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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an 07. 2022

비와 추억


비와 추억 (1- 2)   

 

통일 전망대에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저 너머 북녘땅의 지명 등에 얽힌 사연 등을 포함한 멋진 브리핑을 듣던 소년이 그 부대에 다시 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수학여행을 다녀 간 7~8년 후 정도로 추측된다.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고 소위로 와서 약 5년을 설악산과 같이하며 20대를 보냈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첫 지휘관 중대장 직위를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만료하고 '군인으로서의 마음의 고향'을 떠났다.


훈련 때마다 원시림 같던 설악의 숲을 누비던, 구석구석 땀과 눈물과 혼을 뿌리던 그곳이었다. 떠난 지 약 20년 만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돌아 연어처럼 찾아왔다. 이제 다시 오십 즈음이 되어 한가롭게 저곳을 바라보니 20여년 전 생각들이 마구마구 하나 둘씩 일어 올랐다.


주변의 도로, 큰건물 등과 희미하게 보이는 저 미시령 고개, 목우재고개, 학사평  순두부촌, 척산 온천, 워터피아, ㅇㅇ, ㅇㅇ콘도미니엄 등 건물은 그대로인데 일부는 세월을 못이기고 이름을 바꾸며 변한 곳도 보였다. 주말이면 북쩍이던 설악동은 한 산한 여유가 씁쓸하게 보였다.


비도 오고 구름인지 안개인지 산을 타오르며 바람에 날리는 동양화 같은 절경을 보고 있노라니 타이머신을 타고 돌아가 있는듯 했다.


약 20여년 전 일들과 함께 시 한편이 떠올랐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말 삼은 중 한 명인 야은 길재가 쓴 시인데 마지막 구절 중 '태풍연월'을  '청춘시절'로 바꾸면 꼭 내 마음이다.


세월은 흘러 흘러 사람은 떠나거나 없어졌건만 설악산과 그로부터 흘러 내리는 계곡물, 바다로 이어지는 그 물소리, 나무, 풀 내음, 구름 안개의 어우러짐은 예전 그대로 푸르고 싱그러운데 지난간 세월에 20대가 이제 50대가 되었으니...


등푸른 명태  


명태가 왔는가? 나도 왔소!


어디 갔다 왔는가? 나도 둘러둘러 예 왔소!


어려 떠난 고향 산하 그립던가?


나도 그 시절 그리워 예 왔소!


명태 등 색이 뭐든가?


내색도 모르고 예 왔소!


푸른 명태든가? 푸른 청춘이 사제되어 예 왔소!


희고 푸른 파도 타고 왔는가?


푸른 산천 타고 흰푸른 파도 타러 예 왔소!



작년부터 동해안에 명태가 잡힌다고 한다. 한 동안 사라졌던 명태가 마치 나와같이 동해로 돌아 온 것은 아닐까? 어려서 떠난 바다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생각지도 않게 다시 온 나의 아바타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들도 어린 시절을 지나 저 먼 북대평양, 일본 북부, 오호츠크해, 베링해 등의 북태평양 등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온 것은 아닌지?


요사이는 그 때 젊음의 육체와 지금 영혼의 젊음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다. 이제 지나간 시간은 일장춘몽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나는 그대로인데...


'청춘은 영원하다'


'나이는 스스로가 인정할 때 정해지는 것이다'


나무의 나이는 스스로 나이테를 세는 만큼

정해진다!


비오는 창 너머로 설악산과 금강의 경계를 눈 짐작으로 이어 본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산이야 다 이어져 있으니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대략으로라도 나누어 부르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쉽게 나누면 미시령 옛길을 따라 북쪽이 금강산, 남쪽이 설악산이다. 바다로 선을 이어보면 청초호는 설악산 물, 영랑호는 금강산 물인 것이다.


저 미시령은 중위 시절 사단장님을 수행에서 수없이 넘어 다녔던 곳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우 자동차의 영광, 프린스를 타고... 한 여름 구비구비 고갯길을 넘을 때는 힘이 약해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차는 이렇게 비실비실할까?' 윗분을 모신답시고 차려 입은 옷, 가끔 대외 행사 참석으로 정복을 입을 때는 하정복을 왜 안드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동복과 차이가 없었다.


차가 힘들어 하니 안에 탄 사람도 따라서 힘들어 하라며 에어컨을 가동 못하게 장치를 했다는 소문이 맞다는 확신이 갔다. 그 시원하다는 설악의 계곡 바람도 굳게 닺힌 차 안으로는 들어 오지 못했다. 이 바람에 이마, 목, 겨드랑이, 엉덩이 등 땀이 흐르지 않는 곳은 없었다.


뒷좌석 창문은 열려도 앞죄석은 달랐다. 세찬 바람을 바로 맞으시는 것을 막아야 했고 신문 보시는 것을 방해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창문을 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앞의 것을 열면 뒷좌석으로 바람이 쏠리니 불편하실까봐서... '


당시 그 분의 나이는 지금 나와 동갑이셨다. 참 정감있고 인간적인 분이셨다. 주례도 해 주셨다. 부하들을 끔찍히도 챙기셨다. 단, 가까이 있는 우리는 제외! 특히, 매번 뭐라하시면서도 꼭 데리고는 다니셨다. 어떤 날은 24시간 중 서너 시간 자는 걸 빼고는 좌측 일보 뒤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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