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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ug 09. 2022

비와 소녀  

나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 이야기

비와 소녀  3

미팅이었다. 중 3 때 선도부장을 하라 해서 내키지 않는 감투를 하나 더 썼다. 그것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교문에서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를 계기로 고 1 때 미팅을 하게 되어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좀 특이했다. 소년은 건전한 이성교제, 중고등학생 시절 학업에 도움도 되는 등 모범적인 학생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교회에서만 이성 친구를 알고 지냈다. 인접 학교 여학생들이 교회에 보러 오기도 했다. 덕분에 전도(?) 왕이 되기도...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하느라 학창 시절을 즐길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중학교가 마지막인데 반장은 남는 거라도 있지...  단 한 번뿐인 중학생 시절인데... 소년은 어쩌면 인생의 긴 밑그림을 이미 그러 놓은 것 같았다.

소년과 소녀는 교문만 다른 학교에 다녔다. 산 중턱을 절개하여 반으로 나누고 각각 남녀학교를 만든 곳이다. Y자형 진입로 가 있어 교문 직전까지는 같은 길을 사용했다. 서로의 교실에서 서로의 운동장이 잘 보이는 구조이다. 둘을 갈라놓은 담장은 한쪽은 나지막해서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학생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남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는 담장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체육수업이었다. 클래식, 유행가 등에 맞추어 율동을 하는 무용? 군무? 뭐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또래들과 달리 소년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방과 후 축구를 하거나 야구를 주로 했다. 가끔 있는 시험에는 졸업하기 전 전교 1등을 한 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범생이었다. 보이스카웃, 청소년연맹(MRI) 활동 등을 과외 수업으로 하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교회에 가서 성가대를 동경하는...

이런 소년에게도 사춘기는 비켜가지 않았다. 선도부장을 하면서도 담장 너머 여학생들과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친구들을 비웃기도 이해하기도 하면서 단속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선생님 심부름을 갔다 교실로 가는 길에 살짝 담장 너머 음악소리가 나오는 여중 운동장을 슬쩍 보았다. 그런데 같은 교회 다니는 예쁜 후배가 반바지를 입고 율동을 배우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TV에 나오는 무용수처럼 큰 키에 가늘고 긴 팔다리, 꼭 끼인 땡탱한 체육복 반바지, 그 아래 이쁜 인형 같은 장딴지 등... 특히, 도드라져 보이는 가슴, 긴 목선 등이 균형 잡힌 곡선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주일이면 보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소년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교회에서 이성교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친구들에게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몰아붙이기도 해 오던 터였다. '종교를 빌미로 이성교제를 한다' 이런 것은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년은 여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로서는 10대 소녀들이 선망하는 키, 미소년 같은 얼굴, 등굣길 교문에서 엉성한 아이들을 지도하는 모범, 체육시간 인솔해서 운동장을 도는 도 두라 짐, 선수 못지않은 축구 실력,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엄친아라 불러도 되는 반듯함 그 자체였다.

소녀는 친구들에게 등교시간에 교문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자매 없이 교사인 엄마와 둘 만이 살아서 그런지 동생, 특히 남동생들에 관한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한 친구가 등교하는데 동생이 두발이 불량하다며 잡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학교 동창에게 가서 말했더니 동창 머슴아가 그 소년을 보더란다.

잠시 후 동생이 뛰어가고,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잠시 쳐다보더니 동생을 그냥 가라 했단다. 이 계집애는 그 남학생이 자기를 보고 동생을 보내 주었단다.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걸 텔레파시로 느꼈다고 한다.

이상했다. 말도 한 번 한 적 없는 그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언제인가 오랜 시간을 같이한 듯 한 느낌! 이런 기분은 뭐지? 가끔은 담장 넘어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쳐다보다 그를 찾고 있는 자신을 알고는 혼자 웃기도 했다.

그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게 많아졌다.
어떤 아이길래 자꾸 생각나지?

입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너편 운동장에 시선은 머물렀다.


알고 싶어요     노래 이선희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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