? 빨리 주십시오? 표창장 만들고 행사 준비해야 합니다.'
'니는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도 모르냐? 아직 소령이라... 이해해야지!'
'빨리 안 주시면 저희 야근해야 합니다.'
'야! 우리는 매일 한다!'
괜히 눈치 없이 들어왔다가 봉변만 당했다. 창문도 열고 환풍기도 다시 두드려 돌리고 커피 물도 다시 채우고 있노라니 우리들 꼴이 재미있게 보였다.
'그만 그만들 하시고 여기 콜라 한잔 시원하게 하십시오! 제 방이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총대 메겠습니다. 결재판 주십시오.'
선봉부대부터 분야별 우수부대가 인쇄되어 있었다, ㅇㅇ참모님께 공란으로 된 것을 다시 달라했다. 비서실에 전화해 뭐하고 계시냐 물었더니 태풍 전야란다.
'제가 결제받아 오면 뭐 해 주시겠습니까?'
'밥 살게, 스포츠 장갑 선물 받은 거 줄게, 골프 모자 줄게, 소주 한잔...'
'그럼 일단 10분간 휴식하면서 참모님들 가져오시고, ㅇㅇ참모님은 추가로 믹스커피 한 박스 가져오십시오! 너무 단골이라... 우수부대 건은 제가 어떻게든 처리하겠습니다.'
다들 다시 모였다. 여기가 진짜 회의실 같았다. 창문, 출입문을 다 열고 테이블도 정리하고 복도 출입문도 다 열었다. 메케한 냄새는 사라지고 시원했다.
참모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걸 아는지 본청은 정적 속에 하나 둘 오는 참모들의 발자국 소리만 크게 들렸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본다.
'다 가지고 오셨으니 다녀오겠습니다. ㅇㅇ참모님! 가져오신 박스 열고 커피 한 잔 타십시오. 식기 전에 오겠습니다!'
'네가 무슨 관우냐? 장비냐? 에따! 쌍금탕 받아라!'
당분을 보충하고 결재판을 확인하고 올라갔다. 비서실장이 손에 든 결재판을 보더니 눈이 휘동 그래 진다.
'참모님! 들어가시는 건 아니시죠? 폭풍 전야입니다.'
'어디 가요?'
'큰일 나십니다. 저도 내일 일정도 보고 못하고 있습니다.'
'폭풍 전야? 그때는 조용하고 태풍의 눈? 거기는 고요하니 살짝 들어갔다 나와서 잠수하죠! 지나고 나면 다시 나오죠!'
참 안되었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들어간다고 보고 드리라니 못 하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인가를 골똘히 하는 모습이었다. 전투화 뒷굽을 평소보다 크게 소리 내어 붙이며 경례를 하고 다가갔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했는데...'
'...'
'뭐냐?'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앉아라'
'예'
'야! 참모들이 보고를 안 하냐? 눈치만 보고... 할 게 있으면 해야지! 다 끝나고 보고하면 어쩌냐? 중간보고는 다 빼먹고...'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건 없고, 다들 듣기 좋은 건 서로 하려 하고 안 그런 건 미루고...'
'죄송합니다.'
'책임은 나 보고만 지라고 하고 뭘 알려줘야 지침도 주고 하지! 우수부대 건도 그렇지,
지휘관 점수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소문은 다 내어놓고, 니들이 해 온 점수 순서대로 해야 하냐?
그럼 어떻게 하냐? 만약 내 점수로 바뀌면 못 받는 대대장은 뭐라 하겠냐?'
'죄송합니다.'
계속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다가 우리들 처지와 그동안 진행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참모들끼리 다시 선발 토의를 하는 것으로 하고 선봉부대, 전술훈련평가, 전투력 측정 등 중요한 분야에 대한 지침을 받았다. 비서실장이 묻는다.
'뭐 그리 조용합니까?'
'우리 기다리고 계셨다던데...'
참모장실로 가서 보고하니 '알았다'고만한다. 돌아와 보니 궁금증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본다.
참모들과 토의를 간단히 하고 결과 보고서를 정리해서 비대면으로 넣으니 바로 결제가 되었다고 가져가라 한다.
'태풍의 눈이나 폭풍전야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날씨가 어떻든지 듣기 좋든 말든 의사소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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