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불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겨우내 움츠린 몸, 나뭇가지 잎사귀 기지개 켜듯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에 온 후 먹을 일이 많아 살만 찐듯했다. 허리가 31인치를 넘었으니 인간의 허리가 아니다.
저녁식사를 상추쌈으로 간단히 먹었다. 엄마가 푹 삶아 준 수육! 기름기 하나 없는 돼지고기이다. 상추에 수육을 놓고 흰밥을 조금 올렸다. 된장에 사과를 갈아 넣은 쌈장을 양념처럼 젓가락으로 조금 떠서 넣고 한 잎에 먹었다.
배가 너무 불러 산책을 나오니 운동장에 뭔 사람이 이리 많은지... 요사이 부쩍 늘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뚱뚱한 사람들 걷는 모습이다. 한 참을 걷는데 동생 녀석 이름이 핸드폰에 뜬다.
한참 노래를 들으며 몸을 풀며 가사를 음미하는 시간을 방해한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미워도 한 세상 좋아도 한 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가슴에 와 닿는 가사들이다.
잠시 멈추고 전화했더니 받지 않는다. 저녁 먹는다 했으니 소주 한 잔 하고 있나 싶다. 몸은 풀었고 첫 바퀴 전력 질주하려는데 전화가 온다. 숨도 차오르고 17~18년 전 축구하다 끊어진 우측 무릎이 아파 걸으며 받았다.
'자식! 방해는 기가 막히게 한다. 인생 타이밍이라 했던가?'
세상 살기 힘들다며 투덜거린다. 돈이 없어 설날 엄마 아버지도 뵈러 못 왔단다.
'내는 부산 가고 싶다' '가마이 있으라, 코로나 때문에 다니면 안 된다' '니는 좋겠다. 맨날 바다 보고 짠내 맡고' '맨날 온다더만 오지도 않고'
어린 나이도 아닌 아저씨 둘의 대화는 언제나 어릴 적 그대로이다.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언제나 생각나던 어릴 적, 고향! 가고 싶다. 그런데 너무 멀다. 열차 타고 가면 도착 후 차가 없고 운전해서 가려니 너무 멀고 해서 제안을 했다.
'네가 열차 타고 와서 하루 자고 낼 차 가지고 같이 내려가자!'
진짜로 왔다.
새벽 한 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늘 그래 왔듯 소주 한잔씩 기울였다. 몇 잔 들이켜자 군대 이야기를 한다. 남자들 만나면 하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녀석은 군대가 아니라 의경 출신! 화제의 대부분은 최근 이슈가 된 군인, 군 관련 사건사고, 그리고 어디서 찾았는지 형 관련 이야기들이다.
이번에는 대대장 때 이야기를 한다. '지옥훈련인가 뭔~가 있다 아이가? 그때 아~들 엄청 힘들게 했다메, 군장도 저울로 재고, 잠도 안 자고 굶기기도 하고 억쑤로 빡시게 했다데, 쫌 봐주지...'
벌써 10년쯤 전 일이다. 전장 극복 훈련을
이야기한다. 잊은 지 오래되었는데... 사실 나도 힘들었다. 어디 말할 때도 없고 할 수도 없던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군인이었다.
당시 전 육군에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강습대대의 지휘관이었다. 기계화부대가 적진 속으로 빠르게 진격하는데 방해가 될 중요한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 임무였다. 2차 세계대전 영화 '머나먼 다리'의 그 피해 많이 받던 영국 공수부대와 비슷하기도 하다.
어느 날 최고 지휘관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지옥훈련! 어디 가나 새로운 것을 할 때는 반대가 있는 듯, 상급부대 참모들은 따로 불러서 하면 안 되는 이유,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너가 다 책임져야 한다. 내부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등 구구절절이 설득하려 했다.
만약 그들 의견대로 안 하면 안 된다는 은근한 압력성 멘트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반대한다. 누구랑 군 생활 오래 하냐? 군단장은 특기를 고려할 때 네 개 달기는 어렵고 이제 길어야 2~3년 있으면 전역한다.'는 등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도 있었지만 후배의 앞길이 진정 염려되어하는 말인지, 평소대로 지휘관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것인지, 쌓여있던 불만을 뒤로 표출하는 것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주어진 임무는 전투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최악의 전장환경을 극복함으로써 군인정신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제한사항으로는 훈련시간은 24시간이며 사고는 없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침을 바탕으로 참고할 정보를 종합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교관, 조교를 선발해 체험하게 한 후 교육대를 조직했다. 몇 차례의 여행 연습, 대대원 중 체력과 정신력을 구비한 지원자를 받아 실제훈련과 동일하게 진행하며 최종 준비를 끝냈다.
각급 부대의 에이스급 간부들로 주 1회 30명 정도씩 입소했다. 통제 부대장 겸 교육대장으로서 건강검진에 문제가 없을 경우 입소신고를 받고 주의사항을 교육했다. '언제든지 포기 의사만 밝히면 중도에 끝낼 수 있다.
실제 전장을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전장의 불확실성, 우발상황 등이 연속적으로 강요될 것이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보이면 모든 교관, 조교는 여러분의 수료를 도울 것이다. 건투를 빈다!'
이어서 체력측정, PT 및 유격체조, 각개전투 동작 등을 연속해 체력을 최대한 저하시켰다. 요령을 피울 경우 주의, 경고, 실격 순으로 처리했다.
참호격투, 화생방 체험, 담력 코스, 침투 습격, 은거, 포로 체험, 영현 체험, 소량의 건빵 식사, 휴식 없이 진행되었다. 매 기수별 훈련 프로그램은 경험담, 입소자들의 예상 등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변화를 주었다. 30~50%의 수료자에게는 군단장 표창과 휴가 등이 주어졌다.
도전적이면서 체력에 자신 있는 많은 초급간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려 했다. 한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 강조하고 수료자들은 우수한 전투기술 보유자, 전투지휘 능력자로 인정되는 분위기였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훈련 결과는 부대별로 비교가 되게 끔 참가자, 수료율 등이 공개되었다. 훈련의 강도는 지금까지 특전사 등의 특수훈련을 받았던 경험자들도 감당이 힘들 정도라 소문이 나게 되었다. 수료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해당 부대를 전투력이 강한 부대로 인정하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육군본부에 익명의 민원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훈련을 강제로 시키며 인권을 무시하고 가혹행위가 있다는 제보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투스타인 감찰 실장이 조사를 나와 면담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군단장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는 말도 들렸다.
감찰실장과 1:1로 면담도 했다. '너는 대대장으로서 시킨 대로 한 것뿐이니 책임이 없다. 그런 가혹행위를 훈련에 포함시키라고 지시받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이 훈련의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훈련 목적과 최종 상태 등에 대한 대략적인 지침을 받았으나 세부적인 계획과 현장에서의 행동화 구현은 통제 부대장으로서 제가 총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했습니다.'
'잠도 안재우고 밥도 안 먹였다던데? 심지어 물도 안 주고 10분간 휴식도 보장 안 했다면서? 상급자에게 반말도 하고 욕도 하면서 인격도 모욕했다던데?'
'맞습니다. 잠을 안재우는 것은 고문이며 식사를 못 먹게 하는 것은 하찮은 짐승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를 훈련시킬 때도 먹이는 줍니다. 그들은 하루라는 긴 시간 동안 그런 환경에서 훈련했습니다. 인정합니다. 사실입니다. 죄송합니다.'
'거봐! 다 알고 나왔다니까. 자네는 잘못이 없어. 그저 시키는 대로 했으니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니...'
'감사합니다. 저를 생각해 주시니 감사의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저희 사무실에 찾아주신 분들 중 가장 높은 분이시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육군의 교육훈련 모터는 실전은 훈련처럼 훈련은 실전처럼 입니다. 모든 교육훈련은 자발성이 없더라도 해야 하며 그 내용을 취사선택해 받을 수 없습니다. 합법적 강요인 셈입니다.
유사 이래 전장에서 잘 거 다자고 식사시간 지키면서 적과 싸운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모든 전쟁의 시작은 새벽이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힘든 시간대는 해뜨기 전입니다. 기습하기 최적입니다.
공격하는 측이나 방어하는 측 모두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 저녁 세끼를 거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임무를 위해 밤새어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장수의 도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분은 웃으며 일어나서 목덜미까지 붉어져 나갔다. 무인으로서 소신을 말했다. 인정할 것 인정도 했다. 밥도 안 먹이고 잠도 안재운 것을...
소신을 밝힌 책임이 곧 따랐다. 조사단이 다음날 드리 닥치고 지휘부 운영비 사용 관련 서류, 부대 일지, 전 부대원 설문조사, 교관, 조교를 대상으로는 상급자에게 욕설을 했는지 등...
힘들어하는 부대원들에게 미안했다. 지휘관 잘못 만나 죄인 취급받고, 이 또한 무인으로서 책임지면 된다. 전투복에서 견장을 떼었다. '지금까지 소신 껏 했으니 앞으로도 그리 살아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부모님 등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조금이나마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완충작용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네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데, 왜 그랬냐? 네가 제정신이냐?' 등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아쉬움을 표했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하지 않음에 미안했다. 후회는 없었고 또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다.
군자는 옳다고 생각되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군자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직업이 군인이다. 어떤 이는 미쳤다고도 했다. 제대로 본 것이다. 민간인의 시각으로 군인을 본 것이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며칠 후 나온 부대진단 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평소 부대 훈련이 너무 힘들다. 좀 완화하면 좋겠다. 훈련, 작전, 작업 등 모든 부대활동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뭐라 하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주변에서 무시한다. 이에 더해 진급, 포상, 휴가 등에서 책임을 지게 된다 등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권고사항도 받았다. 개인 수준을 고려한 훈련 강도 조절, 체력단련과 제식동작의 지나친 강조 자제, 수준 미달자에 대한 왕따 등의 병영 부조리 예방, 우천, 혹한 등 악천후 시에는 훈련 후 세탁소요 등을 고려해 실내 교육 실시 등 정상적인 부대 운영을 하라는 것이었다. 군인이 부대를 점검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입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군복을 그만 벗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신과 행동에 흔들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