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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Mar 16. 2021

인연이란?

운전병이 전역 전 전해 준 글  


인연


---  운전병이 전역 전 전해 준 글  ---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 운전병이 전역 전 휴가를 갔다. 그가 보내 준 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나 자세히 관찰당하고 있었다. 아래는 그의 글이다. 일부 교정은 했지만 참 글도 잘 쓰는 친구이다.


인연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뜻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자연적이다. 군대에서의 인연은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히, 병과 간부의 만남은 더욱더 그러하다.

연대장님과 나의 만남 또한 그러하다. 연대장님께서는 12월 31일에 새로운 연대장으로 부임하셨다. 처음 겪는 지휘관 교체로 인해 무척이나 바빴다. 바뀌신 연대장님의 성향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 오신 연대장님은 전임 연대장님과 풍기는 느낌이 달랐다. 신고 전날에 오셔서 계획되어있지 않은 운행을 나가셨다. 부대원들이 코로나와 싸우는 현장에 가서 검사도 받아 보셨다.


'내가 지휘하는 부대원들이 뭘 하는지? 뭘 알아야 지휘고 뭐고를 하지!'


진취적이신 분이라고 느꼈다. 연대에 오셔서 참모들과 갖는 회의 아닌 회의 때 하신 말씀이다.


'제일 좋은 회의는 안 하는 것이다. 굳이 안 모여도 서로 다 알고 있으면 된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변화는 행동으로 빠르게 보이셨다.


'부대 출근 시 도열하지 말 것, 언제 올지 몰라 기다리느라 아침을 굶는 일은 없어야 한다.  평시에 부하들 식사도 못 챙기는 사람이 전시에는 오죽하겠냐? 전시는 몰라도 평시에는 챙겨야지!'


본질에 충실해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형식은 버리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좁아 보이는데도 여기저기 청소할 것 많던 사무실을 엄청나게 넓게 만드셨다. 그렇게 필요 없는 것을 비우 듯 형식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화할 때 경례 구호를 생략하라시고 실시간 보고를 강조하셨다.


'난 미래를 꿈꾼다. 여러분들도 도와주기 바래. 보고는 현재로부터 미래로 하자!'


본질이 아닌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30년 이상 군생활을 하시면서 어쩌면 당연했던 것들을 참모들에게 필요 없다며 없애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또한 지휘권 교대를 받으신 후 그동안 유지되어왔던 보고 방식들을 바꾸셨다. 참모들이 보고하려면 통과하던 부속실 쪽 연대장실 출입문 앞 칸막이를 과감하게 치우셨다. 연대장실로 바로 들어가는 문, 한때 연대장만 사용했던 문, 참모들이 함부로 열 수 없었던 그 문을 개방하셨다. 간부들이 대기하던 좁은 부속실을 오로지 운전병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셨다. 참모들과 나는 급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다.


이것도 잠시, '보고서를 책상에 두고 가라, 궁금하면 묻겠다. 필요하면 연대장을 사무실로 오라고 불러라!'는 등 믿기 어려운 지시가 있었다. 연대장실은 연대장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사무실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열려있는 방이라며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셨다.


이러한 변화들로 참모들과 연대장님 사이의 거리감이 줄었고 그만큼 더 원활한 소통이 되었다. 참모들의 업무부담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그로 인해 병사들의 부담도 줄었다.


이로 인해 부대의 분위기가 급격히 좋아지게 되었다. 당연히 병사들의 관계 또한 원만해졌다. 한 사람의 교체로 부대의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드문 일인 것일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물속에 있는 수초 하나가 물을 바꿀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계속되는 우연으로 인해 자식 걱정에 본인의 직장생활에 문제가 될 정도로 근심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고민은 아들의 건강으로 인한 군 장교 임관 여부와 미래의 진급 문제였다. 이 사람은 자나 가던 군 차량을 멈춰 세웠다.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해결을 해야 하나 물어보았다. 많은 군인들에게 해결책을 얻고자 했지만 연대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연대장님은 그 사람에게 10분 정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30분 정도의 얘기 끝에 시원하게 해결해 주셨다.


이처럼 한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우리들이 어느 시점에 어느 상황에 만날지 모른다. 우리의 인연은 언제 시작될지 언제 종료될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연대장님이 가끔 하시는 말씀이 떠 오른다.


'누군가를 도울 기회는 많지 않다! 뭐라도 도울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 내가 존재하는 의미이다!'


이런 걸 선한 영향력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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